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굴떼굴 도토리 알, 울퉁불퉁 짱구머리
시골처녀나비
도토리 나뭇가지 질끈 꺾어 비질하고
사금파리 주워다가 구슬 구멍 파고
큰 걸음 세 발짝 건너 길게 한 줄 긋는다.
한 녀석이 엎드려 땅 먼지 호호 불 때
터진 바지가랑이 사이 고추가 빠끔히 인사하고
시골처녀나비 수줍어 잎새 뒤에 숨는다.
닳아진 고무신 한 짝 엿 바꿔 먹고
반 쪽 벗겨진 발뒤꿈치 때는 당당히도 까맣다.
서툰 곰배다마 꼬느다가
누런 콧물 손등으로 훔쳐내고
떼굴떼굴 굴러가는 상수리 알 옆으로 빠지니
둔전둔전 구경하는 누렁이만 발로 차인다.
* 주)
사금파리 - 사기그릇의 깨어진 조각, 옛날에는 이 조각의 날카로 운 면으로 돼지 새끼 불알을 깠다.
곰배다마 - 팔에 장애가 있는 경우 팔이 꼬부라져 붙어서 펴지 못 하면 곰배팔, 곰배라고 한다. 이런 사람이 구슬치기 하는 모양처럼 네 손가락을 반쯤 굽히고 엄지손가락 에 구슬을 올려놓고 그냥 튕기는 초보자들이 하는
구슬치기 방법이다.
다마 - 구슬의 일본말이나 어릴 적에 사용되었던 말이라 그대로 옮기니 양해바랍니다.
둔전둔전 - ‘어떤 놀이의 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뒤에 서 어슬렁거리며 뒷짐지고 있는 상태’를 뜻하는 고향 말.
어릴 적 동구 밖 참나무 아래에서의 추억들.
이맘때면 갈바람에 도토리 열매가 토실토실 익어 떨어진다.
참나무가 있는 동구 밖 어귀에서 이 열매로 구슬치기하던 놀이가 생각난다. 울퉁불퉁 짱구머리처럼 생긴 도토리 알로 구슬치기를 하면 구슬치기를 잘 하는 사람이나 못하는 사람이나 매 한가지로 실력이 비슷하다.
울퉁불퉁 짱구머리
참나무 아래 엎드려서
떼굴떼굴 도토리 알
도토리 키 재기로 다마를 친다.
쌩동그란 유리 구슬보다
타원형을 굴릴 수 있는 자유
그런 자유가 그립습니다.
유리 구슬처럼 잘 굴러가지는 않지만 모든 공처럼 동그란 모양이 아닌 럭비공으로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발상을 생각케 하는 놀이. 자유스런 생각, 이런 자유가 그립다.
자유는 자연에서 자연스러워야지 자유로 대접받는다. 자연에는 자연만이 돌아가는 법칙과 순리가 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 환경에 변화가 오고 곧이어 자연의 심판에 의한 재앙이 뒤따르게 된다.
자유스런 발상을 하는 시골 조무래기 불알 친구들은 자연 속에 던져진 도토리와 같다. 도토리는 자연 속에 동화된 자연 일체의 자유여야 한다.
“선주야~ 놀~자. 종복아~ 놀~자.”
동무 집 앞에서 부르다 보면 눈치껏 도망쳐 나온다.
“야 색꺄, 니가 젤 늦게 나와승께 다마치기 마당 쓸어라잉”
“알았어 임마. 근데 뭘로 쓰냐?”
“아따 섀끼 쩌그 도토리 낭구 모강댕이 끊어오면 되잖녀. 몽댕이 비찌락만들면 되제”
“거식아, 니는 다마 구녁 먼처 파라”
“몇 구녁이나 팔까?”
“야이 썩을롬아 한두 번 장시허냐? 아그들이 별루 업승께 니 구녁만 파라”
돌 담벼락에서 사금파리 주어와 ‘뱅뱅’ 돌려 땅을 파고 깔때기처럼 패인 구멍 속의 흙먼지를 ‘호호’ 불어 내면 콧잔등이 새까맣게 땀먼지 범벅이 된다.
“한나 두울 서이 너이.”
“아그들아, 곰배다마는 쳐주어도 말좆다마는 반칙인거 알것째.”
말좆다마치기는 구슬을 중지의 손톱에 올려놓고 엄지로 감싸 튕기는 방법인데 보통 선(순서)을 정할 때인 놀이 시작에만 사용하고 중간에 사용하면 반칙이다. 왜냐하면 구슬치기는 왼손 뼘을 펼치고 그 뼘 끝을 오른손 손목 선에 맞추어 튕겨야 하는데 말좇다마치기는 숫말의 성기가 길게 나온 것처럼 오른 손을 길게 내밀어 튕기기 때문에 잘 쳐주지 않는다.
“허메, 징헌 놈 보소. 말좆 까지 말라고 혔잔여. 너 한번만 더 그라믄 콱 붕알 까분다 알것냐?”
“알았어 임마. 니 차롄께 얼릉 허기나 혀.”
상수리 알은 다른 도토리 보다 동그랗기 때문에 유리 구슬 대용으로 구슬치기에 안성맞춤이지만, 울퉁불퉁하기 때문에 구슬 구멍에 쉽게 잘 들어가지 않는다.
날이 어둑어둑하여 상수리 알 구슬이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구슬치기놀이를 하다보면 어머니께서 집에서 부르시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온 고샅을 뒤흔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송국아~, 송국아~.”
“엄니~, 나 선주네 마당에 있어.”
“야 이 호랭이나 콱 물어갈로므 자슥아 후딱 안올래?”
“알았어라우. 째까만 있다 갈께”
“지금 당장 싸게 안올래?”
“알았당게”
그리고 나서 날이 어두워야 살금살금 대문을 들어선다.
이 도토리 키 재기하는 순진한 조무래기들은 자라면서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연을 떠나 도시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많은 사람과 사람끼리 부대끼면서 점점 기회를 엿보는 영악한 어른이 되어간다. 이기적이고 오만과 무지 속에 스스로 자유가 아닌 구속의 틀 속에 박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여 재앙을 가져오게 한다.
시골 조무래기 아이들은 도토리를 도토리로만 본다. 꼬마 총각들은 도토리 알을 유리 구슬보다 더 소중하게 호주머니 속에서 간직하고 다니다가 구슬치기 구슬로 사용한다. 하도 호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려 꺼내보면 반질반질하다. 꼬마 아가씨들은 도토리 꼭지의 깍정이로 빡금살이용 밥그릇이나 반찬그릇으로 사용한다. 물론 도토리 껍질은 장독대 간장 독이나 고추장 항아리가 된다.
**어른들은**
어른들은
도토리가
도토리로 보이지 않고
간식으로 보이고
묵으로 보이고
돈으로 보인다.
그러니 가을이면 온 산 참나무 밭에서 눈에 핏발을 세우고 발로 차거나 심지어 망치로 참나무를 때려 도토리를 줍는다. 참나무 밭에 들어가 보면 대부분 참나무들이 사람 눈 높이에 망치로 맞은 생채기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임자 없는 나무니까 도토리를 주워가도 된다고. 주워가지 않으면 다람쥐가 물어가거나 썩어서 버리게 된다고. 그러나 분명 임자가 있다. 도토리는 아이들의 것이요, 다람쥐들의 것이지 영악한 어른들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도토리는 자연으로 떼굴떼굴 굴러가게 놔두어야 한다.
가을이 되어 도토리가 익어 떨어질 때면 다람쥐들은 가실하는 농부들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도토리를 연신 물어 나른다. 양 볼태기가 터져라 가득 물고 열심히 가랑잎 밑 땅 속에 숨겨 놓는다. 겨울에 먹을 음식을 땅에 저장해 놓느라 부산하다.
다람쥐와 도토리의 이 긴박한 움직임은 생명의 싹을 틔우기 위한 지극히 숭엄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숨바꼭질 놀이이다. 도토리는 껍질이 두꺼워 땅에 묻히지 않는 이상 스스로 싹을 틔우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로 도토리와 다람쥐의 생명 끈 인연이 있어 다람쥐는 도토리를 물어다 땅에 묻어주고, 도토리는 그 대가로 도토리라는 식량을 다람쥐에게 준다. 다람쥐는 머리가 썩 좋은 편이 아니라서 자기가 숨겨놓은 도토리를 겨우내 모두 찾아먹지 못한다. 다람쥐가 찾아 먹지 못한 도토리는 싹을 틔우고 새 생명으로의 윤회를 시작한다.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번 넘으렴
팔-딱 팔딱 팔딱
날도 참말 좋구나.
도토리가 인간들이 맛배기로 먹는 간식일는지는 몰라도 다람쥐에게는 위 동요에서 나왔듯이 소풍갈 때 가지고 가는 점심인 것이다. 즉, 황금들판의 주식인 벼와 같은 한 해 겨울을 보낼 양식이다. 곳간에 양식이 떨어지면 가족들은 배고픔에 허덕이다가 굶어 죽게 되는 생존의 문제이다.
인간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있다. 인간이 도토리를 가져간다는 것은 다람쥐의 식량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람쥐의 식량을 훔쳐 가면 다람쥐 가족은 굶어 죽게 될 것이다.
다람쥐의 개체수가 줄어들면 당연히 도토리도 싹을 틔울 수 없어 도토리 나무가 줄어들고 산이 황폐해져 산사태와 홍수, 기상이변 등으로 자연 환경 생태가 파괴될 것이다. 더불어 재앙은 부메랑이 되어 인간에게 되돌아오는 것이 불 보듯 뻔한 것이다.
* 주) 빡금살이 - 소꿉놀이의 고향 말.
**도토리에 대하여**
도토리는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물참나무, 갈참나무, 돌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등 참나무과의 나무 열매를 지칭한다. 겉은 두껍고 단단하며 매끄러운 껍질이 있다. 속에는 한 개의 씨가 들어 있다. 모양은 공 모양, 달걀 모양, 타원형 등이며 크기도 여러 가지이다. 꼬투리에는 빵떡 모자나 종지처럼 생긴 깍정이가 있어 열매를 1/3 쯤 싸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구슬치기하는 도토리는 상수리나무의 열매인 상수리를 일컫는다. 상수리는 다른 도토리에 비해 크고 구슬처럼 거의 구형에 가까워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시골처녀나비(Coenonympha amarylis)
1. 분류 : 나비목 뱀눈나비과
2. 크기 : 앞날개의 길이 18~20mm
3. 분포 : 한국․중국․몽골․시베리아
4. 생태 : 연 1회 발생하며 6월에 나타난다. 날개 앞면은 암황색을 띠고 가장자리는 검정색으로 띠를 두르고 있으며 뒷면은 약간 암록색을 띤다. 날개 바깥선두리를 따라 뱀눈알 무늬가 있다. 나무딸기 ․엉겅퀴 등의 꽃에서 꿀을 빤다.
** 처녀나비의 유래 **
필자가 재직했던 인천 송도중고등학교 전신인 개성 송도고보의 교사로 재직했던 나비박사 석주명(石宙明 : 1908~1950)선생은 60만여 마리의 나비를 채집 관찰하여 128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47년에는 기존 일본식 나비 명칭을 우리 나라 향토적인 이름으로 한국나비 이름을 재정리 발표하였다.
위 시의 처녀나비는 봄처녀, 도시처녀, 시골처녀의 세 종류가 있는데 이름을 짓는 유래가 우리 민족의 정서가 물씬 배어 나는 정감 있는 이름들이라 여기 소개한다. 이름의 유래를 ‘인물평전 석주명’ 책에서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Coenonympha의 속명(屬名)으로 조선에는 봄처녀, 도시처녀, 시골처녀의 3종이 난다.
봄처녀는 봄에 한 달도 안되게 나왔다가 없어지는 것인데 그 나는 모양이 우리 조선 사람으로는 수줍은 처녀의 모습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도시처녀는 색채가 진한 다색(茶色)이요 앞 뒤 날개 안쪽에 있는 흰 띠가 도시처녀의 흰 리본을 연상케 한다.
시골처녀는 그 노랑색이 시골처녀의 노랑저고리를 연상케 하며 또 그 산지(産地)를 볼 때 전국을 통해서 시골에만 드문드문 난다.
벌레시인.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