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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기 2005.8.27 ~ 9.4(8박9일)
늦여름 끝자락을 붙잡고 평소 공부하고 익혀왔던 내용들도 확인할 겸 일본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최대한 경비를 절약해서 다녀와야 하기 때문에 사전 준비를 잘해야 했지만 일단은 부딪히고 보자는 심정으로 계획을 세웠다.
약 13년 전 큐슈(九州) 지방의 구마모토(熊本)에 한번 다녀온 경험 이외에는 일본 지역에 대하여 잘 몰랐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대한 많은 지역을 돌아보고 싶었다. 결국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부산에서 후쿠오카(福岡)까지의 배편과 일본 전역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JR pass가 포함된 JR Kobee 왕복권을 끊었다. 즉 KOBEE왕복 + JR PASS = ¥39,900 (¥100 = 960원. JR PASS만 끊으면 ¥28,300 ) . ¥39,900 - ¥28,300 = ¥11,600 × 960원 = 111,360원 ÷2 = 55,680원 결국 ≒(약) 56,000원에 일본에 가는 격이다.
갈 때는 최대한 빨리 올 때는 최대한 늦게 오라는 말대로 최대한 빨리가기 위해 태안 터미널에서 천안행 첫 버스를 탔다 (07:25) 약 09:30에 도착해 KTX를 타기위하여 바삐 서둘러야 했다. BUS를 타고 약 20분 쯤 걸린 10시쯤에 천안 고속전철역 도착하여 부산행 표를 끊었다. 10:13분 기차는 약 4분 늦은 10:17분에 도착하여 12시35분 쯤 부산역에 도착했다.
일본에 가는 KOBEE 배편이 16:00시라 시간이 넉넉하여 국제여객 터미널까지 걷기로 했다. 부산역사를 뒤로하고 광장에서 왼쪽으로 약 20분쯤 걸린 것 같다. 가는길에 허름한 추어탕 집에서 3,500원을 주고 점심을 먹었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넘들 혼내주려고 일본에 간다고 주인 아주머니(할머니?)에게 말하고 오는 길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2층에 있는 미래고속 선박 카운터에서 인터넷 예약했던 내용 확인하고 승선권과 JR PASS 교환권을 받았다. 터미널은 공사중이라 무척 어수선했다.
드디어 16:00 출발한 바다의 제트기 KOBEE 호가 거친 물살을 헤치고 18:55분에 정확히 하카다(博多) 항에 도착하였다. 일본 입국 신고 및 세관신고는 무난히 통과 하였지만 처음에 여권 찾느라 헤메다가 외국인用 줄에 서야하는데 내국인 줄을 서서 기다린 것이 약간의 실수였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1,000 주고 공중전화 카드를 사서 도착전화를 하려고 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터미널 앞에서 버스 11번을 타고 하카다 역에 도착하였다.(¥200엔) JR PASS 교환권을 바꿔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교환이 안 될 것 같았지만 미도리노마도구찌(みどりの窓口) 에 가서 JR PASS 교환 신청을 하였다.
저녁 8시쯤 되었는데 뜻밖에 교환이 가능했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교환시간이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로 알고 있었고 내일 아침 9시까지 기다리려면 하루를 까먹는 경우가 생겨서 어쩌나 하고 걱정했었던 것이다. 다행히 다음날부터 사용가능한 JR PASS 승차권을 받을 수 있었고 역내 직원이 친절하게도 JR 노선 및 시간 안내표를 복사해 주어서 참으로 친절함을 느꼈다.
다시 국제전화통을 붙잡고 전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옆 사람에게, 또는 종합안내소에서 물어보아도 안 되는 것 이였다. 결국 역 주변을 순찰하던 청원경찰인지 직원인지 모르겠지만 그 두분이 나를 데리고 어떤 호텔로 데기고 가서 호텔직원에게 설명을 하고 호텔직원이 호텔내부에 있는 국제전화(공중전화)를 걸어줘서 무사히 전화를 할 수가 있었다. 처음엔 001-82-041-675-****로 다음은 001-010-82-041-675-****로 해도 틀렸다. 결국 001-010-82-41-****로 지역번호의 0을 떼어야 한다는 사실과 번호 010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바보 같은. 아까운 저녁시간 8시부터 8:30분까지를 전화로 헤메고 말았으니....
그날 저녁 잠을 자려고 숙소를 찾았다. 물론 예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뜻밖에 호실이 없었다. 2군데 호텔을 들렸지만 주말이라 방이 없었다(약¥5,000엔정도) 결국 캡슐 호텔에서 자기로 하였다. 사우나를 포함해서 1박에 ¥3,990엔. 베낭 맡기는데 ¥200엔을 받는다. 2층으로 된 영안실 관짝같은 자신의 칸으로 들어가면 이불과 TV가 전부인데 그런대로 잘 만했다.
<둘째날>
다음날 일찍 13년 전에 가보았던 구마모토(能本)에 있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기위해 7시28분 출발하여 9시5분에 구마모토에 도착하였다. 내가 가려는 곳은 구마모토시에서 약간 북쪽으로 떨어진 무사시즈카(むさしずか)라는 역 근처이기 때문에 다시 JR 보통 열차를 타고 무사시즈카 역에 내렸다.
역 앞에서 교회 위치를 정확히 몰라서 택시운전사에게 가자고 하였더니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고 하여서 약 500m 쯤 걸어서 교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약 13년전 당시 같이 사진을 찍었던 사진과 주보를 보여주었더니 반갑게 기억하며 반겨주셨다. 당시 같은 사진을 찍은 예쁜 처자들은 모두 시집가고 없었고 과거에 비하여 부흥된 것도 없이 그저 10여명 안팎의 사람들과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은 계속, 13년만에 한국에서 이곳 교회를 찾아온 사람이라며 소개해 주셨다. 예배후 간단히 오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그전에 약 1달 정도 머물었던 혼다(本田) 기숙사가 있는 히고오오쯔(ひごおおつ)역에 갔다.
13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도로와 건물등이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옛 모습 그대로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이곳은 전혀 바뀐 것이 없는 듯 보였다. 머물렀던 기숙사에 도착하여 그전에 우리를 맞아주었던 하카시(東)씨는 나이가 80이 넘어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근처 쇼와(昭和)공원에 들러 잠시 사진을 찍고 고양이와 놀았다. 이제는 일본열도의 대장정을 시작하기 위해 구마모토에 도착했다. 야간열차를 타기위한 시간이 좀 남아서 스이젠지(水前寺) 공원과 구마모토성(¥400)을 구경했다.
스이젠지공원 내부에는 후지산 모양의 작은 동산이 인상적이었고 호수와의 대비가 잘 이루어져 있었다. 공원에서 나와 구마모토성을 가기위해 전철을 탔다. 가장 번화가인 도리초스지(通町筋)에 내려 아케이드 상가를 둘러보고 구마모토성으로 향했다. 점심을 거른 탓에 배가고파 편의점에 들러 가져온 전자레인지용, 떡갈비와 컵라면을 무료로 덥히고 우유 1통을 사서 길거리 벤취에서 먹었다.
날은 이제 어둑어둑해져가고 있었다. 성 입구에 성곽을 세웠다는 가또키요마사(加藤淸正) 동상 앞에서 젊은 커플에게 부탁하여 독사진 한 장 찍고 성 입구에 가니 벌써 문을 닫았다. 13년 전에 물론 구경을 다 해보았지만 조금은 서운했다. 그러나 성 입구의 쓰보이가와(つぼい川) 강과 높은 성벽, 개찰구 입구 등만 둘러보아도 꽤 운치가 있었다. 어떤 가족(부인이 병이 난 것 같다)의 안내로 구마모토 역에 전철을 타고 도착하였다. 어떤 젊은 여자에게 전철 타는 곳을 물어보았는데 설명하기 힘들었는지 밤인데도 선뜻 안내해 주겠다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오사카(大阪)행 야간열차는 밤 10:32분 구마모토를 출발하여 다음날 09:26분에 도착했는데 3열로 된 의자가 뒤로 천천히 젖혀지고 의자에 독서용 전구가 있고 슬리퍼와 담요가 제공이 되어 편안히 갈수 있었다.
<셋째날>
카메라용 건전지가 충전이 필요하여 역무원에게 부탁하자 다음날 오사카 근처에서 친절하게 가져다주었다. 답례로 오렌지 쥬스를 자판기에서 뽑아 주었는데 고맙다는 표정이 역역했다. 일단은 북쪽 홋카이도(北海道) 까지 갔다가 오는 길에 둘러볼 심정으로 도쿄로 향했다. 21세기 히트 도시락 ¥1,000엔 우롱차 ¥150엔을 주고 동경행 신칸센(히카리)를 탔다. 과연 일본이 자랑하는 신간센의 위력은 대단했다. 10:19분 오사카 출발하여 13:13분 약 2시간 54분만에 동경에 도착했다. 아직 삿포로까지 가려면 도쿄(17:56 신간센 하얏테 약3시간)-하찌노헤(21:00) - 하찌노헤(21:18 쓰가루특급) -아오모리(22:18 하마나쓰 야간열차)- 삿포로(6:07) 순이다.
13:13분에 도쿄에 도착하여 17:56분까지 약 4시간 반이 남았으므로 지옥의 도쿄 지하철 구내에 짐을 맡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야스구니신사(靖國神社)와 기타노마루(北の丸)공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이지만 동경에서 오오데마찌(大手町) 까지 1정거장 오오데마찌에서 갈아타고 구단시타(九段下)까지 2정거장이다 요금은 ¥160 일본인들은 항상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에는 왼쪽에 붙어서 가고 오른쪽은 빨리가기 위한 사람을 배려하기위하여 비워둔다. 같은 동료라 해도 위아래 칸으로 나누어 탄다.
야스쿠니신사 입구에 거대한 기둥 뒤로 신사까지 길게 늘어선 통로에는 많은 사람이 오고갔다. 학생들도 많았다. 우리와 역사적으로 많은 관련이 있고 고이즈미의 방문으로 말썽이 많은 곳이라 그다지 정이 가지는 않았다. 향로 앞에서 저마다 손뼉을 치며 절을 하고 무엇인가 계속 중얼거리며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신사 옆으로 러일 전쟁 100주년 기념 전시관이 있었는데 러일 전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전시전 까지 하고 있었으며,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 시키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 들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야스쿠니신사를 나와 기타노마루(北の丸) 공원으로 향하였다. 그곳은 오래된 고목이 많고, 조용한 정치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런데 무료였다. 기차 시간이 5시56분이라 충분할줄 알고 4시50분쯤 걸어서 도쿄 역까지 가려고 길을 물어보다가 돗자리를 깔고 편히 쉬고 있었던 부부가 직접 자기가 안내 하겠다며 승용차로 도쿄(東京)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일본어로 제작한 명함을 건네주며 꼭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 건네주었다.
짐을 찾기 위해 락카룸을 찾았으나 아뿔사! 있는 곳을 모르겠다. 왔다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20분쯤 헤메다 개찰구 직원이 가르쳐 주어서 간신히 찾았다. 당황하니까 JR PASS 카드 도 어디에 두었는지 가방을 뒤져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앞 바지 주머니에 있었다. 다행히 17:56분 출발 21:00분에 도착하는 하얏떼 하찌노헤(八戶) 행 신간센을 탈수 있었다.
신간센의 시설은 참으로 잘 되어 있었다.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고, 세면기 안에 비누와 따뜻한 물, 온풍 드라이어 등이 달려 있었다. 21:00분에 도착하여 21:18분에 아오모리(靑森)가는 츠가루 특급을 타고 22:18분에 아오모리에 도착했다. 조금 있다가 22:45분 발 삿포로(礼幌)행 하마나쓰 카펫카를 탈수 있었다. 그런데 카펫석인줄 알았는데 의자였다. 예약할 때 카펫이라는 이야기를 안했기 때문에 나의 실수 였다. 다행이 의자도 뒤로 젖혀지는 나름대로 편안한 좌석이었다. 쯔가루 해협을 지날 때 바다 밑 약 240m 지점을 통과하고 53.85Km 의 구간중 23.3Km가 해저 부분이라는 것이 경이 로웠다. 아침 동산 저편으로 붉으스름한 태양이 솟아올랐다.
<넷째날>
새벽을 맞이하는 삿포로 새벽녘이 참 인상적 이였다. 7시간22분이 걸려 아침 6:07분에 삿포로에 도착했다. 거대한 대륙의 땅 홋카이도에 오다니 ...
아침 이른 시각이라 삿포로 역 구내에 짐을 맡기고 아사히가와(旭川)에서 비에이(美瑛)나 후라노(富良野)에 가보려고 하였다. 1시간20분이 걸려 아사히가와에 도착하여(8:15분) 아침을 먹으려 음식점등을 들렀으나 이른 시각이라 문을 열지 않았다. 9시에 문을 연다고 하였다. 9시 까지 기다렸다가 구내역 식당에서 ¥690엔을 주고 아침을 먹었다. 미소된장국이 맛이있어서 조금더 달라니까 ¥100엔 이란다. 우리나라 같이 반찬 더 달라고 하다간 큰일 난다.
아침을 먹고 역 종합 안내소에서 무료로 자전거를 빌렸으나 자전거가 하도 많아 내 자전거를 찾지 못하고 역 앞에서 사진을 찍고 오타루(小樽)를 가기위해 다시 삿포로로 돌아왔다. (10:00~11:20분) 오타루는 야경이 멋있다고 하여서 본도로 돌아가는 야간열차시간인 저녁 10까지 오타루와 삿포로 시를 관광하기로 했다. 삿포로 역에서 삿포로 맥주 박물관을 들렸다. 점심시간이라 1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근처 벤취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너무 돌아다녀 다리가 무척 아팠다.
날씨가 무더우니 까마귀가 겁도 없이 옆으로 와서 개울에서 목욕을 한다. 1시에 안내를 받아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열심히 설명했다. 삿포로 맥주의 탄생부터 제조공정, 호프제조용 보리등도 보았고 마지막엔 무료라는 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200엔의 생맥주가 있어서 맛을 보았는데, 음료수같이 맛있었다.
버스를 타고 오도리(大通) 공원에 도착했다. 많은 인파가 즐겁게 놀고 있었다. 중앙에 커다란 분수와 TV탑 시계탑등을 구경했다. 삿포로시에는 관광객을 위한 노인 자원 봉사자가 많았다. 친절하게 시계탑 위치까지 안내해주는 할머니, 시계탑에서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는 할아버지 등이 인상적이다. 홋카이도 대학의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고 외쳤던 클라크 동상과 포플러 가로수 길도 가보았는데, 생각보단 별로였다.
오타루(小樽)를 가기위해 15:44분 발 16:14분 도착 특급열차를 탔다. 32분이 걸려 오타루에 도착했다. 놀라운 것은 지금껏 기차시간이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것이였다. 1분도 틀리지 않았다. 운전사와 역무원은 계기판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수신호로 남들이 보지 않더라도 혼자서 중얼거리며 확인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오타루는 유명한 관광지답게 볼거리가 많았다.
먼저 아르바이트하는 인력거 끄는 청년들이 인상적이다. 전통인력거 복장으로 많은 손님을 끌고 있었다. 오타루 운하에는 운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많은 창고들이 있었는데, 진귀한 잡동사니 파는 가게와 먹거리 가게등이 있었고, 아름답고 아담한 교회가 있어 들어가 보니, 예식장이란다. 예배는 전혀 없고 단지 예식용 세트장 이었다. 참고로 일본은 크리스찬이 별로 많지는 않지만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십자가 목걸이 를 지니고 있어 크리스챤이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면서 단지 예뻐서 차고, 뭔가 복이 될 것 같아서 찬다고 했다. 그저 하나의 악세서리로 십자가 목걸이를 하는 것이다.
운하를 따라 돌로 된 거리를 걷다보면 중간에서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같이 잘 어우러진다. 영화 ‘러브레터’로 유명한 공예관을 들렸으나 월요일이라 휴관일이였다. 오르고르당(オルゴール堂) 이라는 유명한 과자점과 세계에서 제일 큰 증기시계도 구경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오타루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운하위로 네온사인의 불빛이 정말 환상적으로 비치고 있었다.
오타루에서 오후 7:04분 열차를 타고 삿포로로 향했다. 19:36분 도착 저녁 10시에 삿포로에서 아오모리(靑森) 가는 야간 열차를 타기위해 약 2시간 삿포로 시내를 다시 구경했다. 저녁을 먹지 못해 음식점에 들려서 삿포로 우동과 교자를 시켜 먹었다. 그런데로 맛이 좋았다. 삿포로 역 앞에서 열심히 혼자서 춤 연습을 하는 애들을 보았다. 요즘 한창 유행인 물구나무 서서 터닝도 하고 해드 뱅잉도 하고 아무튼 열심이었다.
어느덧 다시 돌아가기 위하여 예약해 두었던 야간 열차(카펫카) 하마나스(はまなす)를 타고 밤 10시 출발 다음날 아침 5시35분 도착 이다. 바닥에 누워서 아침 방송으로 깨우기 까지 정신없이 잠을 잣다.
<다섯째날>
아오모리 역 화장실에서 양치질과 세수, 면도를 했다. 역을 나와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역 근처의 공원에 들러서 아오모리에서 북해도 하코다떼(函館) 까지 운행했다고 하는 배를 구경하였다. 지금은 해저 터널이 뚫려 쓸모없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본도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상당히 유명한 여객선 이라고 했다. 근처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아침 7시46분 발 하치노헤(八戶) 8시45분 도착하는 기차를 탔다. 하치노헤 에는 그다지 볼만한 거리가 없다고 하여서 8시55분 출발하는 신간센을 타고 12:08분에 도쿄에 도착했다. 하치노헤 에서는 날씨가 매우 좋았다. 햇볕이 쬐었으나, 신간센을 타고 동경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빗방울이 차창 밖으로 쏟아진다. 좀더 가니 안개가 낀듯한 흐릿한 날씨로 변하고 다시금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오다가 도쿄근처 우에노(上野)에 내렸다. 서민적 분위기가 물신 풍긴다. 역앞에 우에노 공원에 들렸다. 입구에 메이지 유신의 핵심 인물인 사이고다카모리(西鄕陸盛) 동상이 있다. 일본 근대화를 위해 조선을 침략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를 주장했던 인물이라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았다. 다음으로 백제 왕인박사(王人博士) 비를 찾았으나 공원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안내 책자의 지도를 보고 간신히 찾았으나 잘 보이지 않은 구석에 자리잡고 있어 사이고다카모리 동상과는 달리 썰렁한 기분이였다.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도무지 사람이 오지 않았다. 얼마후 어떤 아가씨가 오길래 사진 한 장 부탁한다고 했더니. 자기도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 반가웠다. 이렇듯 한국사람 만이 이곳을 방문할 뿐 이였다.
다음으로 우에노도쇼쿠(上野東照宮)를 찾기 위해 어떤 할머니 두 분에게 위치를 물어 보았는데 불편한 몸으로 목발을 짚고 있는 곳까지 안내해 주고는 유유히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금으로 치장한 금색전은 외부에서 보아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다음으로 길 건너에 있는 시노바즈연못(不忍の池)을 보았는데 연꽃이 징그럽게 피어 있었다. 공원은 무료로 개방이 되어있어 그곳에 노숙자가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여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후문으로 나와 재래시장인 아메요꼬(アメ潢) 시장을 보았다. 갖가지 물건과 식료품들을 팔고 있는데 우리의 시장과 다르지 않다 중간에서 ¥680엔 짜리 돈까스를 넣은 점심을 먹었다. 맛이 느끼하여 가지고간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었다. 신기하게 쳐다보는 여 종업원에게 고추장에 대하여 설명하고 남은 것을 주었다.
JR 우에노 역에서 도쿄까지 4정거장 간 다음 신오사카(新大板)행 신칸센 열차 표를 끊었다. 도쿄 15:36분- 신오사카 18:36분에 도착하여 신이마미아(新今宮) 역 근처의 ¥1700엔 인 라이잔 호텔에 머물렀다. 다다미방에 TV 한대와 작은 냉장고, 공기쿨러 한대가 전부이다. 조금은 지저분하지만 그런데로 괜찮은 편이다. 이 지역에는 싼 호텔이 많이 있었다. ¥1400부터 침대는 ¥2100엔 으로 저렴한 편이였다. 근처 마켓에 가서 저녁용 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먹고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
<여섯째날>
아침 일찍 교토(京都) 구경을 하려고 열차를 탔는데 거대한 오사카 답게 출근 준비로 분주했다. 역사의 도시 교토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즐비하였다. 먼저 시가지를 돌아보기 위하여 1일 버스 승차권을 구입했다. ¥500엔이면 하루종일 버스를 무한 승차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역에서 가까운 히가시혼간지(東本願寺)와 니시혼간지(西本願寺)를 방문했다. 방문한 날이 9월1일 소방방재의 날 훈련이라 분주했다. 실제상황과 똑같은 훈련을 하고 있었다. 히가시혼간지와 니시혼간지는 원래 같은 곳이 였는데 절의 세력을 약화 시키기 위해서 나누었다고 한다. 두곳 다 무료였다.
참으로 특색있는 것은 보통 공원이나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무료이고 중요한 부분만 유료로 돈을 받고 있어서 입구에서 돈을 받는 우리나라 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버스를 타고 니조조(二條城)에 들렸다. 도쿠가와이에야스의 본부로 유명한 곳이다. 니노마루고뗀(二の丸御殿)은 모모야마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 소리가 나는 마루로 유명하다. 적군의 침입을 알기위해 밟으면 소리가 나게 만들었는데 직접 밟아보니 살살 밟아도 정말 새소리가 났다. 그 뒤로 니노마루 정원이 있는데 정말 일본식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했다. 잘 정돈된 정원이 마음을 안정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금빛 찬란한 킨까꾸지(金閣寺)를 찾았다. 입구의 입장권이 부적같이 생겨서 인상적이다. 3층짜리 누각의 2,3층에 금으로 입힌 누각이 연못에 반사되어 찬란함이 극치를 이루었다. 배모양의 소나무도 보고 료안지(龍安寺)를 구경했다.
이곳은 그다지 화려하거나 크지는 않지만 돌로된 정원인 석정이 유명한 곳이다. 마루에 앉아 석정을 바라보며 선의 세계에 빠져들어 보려 했지만 좀처럼 감정이 잡히지 않는다. 석정뒤로 엽전모양의 돌이 있는데 가운데 입구(口 )자를 중심으로 俉唯知足-(남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함을 알라)이라는 글귀가 씌어있어 바로 앞에 앉아서 감상할수 있었다.
어제 충전한 건전지가 다 되어서 2개에 ¥600엔을 주고 갈아끼웠다. 다음으로 버스를 타고 천수관음상으로 유명한 산주산께도(三十三間堂)에 갔다. 1000개의 불상들이 모두 금박을 입힌체로 위엄을 과시하고 있다. 장엄하고 화려하여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직원에게 들켜서 무안을 당했다.
다음으로는 국립 박물관옆을 지나 토요토미히데요시를 모시는 토요쿠니신사(豊國神社)로 향했다. 제법 근사하게 잘 지어놓았고 사람들도 간혹 왔다갔다 하였다.
다시 길을 물어 바로 앞 길건너에 있는 미미즈카(귀무덤)을 보았는데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다가 전후에 이것들을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관리도 엉망이고 사람들도 찾는이가 없었다. 바로 옆 공원에도 찹초가 무성하고 감히 용기내어 들어가 보아야 할 정도로 음산한 곳이였다.
다음으로 키요미즈테라(淸水寺)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조금은 언덕길을 올라가다보니 양쪽 길 옆으로 기념품 및 찻집 등이 있는데 키요미즈자카(淸水坂) 라는 거리를 걷다보면 중간중간 시식할수 있는 코너가 있어서 하나씩만 시식하여도 점심요기는 거뜬히 해결이 되었다. 오차도 무료료 주어서 2잔이나 마셨다.
청수사 입구 돌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니넨자카(二年坂),산넨자카(産寧坂)를 거쳐 긴까꾸지(銀閣寺)로 향하였다.
은각사는 금각사와는 달리 색이 변색되어 화려함은 덜하였고 중간중간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서 입장료에 비하여 구경거리의 값어치는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헤이안신궁(平安神宮)도 무료인데 바닥의 자갈돌과 건물의 주홍빛 단청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입구의 음료대에서 물한잔 마시고 교토역으로 향했다. 어느덧 거리는 어둑어둑 밤에보는 교토역은 환상적이다.
먼저 하늘까지 닿아있는 에스컬레이터는 타도타도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 이였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거쳐) 지상 15층, 지하3층의 좌 우 날개처럼 펼쳐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교토에서 2번째로 높은 스카이가든에 들러 유명하다는 교토라면을 사먹었다. 돼지뼈 국물에 고기2점 굵은 면발. 그럭저럭 맛은 괜찮았다(¥850엔). 20:07분 특급 열차를 타고 20:32분 오사카에 도착하여 숙소인 신이마미야 역에 도착 편의점에 들어 아침끼니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교토와 더불어 역사의 도시 나라(奈良)를 방문하기로 하고...
<일곱째날>
9/2일 아침 출근시간에 맞추어 오사카를 나왔다. 이제는 표 끊기도 귀찮아서 그냥 pass card 만 보여주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나라(奈良)도 오사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편히갈수 있었다. 아침 08:50분에 나라에 도착하여 (쾌속으로 신이마미야 역에서 약 35분) 산죠도리(三條通り)상가를 쭉 지나갔는데 바닥의 보도블럭과 양옆의 상점이 아담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중간의 마트에 들러서 도시락과 음료수를 사서 나라공원으로 향했다.
입구에 둥그런 사루사와연못(さるさわ池)이 있어 거닐다가 어떤 노인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뜻밖에 한국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고 과거에 LG와 관련된 일을 하여 한국에도 몇 번 왔다고 한다. 세계 각지를 다녔었고 교토의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는 도시샤 대학을 나온 인테리였다. 뜻밖에 차 한잔 사겠다며 근처 찻집에 가서 센드위치와 커피를 대접 받았다. 가져간 메모장에 一期一會 茶道の情神 이라 써주셨다. 1번의 만남, 차를 마신 기념 뭐 그런 내용이겠지. 이름은 이토 시니치씨 였다. 참으로 자상하고 친절한 분이였다. 감사를 표하고 명함을 건냈다. 한국에 오면 연락 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코후꾸지(興福寺)로 향했다.
갑자기 사슴들이 절 내부에서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다. 도망가지도 않고 신기했다. 토다이지(東大寺)로 가는 나라공원 주변에는 많은 무리의 사슴들이 있었다. 내 도시락 냄새를 맡고 뒤에서 끙끙 거리며 따라다닌다. 적당히 물리치고 다이부쯔덴(大佛殿)이 있는 동대사를 향했다. 세계최대의 목조 건물 다이부쯔덴과 그 안에 있는 세계최대의 청동불상인 다이부쯔(大佛)는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높이 15m에 부처의 손바닥이 16명의 사람이 올라 설 수 있다고 한다. 얼굴 크기가 5m 26년 걸려 전국의 구리 500t 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불상 뒤편으로 기둥에 입구字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부처의 콧구멍 크기와 같다고 한다. 이 구멍을 통과하면 1년 동안 불운을 막아준다고 하여서 너도나도 들어가는데 한 서양인이 들어갔다가 못 빠져 나오고 바둥대자 모두가 웃고 즐겁게 박수치곤 하였다.
그 뒤로 일본최대의 보물창고라 일컫는 쇼소인(正倉院)을 방문하였다. 건물만 보여줄 뿐 내부의 문화재는 공개하지 않아 아쉬웠다. 보관을 용이 하게 하기 위하여 건물을 지상에서 높이 띄워서 건물이 지어진 것이 특색 있다. 다음으로 니가쓰도(二月堂)를 올라갔다. 가파른 돌계단 위로 올라가자 나라 시가지가 펼쳐지는데 전망이 아주 좋았다. 중간에 그림을 그려서 엽서를 만들고 있는 한 할아버지를 만나 좀 쉬면서 이야기하고 호류지(法隆寺)로 향했다.
호류지는 오사카로 돌아가는 도중에 있었다. 나라역에서 10여분 남짓 호류지 역에서 내려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34도가 넘는 정말 무덥고 짜증이 났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다. 여학생들도 종아리를 가리는 흰 양말을 길게 신고 다니고 땀도 흘리지 않는 것 같다. 나도 보통 때 땀을 별로 흘리지 않는 체질인데 비 오듯 주룩주룩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곤 색 반팔 티셔츠는 땀에 젖고 마르기를 수십 번 어깨 부분은 하얗게 소금얼룩이 생겼다. 셔틀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약 10분 정도 근처 편의점에서 만화책을 보며 에어컨 바람에 감사하고 있다가 버스를 타고 호류지에 도착했다.
본당으로 들어가는 길의 난따이몬(南大門) 근처에서 어느 젊은 분께 나는 한국 사람인데 사진 한 장 부탁한다고 하니까 그쪽에서는 난 중국인이라고 했다. 한국의 문화가 일본에 영향을 끼쳤고 호류사의 금당 벽화가 한국사람이 그린 것을 아냐고 물어보니까 중국에서 대학교 역사시간에 배워서 알고 있다고 하여 내심 마음이 뿌듯했다. 호류사는 일본 최초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 되었다고 한다.
구경하고 근처 한적한 대문 옆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우리나라 역사가 깊은 곳이기에 흥분하고 들어가려 하였으나 입장료가 ¥1000엔 이고 금당벽화는 훼손정도가 심하다고 하여 관람을 시키지 않아 경내는 들어가지 않고 주변만 구경해도 충분했다. 밖에서 건물은 죄다 보이니 굳이 돈 내고 들어갈 필요가 있겠는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법륭사 역까지 걸어가기로 하였다. 근처에 경치가 좋은 곳이 있어 사진을 찍으려 하였으나 아뿔사! 카메라가 없었다. 600여장의 사진이 담겨있는 사진기를 잃어버렸으니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심하게 당황해본 기억은 이제껏 없었다. 나는 재빨리 법륭사로 다시 뛰어갔다. 헐레벌떡 도시락 먹던 곳에 가보았지만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수학여행 온 듯한 학생들에게도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였다.
실망과 좌절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입장료 판매소에 가서 경내 안내 방송을 부탁했으나 안내 방송 시설이 안 되어 있다고 했다.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거의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표 받는 사람들에게 한국 연락처를 적어놓고 다시 한번 내가 구경했던 곳을 다시 돌아보니 근처 휴게소에서 나를 부르는 것 이였다. 가까이 가보니 나의 모습을 보며 혹시 카메라 잃어버리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나는 몹시 기쁜 마음으로 그렇다고 하니까 어떤 분이 남자 화장실에서 습득하여 그곳에 맡겨 놓았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나는 뛸 듯이 기뻤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기위해 선반위에 올려놓고 그냥 나온 것 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자기 물건이 아니면 절대로 가져가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오는 배편에서 보따리상 아주머니는 공항에 물건을 놓았는데 3,4일이 지나도 그대로 있다고 하면서 역시 선진국은 뭔가 다르다고 했다. 찾아준 분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받아들고 역으로 향했다.
걸어오는 길은 그런대로 걸을 만 했다. 일본풍이 나는 주택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오사카행 급행에 몸을 실었다. 옆자리에 50대로 보이는 분이 탔는데 한국인인 것을 모르고 “오늘 날씨가 정말 덥군요!” 라고 말을 붙여온다. 심심하던 차에 서툰 솜씨지만 말벗이 생겼다. 그분은 오케스트라의 단장이었다. 나도 음악을 좋아하며 테너파트의 악보도 볼 줄 안다고 하자 좋아하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먼저 숙소 근처역 에서 내렸다. 밤에 도톰보리(道頓堀)를 구경 하기위해 숙소에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오사카의 야경과 음식거리로 유명한 도톰보리로 향했다.
도톰보리는 숙소가 있는 신이마미아 역에서 JR남바(難波)역까지 2정거장이다. 역사를 나오자 젊은 아이들이 역 근처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10대의 젊은 남 여 들이 요즘 유행하는 춤을 추며 연습을 하고 있었다. 불량스러워 보이지는 않고 나름대로의 규율과 규칙 속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밤이었고 주변의 간판들이 현란하여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몰랐다. 다행히 도톰보리를 향하는 일행을 만나 함께 이야기 하며 도톰보리에 도착했다.
여행안내 책자에서 보았던 구리꼬(クリコ) 간판이 인상적이다. 10개의 게다리가 움직이는 카니도라꾸의 (かに道樂) 간판, 쿠이다오레따로 (くいだおれ太郞) 인형도 보았다. 그곳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킨류라면(金龍ラーメン) 가게에 가서 한 그릇 하고 ¥300엔에 6개주는 타꼬야키(タコヤキ)를 맛 보았는데 배가 불러서 그런지 맛이 별로다 라면은 뼈돼지 국물에 굵은 면발을 넣어서 먹는데 조금 느끼하지만 먹을 만 하다. 반찬으로 김치를 주는데 너무 반가워서 잔뜩 먹었더니 갈증이 나서 혼났다.
대로변 뒤쪽으로 도톰보리 운하가 있는데 운하 옆으로 길게 산책로가 있어 젊은이들이 많았다. 도톰보리는 젊은이뿐만 아니라 중년의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북적거리는 우리나라의 명동 같은 분위기가 난다. 사람이 너무 많아 어깨가 서로 부딪힐 정도이며 양옆에 수많은 음식점 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일본은 대부분의 가게들이 가게 앞에 진열대를 마련해 놓고 모형 음식물과 가격표가 잘 정돈 되어있어 밖의 진열대의 모습만 보고도 그 가게의 메뉴와 가격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오사카의 젊은이들과 휩쓸려 거리를 구경하고 숙소에 돌아와 피곤하여 나가 떨어졌다.
<여덞째날>
다음날 일찍 오사카성을 구경하려고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여 나왔다. 3일간 ¥5100엔에 머물렀던 곳을 뒤로하고 오사카성이 있는 오사카성 공원역에 내려 락카룸에 짐을 맡긴후 간편한 차림으로 성을 구경했다.
임진왜란의 장본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일본 3대 성중의 하나로 8층 건물의 텐슈가꾸(天守閣)가 유명하다. 텐슈가꾸의 후문쪽의 고꾸라꾸바시 (極樂僑)에서 보는 텐뉴가꾸는 멋있어 보였다. 다리중간에는 그다지 깨끗하지 못한 것 같은 물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법 큰 물고기가 나왔다. 불법인지 합법인지는 몰라도... 낚시에 조금은 일가견이 있는 나는 흥분하여 이곳에서 낚시를 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는데 유명관광소 에서 낚시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천수각으로 가는길에 도요토미 히데요리(히데요시 아들) 의 자결터가 있다. 천수각 앞 마당에는 1970년에 묻었다는 타임캡슐이 있는데 그다지 쓸모 있는 것들은 묻혀있지 않은 것 같다.
광장 한쪽에서 어떤 노인이 한국의 아리랑을 비롯한 여러 노래들을 피리로 연주하고 있었다. 이젠 걸음을 재촉하여 후쿠오까 쪽을 구경하려고 10시 반 쯤에 역에 가서 신칸센을 탔다. 오는 도중 오사카에서 1시간 쯤 걸리는 오까야마(岡山)에서 내렸다.
오까야마에는 유명한 고라꾸엔(後樂園)이라는 일본식 정원이 유명하다. 고라꾸엔 가는길은 오까야마 역 앞에서 전차를 타도 되지만 전차로 8분 걸려서 10분 정도 더 걸어야 하므로 약 25분쯤 걸리는 도보로 이동했다.
하가시구찌(東口)에서 모모따로오도리(挑太郞大通り)라는 상점가 지붕밑으로 걸어가면 심심하지 않고 태양이 가려서 걷는데 그다지 힘들이 않았다. 오까야마 성의 텐슈가꾸(天守閣)는 검은색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색이다. 까마귀 성이라하여 우조(烏城)라고 부른다.
성 옆에 아사히카와(旭川) 건너편이 유명한 고라꾸엔 인데 성과 정원의 다리인 철교는 주변 환경에 비하여 썩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고라꾸엔 정원은 일본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회유식(回游式) 정원인데 규모가 4만평정도라고 한다 이곳저곳 구경하고 무더운 날씨와 지친 몸은 중간에 있는 휴식 공간 정자 마루에서 쉴 수 있다.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려 아래로 흐르는 개울물에 발을 담그면 아픈 다리의 피곤함이 싹 가시는 듯하다. 친절하게 발수건도 배려해둔 것도 고마웠다.
한적한 벤취에 앉아 오까야마 역에서 사 가지고온 도시락을 까먹었다. 이지방의 유명한 도시락이라고 하는데 ¥1000엔이다. 문어를 잘게 썰은 것에 밥을 넣고 먹물과 간장으로 볶은 것으로 검은색의 밥알이 꽤 괜찮았다. 일본 정원을 마음껏 감상하고 걸어서 역으로 향했다. 도심 중간을 오가는 전철이 친근감 있고 정겹다. 다음으로 오까야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구라시키(倉敷)로 향했다.
구라시키는 미관지구(美觀地區)로 불리는 운하를 사이에 두고 좌, 우로 일본식 고풍의 색채가 짙은 집들이 들어서있고 운하에 늘어서 있는 수양버들 가지가 운치를 더해준다. 중간의 기념품 상점에서 집사람에게 줄 조그만 머리핀을 구입했다. 구라시키는 흰색과 검은색 지붕이 묘한 조화와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느덧 어둑어둑하게 날이 저물어간다. 이젠 돌아가기 위하여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해야 했다. 다시 하카다(博多)행 신칸센에 몸을 싣고 골아 떨어졌다. 다행히 객실 맨 뒷자리에 있는 1인용 의자라 옆 사람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5시 28분 오까야마에서 출발하여 7시20분에 하카다에 도착했다. 처음에 묵었던 에스파 캡슐호텔 에 묵었다. 다음날 한국에 돌아 가기위해 짐을 정리하고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하루를 마감했다.
<아홉째날>
다음날 하카다 항에서 12시5분에 출발하므로 조금 시간이 남아 집사람이 사오라던 깃꼬망간장(キツコーマンしようゆ)을 사기위해 역으로 나갔다. 아직 9시가 안되어 상점 문을 열지 않았다. 9시까지 기다려 간장2병과 애들 에게 줄 사탕 2봉지를 샀다.
하카다 항 입구에서 기다리다 12:05분 배를 타고 오는 도중에 태풍 나비의 영향으로 바깥 파도가 몹시 무섭게 들이쳤다. 2층까지 물보라가 몰아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토를 하고 난리가 났다. 나는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면세점에서 오징어를 사서 뜯어먹고 있으니 승무원과 옆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태풍 카트리나의 피해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고(1천 306명 사망, 6644명 실종) 인도 파키스탄에서는 지진으로 10명 가까이가 죽었다고 한다. 다행히 한국에 잘 도착하여 열차타고 천안에 내려 막차를 타고 당진까지, 당진에서 서산까지 택시로 오자 집사람이 서산까지 마중나왔다. 10일만의 상봉이다. 오다가 밤 12시가 넘었지만 얼큰한 한국맛이 그리워 태안 야식집에 들러 얼큰한 생태찌게를 먹었더니 그간의 피로와 허기짐(?) 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 했다.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한 것 같다. 혼자서 후쿠오카에서 훗카이도까지 75만원에 .... 내가 생각해도 대견했다. 남은 여비 50만원을 봉투에 담아 집사람에게 건네 주었더니 눈물겹게 고마워하는 눈치다. 집에 도착하자 일본과 남부지방에 태풍 나비로 인하여 수많은 인명피해와 이재민이 발생 했다는데 다행히 내가 가는 곳마다 날씨가 좋아서 즐겁고 유익한 여행이 되었던 것 같다. 짧은 일정 때문에 수박 겉핥기식의 여행 이었지만 좀더 일본을 바로알고 느낄 수 있는 다음번 여행을 희망하며.........
2005.12.21 태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