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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 50: 22- 23절 // 제목 : 잃어버린 감사를 회복하자 // 2015년11월 15일
소련의 서기장이었던 후르시초프가 한 말입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은 'Thank you!' 를 가장 많이 말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No!' 라고 말할 때도 ‘Thank’ 를 사용하여 'No thanks' 라고 말합니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선포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Thanks giving day- 생각 - 감사
.그런데 미국도 변하고 있답니다. 지금은 미국도 젊은 사람들은 "감사합니다.(Thank you!)” 라는 말을 잘 못한답니다. 시내 좁은 길에서 길 을 비켜줘도, 엘리베이터에서 상대방에게 먼저 내리도록 배려를 해주는데도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 감사하지 않습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역대상16:34)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디모데후서 3장 2절에 말세가 되면 벌어질 징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 말세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마음에서 감사가 사라집니다. 감사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강팍해지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감사가 막히면 ... 축복이 오는길을 막고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감사가 막히면... 은혜가 찾아오는길을 막고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감사가 막히면.... 성령께서 찾아오시는 길목을 막고있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감사가 막히면 ... 능력이 찾아오는 길목을 막고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모든 것은 감사를 통하여 성도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선물인줄로 믿습니다.
미국의 어떤 사업가의 10살 난 예쁜 딸에게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이아이게 귀신이 들어가니... 동생을 미워하며 동생이 눈에 띄기만 하면 마구 때립니다. 몇 년 동안 정신병원을 다녀도 낫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머린 케러더스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아이의 부모님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알게 하시려고 이 아이를 주셨는지 먼저 깨달으셔야 합니다. (의미. 죽음의 수용소.프랭클린) 그것은 당신의 가정에 가장 필요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제부터 진심으로 감사하고 찬양하십시오."
부부는 무슨일이나 감사했다. . 그때에 불려진 찬송이 날구원하신주 감사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론 가을날 감사 /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
이렇게 감사하면서 찬송하는데도 아이의 상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발작이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감사와 찬양을 계속합니다. ..... .길가의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가정 희망주신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라고 찬송하는데 그 아이가 화분을 들고 들어오더니 웃으면서 일부러 방바닥에다가 화분을 매처서 깨뜨리는 것입니다. 흙과 화초와 화분 조각이 방바닥에 흩어졌습니다. 그 때 그부모님은 기겁을 하고 놀랐지만 오히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깨닫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라고 찬양을합니다. 그 순간 귀신이 그 아이에게서 떠나가고 아이가 깨끗해진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들고 찬양할때 사울왕을 괴롭히던 귀신떠난것 처럼 감사...
할랠루야..!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감사해야합까..? 감사할 수 없는 것 그것까지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몸에 배야합니다. 실수로라도 원망하지 않도록 부지중에라도 불평하지 안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이베디스다 연못가 38년된 환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물었을 때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예, 내가 낫기를 원합니다. 고침 받기를 원합니다’ 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엉뚱한 말만을 늘어놓았습니다.주여 물이 동할때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가는동안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갑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내 쓴잔을 마실 수 있느냐?” “네가 십자가를 질 수 있느냐?” “네가 은혜 받고자 하느냐?” “네가 성령 받고자 하느냐?” 고 물으실 때 ‘제가 주님을 사랑합다. 제가 주님의 쓴잔을 마시겠습니다. 제가 나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나의 사명과 나의 직분을 충성을 다하여 잘 감당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여야 합니다. ‘왜 새벽기도를 못 나오십니까?, 왜 주일성수를 하지 못합니까?, 왜 십일조를 하지 못합니까?’ 하고 물으면 왜 그리 핑계가 많습니까?
. 그는 예수님의 질문에 불평만을 늘어놓았습니다.
물이 동할 때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도의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거지를 만나서 적선을 하면 전혀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감사라는 단어가 아예 없습니다. 감사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전생을 믿기 때문에 당신은 전생에 나에게 빚진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갚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기 때문에 자기가 고침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감사는 기도의 문을 열어줍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가 잘 안된다고 말합니다. 기도가 막히고 기도해도 하늘에 무언가 덮고 잇어서 기도가 하나님께 까지 올라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또 실제로 기도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오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이런 때에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먼저 감사기도를 드리십시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하면서 감사의 제목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십시오. 기도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막히는 것은 감사함으로 아뢰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평으로 아뢰는 기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에게 와서 "아버지 용돈도 조금 밖에 안 주시고 너무 하세요." 하고 불평한다면 "그러냐? 알았어. 당장 올려 주지" 그렇게 하실 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먼저 웃으면서 밝은 얼굴로 "아빠, 감사합니다. 저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제 말도 잘 들어주시고... 난 세상에서 아빠가 정말 좋더라 아빠, 사랑해요!" 그렇게 말하면 "야 임마 너 또 뭐 필요한 거 있구나! 뭔데? 말해봐라" 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서도 염려와 불안에 눌리니까 감사를 잊기 쉽습니다. 밝은 마음으로 믿음이 충만해서 나아가야 하는데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까 믿음도 잃어버리고 불평과 원망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감사함으로 기도하다보면 과거에 받은 은혜가 떠오르게 되고 현재 누리는 축복이 깨달아집니다. 그러다보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미래까지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먹구름이 깨끗이 걷히는 것처럼 염려도 불안함도 다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대신 평안함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믿음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혜가 막 떠 오르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표정이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변화될 것입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은 "탱큐"입니다. 유대인들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혀에 붙기 전까지는 아이에게 아무 말도 가르치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를 말하고 감사를 기도하며 감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감사하는 이들에게 더 좋은 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몇번이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까?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을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출애굽의 사건이 얼마나 드라마틱합니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일은 얼마나 감격스런 일입니까?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와 수백만명이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세계 어느 민족이 이처럼 굵직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한 일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불평과 원망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감사에 소극적이고 불평에 적극적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전부 고달픈 인생을 끝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출애굽 이후에는 광야 40년 동안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넉넉히 공급해주셨습니다. 신8:3~4 보면 이스라엘을 만나로 먹여주시고, 입을 옷과 신을 신발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조금 후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혹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릴까봐 조심하라는 겁니다.
12절~14절(상).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
호13:6 보면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배부를수록 배은망덕해지는 인간의 실상을 지적합니다. 잠언 30장 아굴의 기도를 보면, 아굴이 염려하는 게 바로 그겁니다. 혹시라도 물질이 풍부해져서 하나님은 배반하게 될까봐 염려합니다. 잠30:8~9 “8 ...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 ”
본문속으로
오늘 본문 말씀은 잊어버린 감사나 약해진 감사생활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2절 전반절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감사회복, 혹은 감사생활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영어단어와 ‘생각’이라는 영어단어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감사 할 줄도 알고, 감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순간을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인생이 사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한 순간이라도 우릴 놓으시거나, 버리시면 우린 살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과거 하나님이 너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한 번 생각해 보아라. 그러면 왜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온전히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인 다윗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진실을 잊어버릴까봐 자신의 영혼에게 다짐 또 다짐하였습니다. 시 103:1-2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그 진실된 감사가 상실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감사의 삶, 감사의 신앙을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정말로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는 분이 계실까요? 그렇게 말씀 하시는 분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감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할 것이 없는 것이지 감사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손가락, 볼수. 걸을수있고. 소화되고, 말할수 있고....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릅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에게는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릅니다. 가정이 없는 사람에게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 얼마가 감사할 일이지 모릅니다. 자녀가 없는 사람에게는 자녀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부모가 없는 사람에게는 부모가 있다는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직장이 없는 사람은 직장이 있다는 것이, 학교 다니지 않는 사람은 학교 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이지 모릅니다. 그리고 지옥 간 사람은 천국에 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릅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장군의 지위를 빼앗겼고, 가정을 빼앗겼고, 제사장에게 갈 수도 없었고, 친구도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얼마나 사람이 급했으면 적국인 블레셋으로 도망을 갔을까요? 적진인 블레셋에 위장 도피도 했었지만 침을 흘리고 미친 척하고서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윗에게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다윗은 광야를 향해 발길을 돌렸습니다. 조금 전까지 살던 궁전과 비교할 수 없는 곳입니다. 뜨거운 열기와 빗줄기, 모래 폭풍과 우박이 시도 때도 없이 사방에서 불어 닥치는 곳입니다. 한참을 헤매던 다윗은 저 너머로 사해가 보이는 한 동굴에 들어가서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곳이 나중에 유명해진 아둘람 굴입니다. 햇볕이 들지 않고 조용하며 안전하였습니다.
어두컴컴한 굴 속에 앉아 있는 다윗을 그려 보십시오. 세상 천지 어디에도 갈 데가 없습니다. 광야의 굴 속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혼자 남았습니다. 누웠던 다윗이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바닥에 대고 기도를 시작했을 때 눈물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 때 드린 기도가 시편 57편입니다.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그렇게 울며 기도하다가 다윗의 마음이 이상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억해 냈습니다. 들판에서 홀로 양을 칠 때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외롭게 버려지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찬양이 퍼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시 57:7~1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 감사는 눈물 없이 나올 수 없는 감사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감사할수 없다. 다윗의 심령 안에 진정한 감사의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삶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은 다시 일어나게 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의 감사가 터질 때 삶이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삶은 변화됩니다.
가와가미 기이치.... 감사 일만번의 기적..
다윗만이 아닙니다. 역사 이래로 성령에 의하여 눈물의 감사가 터지므로 말할 수 없는 파멸의 위기에서 놀라운 삶의 승리를 얻었던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감사로 살아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 될지 깨닫게 해주십니다. 감사는 받은 것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냉수 한 그릇이라도 내가 정말 받았다고 깨달아져야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자신의 간증을 통해 “은혜에 익숙한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야코는 중병에 걸렸을 때 한 청년을 만나 전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과 결혼을 했습니다. 병든 자신과 결혼을 해 준 남편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몇 년을 같이 살다보니 갈수록 고마운 마음이 식어지고 그저 그랬습니다. 남편의 사랑이 당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신경질도 내고, 미워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은혜에 익숙한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은혜, 죄 가운데 나를 구원하신 은혜에 너무나 익숙하여 감사를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찬송을 불러도 기쁨이 없으며, 기도를 해도 감격이 없는 신앙은 아닙니까? 만족보다는 더 많은 것을 바라며 불평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의 타성에 젖어 감격을 상실한 채 밋밋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모든 것이 은혜에 익숙한 나머지 감사를 놓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인 것입니다.
(감사마비...신경마비...느낌이 없다 ) 잊어버린다.
사 49:14-15절에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결과 : 불행과 멸망
인간이 감사치 않고 계속 매은망덕하게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하면, 세상과 짝하고 다른 신을 섬기면 반드시 멸망할 것을 경고합니다. 19절~20절.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다른 성경 구절에도 경고의 말씀이 나옵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시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의 회복 : 하나님의 은혜 기억
그러면 여러분,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단순한 방법이 있습니다. 본문 18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8:17“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 ” 그래서 성경을 보며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잊어버리지 말라는 말씀이
반복 강조됩니다. 시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하나님이 먹이신 것만 해도 엄청날 거다 ...” 정말
그렇습니다. 대충 1년에 1,000끼 먹는다고 계산해도 30세면 3만끼, 50세면 5만끼 먹은 겁니다. 한 끼에 몇천 원으로 계산해도 수억 원이 됩니다. 엄청나죠. 어디 먹고만 사나요?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 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해 주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일상 생활 자체가 감사 제목입니다. 그런데 뭘 몰라서 불만 불평합니다. 어느 평범한 주부의 간증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평소 단조롭고 분주한 일상으로 마음에 불만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허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있고, 화장실도 못 갈 정도가 됐습니다. 결국은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고, 119를 불러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각종 검사를 받으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살다 가나?” “이러다 그냥 죽는 건 아닌가?” 점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걷게만 해 주세요. 아니, 아이들에게 밥해 줄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아니, 일상생활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더 바라지 않습니다.”그부의 병명은 ‘급성요추부염좌’였습니다. 다행히 한 달만에 퇴원합니다. 그 때 그분은
감격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걷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숨 쉴 수 있게 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그토록 불만스러웠던 일상이 감사 제목이 된 겁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 하고 창문을 갈아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이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뒷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의 찬송음정이 엉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 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의 추수 감사주일을 맞이 했습니다. 감사주일이 어떤 분들에게는 솔직히 부담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고 사는 것도 힘든데… 골로새서 3장 15절에 보면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 5:18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아침에 우리로 하여금 감사주일을 허락하신 것은 감사주일인데 감사헌금 드리는 것 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물질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없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있다 할지라도 그래도 감사하라고 감사주일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사하는 일에 너무 인색하니까 좀 감사하며 살라고, 감사생활을 회복하라고 감사주일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힘들어서 감사할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감사할것이 너무 많습니다.
감사치않는 사람은 너무나 고독하게 살아가고 외롭게 살아갑니다. 감사치 않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벌은 외로움, 고독입니다. 찢어버리십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식도 붙지 않습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대접을 받으려면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무조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고맙다.아가..
그런데 불평하고 원망하면 친구도 떠나가고, 자식도 떠나가고, 다 떠나갑니다. 나중에는 외로워서 하나님도 그를 떠납니다.
감사치 못하는 자는 주위가 막혀있습니다. 어둠의 권세에 눌려서, 마귀에게 눌려서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어리섞게 판단하고 어리섞은 길을 계속 갑니다. 얼마나 불행한 길을 가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영적으로 자랍니까? 감사가 없는 사람이 믿음이 자라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초신자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날로 날로 하루가 다르게 그 믿음이 쑥쑥 자라는 걸 보았습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날마다 믿음이 자라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감사치않는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감사치 않는 자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에게는 주신 것도 거두어 가십니다. 그래서 불행한 인생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닦쳐와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편 살아만 있어도 감사. 자식도.....
“이쁘게 생겨가지고 왜 그래?” 딴 소리를 못하는 겁니다. “이렇게 멋있는 놈이 왜 그래?” 그러면 애가 싹 달라집니다.
감사치 않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아버립니다. 원망과 불평할 때 하늘문을 철커덕 닫아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