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추사의 <소창다명사아구좌(小窓多明使我久坐)> 글씨. |
| | | ▲ 추사의 <괴근소경(槐根小廎)> 글씨. |
이번에도 괴근소경(槐根小廎)>과 <소창다명사아구좌(小窓多明使我久坐)> 두 편액 글씨를 더불어 보면서, <소창다명사아구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겠다. 정확히 말하면 <괴근소경(槐根小廎)>은 서각 작품이고 <소창다명사아구좌>은 서각 작품을 탁본한 것이다. <소창다명사아구좌> 글씨를 두 번에 걸쳐 다룬다.
두 글씨를 다시 한 번 더 보겠다. 지난번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거나 눈썰미가 있는 독자는 보았을지 모르겠다. 두 편액 글씨의 관지(款識) ‘칠십이구초당(七十二鷗艸堂)’을 보자. 잘 살펴보면 글씨가 비슷하다. 눈을 비비고 더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비슷한 글씨가 아니라 똑같은 글씨다. 어찌된 일일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같은 글씨, 다른 인장
두 글씨의 관지 ‘칠십이구초당’은 분명 똑같은 글씨다. 이것은 집자(集字, 필요한 글자를 찾아서 모음)를 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칠십이구초당’은 어느 글씨에서 가져왔을까? <괴근소경>이냐. <소창다명사아구좌>이냐. 아니면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두 글씨 모두 원작이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칠십이구초당’ 관지만의 원작 글씨도 찾아지지 않는다. 이후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는 있다.
그러면 인장은 어떨까? 흥미로운 것은 당호를 쓴 관지 ‘칠십이구초당’은 같지만, 인장은 각각 다르다. 그러면 인장을 세밀하게 분석해 보겠다. 자세히 살펴보면 <괴근소경>에는 별호로 정방형양각인 ‘동해순리(東海循吏)’를, 장방형양각인 ‘금문지가(今文之家)’를 두인으로 새겨 넣었다. <소창다명사아구좌>에는 모두 아호인 ‘완당인(阮堂印)’과 양각으로 ‘동해서생(東海書生)’을 새겼다. ‘완당인’은 ‘완당’ 자는 음각으로, ‘인’ 자는 양각으로 새겨 넣었다.
< 괴근소경>은 실제 인장에 맞게 정성을 들여 제대로 새기려고 하였다. 반면 <소창다명사아구좌>의 인장은 조악하다. 각수(刻手, 글씨를 새기는 사람)가 작의적으로 성의 없이 새겼다. 그렇다 보니 ‘동해서생’에서는 ‘서(書)’ 자는 문자학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 소창다명사아구좌>는 조형적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또는 한 자 한 자 뛰어난 작품임에도 인장이 글씨의 가치를 상쇄시키고 있어 애석하다. 서각 작품이라도 인장을 엄정하게 새긴다면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동양 예술에서 글씨와 그림은 인장으로 귀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장은 작품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서각과 탁본 글씨의 허점
재미있는 사연을 전하는 해남 대흥사에 걸려있는 추사의 유명한 편액 <무량수각(無量壽閣)> 글씨는 아산 건재고택, 운현궁. 보은 선병국 가옥 등 여러 곳에 걸려 있다. 이 편액을 보면 관지나 인장이 각각 다르다. 글씨도 원 모습과는 조금씩 다르다. 이것은 각수나 각수에게 주문한 사람의 의도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 | | ▲ 보물로 지정된 ‘김정희 종가 유물’ 중의 하나. |
현재 서각과 탁본으로만 전하는 추사의 글씨에 대해 글씨와 호, 인장으로 작품의 제작 시기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원작이 전하지 않고 <괴근소경>과 <소창다명사아구좌>같이 서각과 탁본으로만 전하는 경우, 그 글씨를 감상하는데 있어 편액의 글씨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필 글씨와 달리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 준다. 이것은 두 번째 글로 다룬 바 있는 <다산초당(茶山艸堂)> 편액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다산초당’에서 ‘초(艸)’ 자와 아호인 ‘즉과도인(卽果道人)’ 그리고 인장은 각기 다른 곳에서 온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러한 편액만을 보고 연구해 오류를 범하고 있는 예를 차근차근 선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간 학계에서는 서각 작품이나 탁본 작품으로만 전해내려 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 작품인데, 원작이 전해 내려오는 명작도 발굴해 이 지상(紙上)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 소창다명사아구좌> 글씨는 전체적으로 예서지만 전서와의 융합, 역발상, 시원하게 뻗어 마무르는 획, 부조화 속의 조화 등이 시선을 끈다. 이 글씨에서 ‘좌(坐)’ 자를 재미있게 구사하고 있는데, 추사가 ‘좌(坐)’ 자를 이리저리 구성해보는 흥미 있는 자료가 있어 소개한다. 보물로 지정된 김정희 종가 유물 중의 하나다.
이번 글을 갈무리하려다 보니 정작 <소창다명사아구좌>의 참 멋진 의미를 빠뜨렸다. ‘자그마한 창에 햇빛이 참 밝아 나로 하여금 오래 앉아 있게 한다’는 뜻이다. 사색적이고 철학적이어서 참 끌리는 말이다.
쬐그만 창 앞에서 쭈그려 앉아 햇볕바라기를 하며 신산했던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추사옹의 모습이 자꾸자꾸 오버랩된다. 나는 숙연해지면서도 절로절로 웃음이 나온다. < 저작권자 © yes무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