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법
-은희경의 <타인에게 말걸기>를 읽고-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독후감을 쓴다는 것이 다 그렇듯이, 쓰기 쉬운 내용 없나? 라는 생각으로 살펴본 황석영의 한국명단편 101선. 그곳에서 눈에 띈 책 제목, '타인에게 말걸기'.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게 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이사를 많이도 다녔었다. 매번 옮기고 옮기는 학교에 적응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거의 매년을 전학생이라고 불리면서 학교를 다녔다. 전학 첫날 꼭 앞으로 불러내어 자기소개를 시키던 선생님이 참으로 원망스러웠던 그 시절, 처음 보는 아이에 신기해하며 관찰하듯 쳐다보는 시선들과 수십 개의 검은 눈동자가 두려웠다. 수없이 되풀이된 시간들, 그것의 트라우마 인지 나는 아직도 많은 사람 앞에 나서서 말하는게 두렵고, 타인에게 말걸기가 어렵다. 그래서였을까? ‘타인에게 말걸기’ 라는 책 제목에 흥미가 생겼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좋든 싫든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어로서 상대방과의 고리를 이어가고 그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점점 각박해지고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타인과의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소설 속 ‘나’는 타인에게 신경쓰는 것도 자신을 신경써주는 것도 원치 않으며, 일상생활의 단조로움만을 원한다. 반면에 ‘그녀’는 남에게 기대고 싶어 하며, 타인과의 관계에 목말라한다. 이런 둘의 모습을 보고 나는 소설 속의 ‘나’가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그 관계가 끊어지거나 그 관계로 인해 받을 상처가 두려워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다고 느꼈고. ‘그녀’는 상처를 받기 싫어서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에 매달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넌 남의 비밀을 안 뒤에 갖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정 같은 것, 그런 걸 나눠주지 않을 만큼 차갑게 보였기 때문이야. 난 네가 좋아.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냉정함 말이야.’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에 매달리다 계속 버려진다. 그런 ‘그녀’가 차갑고 자기중심적인 ‘나’를 부르는 이유,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관계, 언제고 쉽게 말을 걸 수 있을 만큼의 타인으로 사는 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면 인간은 한없이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