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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바람 속에서 ‘수원산 3인조 공비’는 행복했다 (8구간)
1. 일자: 2016. 7. 16 (토)
2. 봉우리: 수원산
3. 행로/시간
[화현고개(08:30) -> 서파삼거리(09:50) -> 수원산(10:45) -> 포벙커/점심(11:55~15) ~ (잣나무 숲, 힐링 구간) -> 불정산(12:10) -> 국사봉(12:52) -> 진목1리(13:40)]
4. 동행: 산거북님, 다리님, 명동
< 한북정맥 8구간 산행을 준비하여 >
마른 장마를 걱정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월초 큰 비가 왔고, 비껴간 태풍이 밀어 올린 수증기로 때이른 무더위가 온 나라를 찜통으로 만들었다. 이번 주중과 주말에 또 비 예보가 있다. 어차피 정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날씨가 어째든 간에 한북정맥 산행은 계속된다. 틈을 내 지도를 펴 놓고 남은 구간을 살핀다.
8구간, 화현고개~수원산~국사봉 (남진, 7/16)
9구간, 화현고개~운악산~원통산 8/5
10구간, 원통산~청계산~오뚜기고개, 8/20
11구간, 오뚜기고개~강씨봉~국망봉~국망봉 휴양림, 9/3
12구간, 광덕휴게소~백운산~국망봉~국망봉 휴양림, 9/17,24
13구간, 광덕휴게소~광덕산~하오고개, 10/8. 15
14구간, 하오고개~복주산~수피령, 10/22, 29
횟수로도 거리로도 반을 왔다. 돌이켜보면 한북정맥 종주 산행의 전반전의 대표 키워드는 ‘어수선함, 좌충우돌’이 아닐까 한다. 멤버가 늘 달랐고, 집결지도 들쑥날쑥 했다. 누구 하나 선답자 없는 ‘도로, 아파트 숲, 대로, 신호등, 군부대, 마을 뒷길, 골프장, 묘지’등이 산재한 어수선한 길을 용케도 잘 헤쳐 왔다.
모두가 정맥 초보자였기에 좌충우돌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고, 열린 마음으로 길에 순응하며 걷지 않았나 싶다. 그 와중에도 최대 난코스로 여겼던 울대고개~우이암 상장능선 비탐구간을 거뜬히 넘었고, 정맥에서 벗어난 불곡산을 다녀오는 여유도 가졌다.
이제 남은 후반전은 전반전과는 다르리라. 우선 산의 격이 다르다. 수원산, 운악산, 청계산, 강씨봉, 국망종, 백운봉, 광덕산, 상해봉, 복주산 등 명산 급 봉우리들이 즐비하다. 어수선한 등로도 거의 없다. 집결지는 모두 동서울터미날이다. 불확실성이 줄어 들어 제대로 된 정맥 산행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오늘 구간은 15km 거리에 여유 있는 6시간 산행이 될 것이다. 화현고개~서파삼거리 90분, 서파삼거리~수원산~국사봉 3시간 30분, 국사봉~기장교/큰넉고개 1시간을 예상해 본다. 점심은 수원산에서 국사봉 가는 중간 어디쯤에서 할까 한다.
< 희망사항 >
장미빛 희망을 나열했지만 정작 후반전의 첫 산행을 준비하는 마음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일단 진행 방향이 남진으로 바뀌었고, 날머리도 불확실하다. 게다가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첫 산행이라 시외버스 예약 등 변수도 많다. 그래도 이 모든 일이 산행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모름지기 여행은 익숙한 길을 떠나 낯 섦과 맞닥뜨리는 게 아니겠는가? 길에게 길을 물으려 길을 떠나자!
그나마 주초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새 교통편을 찾아 조금 더 일찍 들머리에 설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줄 모르겠다.
(여기까지는 산행 준비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화현고개 가는 길에 >
초저녁에 골아 떨어져 새벽녘 창문을 두드리는 거센 비 소리에 잠이 깬다. 예상은 했지만 비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밴드를 살핀다. 밤새 누군가‘이 빗속에 웬 산행?’이라 올려 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새 글을 찾는다. 없다. 그들이 누구던가. 2년 백두대간 종주, 폭우 속에서도 산행을 중단하자는 말은커녕 “와! 우중산행. 시원하다.”를 외치던 사람들 아니던가? 슬쩍 묻어가려 했던 내 잔머리가 부끄럽다.
새벽 빗속에 집을 나선다. 온전치 않은 무릎 때문에 많은 물건들을 덜어냈지만 비 준비로 배낭은 묵직하다. 얼른 동서울로 가서 표를 끊어야 하기에 편한 좌석버스 대신 조금 더 일찍 도착이 가능한 사당행 일반버스를 탄다. 동서울에서 송암님과 조우한다. 속이 좋지 않다 하신다. 이 빗속에서 먼 곳까지 어르신을 오시기 한 게 송구스러웠다. 일행이 4명으로 줄어든 걸 확인하고는 태릉으로 가서 산거북님 차를 함께 타고 가기로 한다. 약속된 시간에 산거북님과 다리님과 만났다. 송암님은 고민 끝에 이곳에서 귀가하시기로 했다. 만남이란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편지 않은 몸임에도 예까지 나와 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포천에 들어서고, 잠시 헤맨 끝에 화현고개에 차를 세우고 들머리에 선다. 8시 30분이 막 지난다.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거세졌다 반복한다. 숲으로 들어가는 동지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8구간 시작을 알리는 사진을 찍는다.
< 화현고개에서 수원산 >
명덕삼거리까지는 지도상으로만 보면 400미터 초반의 봉우리 두 개와 철조망만이 존재한다. 거리는 5km 정도다. 시작 고도가 300미터 초반이니 비고 100미터만 오르면 된다. 봉우리 사이에 별 표시가 없다는 건 높낮이 차가 크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데 ‘철조망’이 변수다. 군부대가 넓게 위치해 있는데, 앞선 정맥 길에선 철조망의 존재는 곧 길 찾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이었다.
초반 등로는 분명하다. 첫 봉우리 444봉까지 무리 없이 올랐다. 역시 군부대가 넓게 위치해 있다. 잠시 가다 보니 한북정맥 이정표가 나타나고 길도 편안하다. 빗 속에서도 걸음의 여유가 묻어난다. 우의 위를 때리는 빗소리의 리듬에도 익숙해져 간다. 반복해 내 몸을 두드리는 소리에 편안한 위안을 느낀다.
철조망 뒤편 군부대 초병이 우릴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큰 빗 속에 커다란 배낭 메고 등산을 한다는 게 제정신인가? 초병의 시선에 경계의 눈빛을 느낀다. 무장공비가 된 기분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린 즐거운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온갖 잡생각이 사라지고 길을 나서길 잘 했다는 마음뿐이다.
< 들머리에서 / 철조망 안 원추리 >
다리님이 오래된‘독립선언’이야길 꺼낸다. 난 오백원, 거북님은 삼백원에 산다.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자 타인과의 다름 인정에 관한 이야기다. 자기성찰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결국은 행복의 기본임을 산에서 깨닫는다.
아들이 군에 있는 터라 철조망 안쪽에 자꾸 눈이 간다. 잘 정돈된 부대 안에는 고요가 깃들고 있다. 비와 휴일이 주는 쉼이 느껴진다. 간간이 눈에 들어오는 원추리의 노란 꽃 봉우리는 그들의 반복된 일상 속의 잔잔한 변화가 되어 주리라. 철조망을 클로우즈업하여 원추리 사진 한 장을 찍어 본다.
두 번째 봉우리를 별 힘 들이지 않고 올라 내려서자 도로가 보인다. 빗소리 말고는 모든 게 고요하다. 오히려 모든 소리가 비에 젖어 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처럼 비에 웃자란 풀과 길게 뻗은 아카시아 가지가 몸과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 치지만 개의치 않는다.
명덕삼거리에 도착했다. 도로 위에는 차도 다니지 않는다. 들머리에서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예상했던 시간이다. 트랭글의 부저가 평균 속도가 3km임을 알려온다.
수원산을 향해 오른다. 비고가 500미터이니 (수원산 고도를 800미터 초반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실제는 710미터였다.) 오름이 만만치 않다고 여기고 마음을 다져 먹는다. 비가 온 몸에 스며든다. 신발에는 오래 전부터 물이 들어와 질퍽거린다. 많은 걸 내려놓고 나니 마음은 편하다. 올랐다 잠시 평지가 나오고 다시 빡세게 기어오르니 군부대가 나타난다. 작은 테크에 이 길이 한북정맥에 속해 있음을 알리고 있다. 이곳이 수원산 정상인 듯 한 느낌이 든다. 정상 고도를 착각하여 더 높은 곳을 둘러 보아도 비 속에 사위 분간이 쉽지 않다. 오기 전 사진으로 본 풍경은 꽤 근사했는데 말이다.
철조망을 따라 내려간다. 또 이정표가 나타난다.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길을 찾아 주위를 둘러 보다가 포 벙커를 발견한다. 평소 같으면 지저분하다고 지나쳤을 곳인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비 바람 막아주는 최적의 식당이다. 개구리가 많으면 주위에 뱀이 있다는 반증이라는 다리님의 걱정은 금세 쑥 들어간다. 벙커 안은 참 아늑했다. 준비해온 음식들을 맛나게 먹었다. 거북님의 따뜻한 커피 맛이 일품이다. 행복이란 역시 상대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감정임에 틀림없다.‘3인조 공비’는 비오는 벙커에서 잠시나마 행복했다.
< 수원산의 힐링 숲 >
< 수원산에서 국사봉 >
비가 좀 잦아든다. 배도 부르겠다, 길도 편하겠다, 마음 맞는 동지들도 있겠다.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이어간다. 국사봉으로 향하는 초입 작은 바위지대를 지나자 등로는 걷기에 최적화된 숲으로 변한다. ‘국사봉과 약수터 정상’이란 이정이 우릴 이끈다. 수원산 정상은 어디인가? 하는 의문은 이내 잊혀진다. 정맥 길을 가면 되지 정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변화 없는 편안한 길에서 잠시의 방심이 알바로 이어졌고 언제나 그랬듯이 금방 제 길로 돌아왔다. 언제부턴가 키 큰 잣나무가 큰 숲을 이루고 있다. 숲에는 푹신한 주홍빛 카펫이 깔려있다. 웬 횡재냐 싶어 마음이 부푼다. 비 오는 숲은 몽환적이다. 멋진 담채화가 그려진다. 비가 만들어 낸 연무도 그림을 멋지게 해 준다. 오란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을 독점한다.
수원산에서 국사봉까지는 대략 5.8km, 2시간 거리다. 내촌 이정표가 있던 곳으로부터 시작된 잣나무 숲길을 무척 길게 이어진다. 이곳이 잣의 고장 가평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잣나무의 군락은 크고 넓었다. 그 숲 길을 걷는 기분은 힐링 그 자체다.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 거북님과 다리님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며 홀로 숲의 정기를 느낀다. 이 빗 속을 뚫고 길을 나선 참 의미를 얻는다. ‘힐링’내가 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 비 오는 숲에서의 힐링 / 불정산에서 >
갈색 융단이 깔린 길도 좋지만 등로의 높낮이도 거의 없어 산길이 이대로 되나 하는 기분으로 흥분하며 오랫동안 걸었다. 두 분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나 보다. 연신 놀라움을 표현한다. 산초도 따 먹으며 다정하게 걷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길가에 화려한 색을 띤 커다란 버섯들이 지천이다. 이 역시 비가 준 선물이려니 한다.
잣나무 숲 길이 끝나고 제법 긴 오름을 치고 오른다. 트랭글 부저가 울린다. 부근에 봉우리가 있을 리 없는데 하고 살피니 작은 바위 난간이 보인다. 거북님이 먼저 오른다. 트랭글을 살핀다. 불정산이란다. 오기 전 확인한 지도엔 없었는데 그 사이 누군가 이름을 붙였나 보다. 다리님이 주는 꿀물을 마셨더니 힘이 솟는다.
이제 국사봉은 그리 멀지 않다. 아직도 지나온 잣나무 힐링 숲의 잔상이 머리에 맴돈다.‘나무들 비탈에 서다.’란 말이 새삼 떠오른다. 서 있기도 힘든 비탈에 뿌리를 박고 거대한 몸체를 들어올리는 나무들의 힘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12시 50분 무렵 국사봉에 도착했다. 오면서 산거북님과 날머리 시작점을 찾아 두었다. 비도 그치고 정맥 산행도 끝이 났다. 평균속도가 3.2km다. 놀며 쉬며 왔는데도 무척 빠른 속도다.
< 화려한 색의 버섯 / 국사봉에서 >
< 국사봉에서 진목1리 >
남은 간식을 나누어 먹고 길을 나선다. 정상 옆 길로 가도 등로가 합류될 것으로 여기고 발을 내딛는다. 오솔길이 선명하다. 이리 좋은 길을 두고 지난번 왜 그리 고생했는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짙은 낙엽이 깔린 완만한 내리막, 무릎에 조심씩 소식이 온다. 그래도 지난번 보다는 훨씬 낮다.
고도가 금세 낮아지고 마을이 보인다. 예상했던 기장대 부근 암자는 어디 있지 하는 찰나, 커다란 공장 앞 마당에 서 버렸다. 곧이어 커다란 개들이 짖어댄다. 개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조심스레 내려간다. 등골이 오싹했다. 이내 공장지대를 벗어난다. 지도를 살핀다. 예정했던 기장대가 아님이 분명하다. 국사봉을 하산하며 오늘도 엉뚱한 곳으로 내려왔다. 산거북님이 한 말씀한다. “다음에 국사봉 또 옵시다. 그땐 제대로 길 찾을 수 있을꺼야….^^”
< 에필로그 >
작은 동네 백반집 식탁에 짐을 내려 놓는다. 초라한 찬으로도 맛난 식사를 했다. 이 역시 등산이 가져다 준 작은 행복이다.
산거북님 차를 타고 편하게 집으로 돌아와 밴드에 사진을 올리며 짧은 글을 함께 적는다.
‘비 바람 맞고 걸었지만 '힐링' 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산에 미친 세 사람'이 장마
비 오는 날, 시원한 바람 벗 삼아 잣나무 숲에서 재미나게 놀다 왔습니다. 사진이 산에서의 감동을 담아 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산거북님, 다리님. 추억 만들어 주셔 감사합니다.^^’
다음 번 운악산 산행이 벌써 기다려 진다.
< 한북정맥 8구간 산행 궤적 >
첫댓글 세찬 비를 맞으며 걷고 뛰고 하였습니다.
빗물이 땀물과 섞여 흐를 때..
강한 바람이 시원하게..
말려 주었습니다.
답답했던 가슴과 젖은 몸을. ^^
즐거웠던 산행 이었습니다 ^^
함께 하는 산행이 점점 재미있어 집니다.
좋은 경험했습니다. 즐거웠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