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에도 ‘松商의 혼불’ 태운다
“ 탁자·장식장·책상·소파 모두 30∼40년씩 된 것들이다. 컴퓨터도 없는 이 방의 최첨단 물건은 키폰 전화기. 30년 된 소파는 손자에게까지 물려줄 거란다.”
기자가 지금까지 직접 인터뷰해봤던, 80대의 고령이면서도 아직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상장사 CEO는 3명뿐인데 엄춘보 한일철강 회장(1919년생),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1922년생), 그리고 전재준 삼정펄프 회장(1923년생)이 바로 그들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북한 출신이다. 엄 회장은 평북 용천, 박 회장은 함남 함주, 전 회장은 개성이 고향.
때마침 전 회장을 인터뷰한 날은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소식이 발표된 날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고향 땅을 한번도 밟아보지 못했다는 전 회장은 “매우 반갑고 잘된 일”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개성공단을 비롯해 북한에 투자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대답은 “전혀 없다”였다.
“무리하게 새로 일을 벌일 수는 없지. 물 흐르듯이 순리적이어야지, 억지로 역류해서 뭐가 되겠어? 역류해서는 100분의 1도 성공하기 어렵지. 절대 역류하지 말라는 게 내 개인적인 철학이며, 평소에도 이를 강조한다네”
대북투자 의향이 없다는 대답은 조금 실망스럽지만, 그 이유 속에는 절대 무리수를 두지 않고 경영의 내실을 중시하는 개성상인들의 철학이 녹아 있다.
최근 동양제철화학 이회림 명예회장의 별세로 전 회장은 함태호 오뚜기 회장, 윤장섭 성보실업 회장 등과 더불어 ‘최후의 개성상인’이 됐다.
사실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삼정펄프 서울사무소 사무실에 들어설 때부터 다른 기업과는 뭔가 남달랐다.
낡고 허름한 건물 내 침침한 사무실. 직원들은 요즘은 돈 주고도 구경하기 힘든 철제 책상에 앉아 있다. 의자·컴퓨터·원탁 모두 구닥다리 집기들뿐이다. 여비서도 운전기사도 따로 없는 전 회장의 집무실은 완전히 1970년대 풍경 그대로였다.
컬러TV시대 초창기에 만들어진 마치 벼룩시장 골동품 같은 ‘대우’ TV, 초대형 시계가 눈길을 끈다. 탁자·장식장·책상·소파 모두 30∼40년씩 된 것들이다. 컴퓨터도 없는 이 방의 최첨단 물건은 키폰 전화기.
“TV 좋은 것 있다고 돈 더 잘 버나? 의자가 돈 벌어주나? 이 소파는 30년도 넘은 것인데 아들은 물론 손자 때까지 물려줄 참이야.”
“아직 쓸 수 있는데 왜 바꿔? 가구 바꾸고 사무실 꾸미는 데 돈 쓰는 건 낭비야”라는, 조선일보에 실렸던 전 회장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다. 그 기사에서는 전 회장의 경영철학을 ‘짠돌이 경영’이라 표현했다.
그런데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짠돌이가 결코 아니다. 고객, 직원, 사회와 국가 전체를 위한 짠돌이 경영이다.
삼정펄프는 화장지 원지(티슈 및 두루마리 화장지의 원재료) 및 ‘리빙’이라는 브랜드의 화장지를 만드는 회사다.
그런데 리빙은 다른 회사 제품과 달리 싸구려처럼 보이고 실제 가격도 절반 이하다. ‘휴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니 결코 비싸게 만들 필요가 없으며, 사용 시 찢어지지 않고 물에 잘 녹기만 하면 된다’는 게 전 회장의 소신이다.
경영은 짠돌이, 사회환원은 큰손
전기료가 아까워 형광등도 한 개만 켜고 돈 든다고 광고도 일절 안 하는 이 자린고비 회장님이 수백억원짜리 부동산은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사회를 위해 내놓는다.
지난 2003년 삼정펄프의 전신인 구 삼덕제지 안양공장이 문을 닫자 전 회장은 그 공장부지 5000여 평을 시민들을 위한 공원을 조성한다는 조건으로 안양시에 기부했다.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782-19번지 일대 평당 500만원도 넘는 노른자위 땅이다.
안양시는 이 땅에다 ‘삼덕공원’을 조성키로 하고 지난 7월 18일 공원 조성공사 기공식을 가졌다. 삼덕공원이란 옛 삼덕제지 터임을 상징하는 이름이며 내년 11월께 준공 예정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4년에는 경기도 포천의 임야 36만 평(시가 50억 원 상당)을 성균관대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남는 재산 누구 줘도 줄 돈인데, 자식들에게 다 물려줘도 고맙다는 소리 못 듣지만 좋은 일에 기부하면 정말 감사해하잖아. 뭐든지 가질 사람이 갖고 쓸 사람이 써야 해.”
전 회장은 고향이 개성 시내다.
예로부터 개성상인들은 아이들이 소학교(초등학교)만 나오면 상점에 보내 도제수업을 쌓게 하는 일이 많았다.
전 회장도 소학교를 마치고 15세(당시는 9∼10세는 돼야 소학교에 입학, 6년 후 졸업했다) 때 문방구 및 도서출판을 하는 가게에서 점원생활을 시작, 5년여 동안 장사를 배웠다.
“처음엔 합숙하는 방 군불 때는 일부터 시작했지. 불 때는 것도 잘 해야 해. 방바닥이 너무 차가워도 너무 뜨거워도 안 돼요. 책 배달을 할 때도 인사하는 법부터 하나하나 기본부터 철저히 가르쳤어. 점점 숙달이 되면 조금씩 더 중요한 일을 배웠지.”
어린 점원들을 가르치는 것은 점원생활 5∼6년이 지난 20대 초반 ‘수사원(首社員)’들의 몫이다. 이들이 업무지시를 하고 교육도 시킨다. 수사원 위 직급은 바로 ‘주인어른’이다.
“휴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니 찢어지지 않고 물에 잘 녹기만 하면 된다는 게 전 회장의 소신이다. 그 때문일까, 삼정펄프에서 만드는‘리빙’휴지는 타사 제품의 절반이하 가격이다.”
종이 25년 한 우물, 혁신에는 과감
그러나 격동의 역사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일제 말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철도국에 들어갔고, 4년 동안 철도원 생활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에는 개성에서 종이도매상을 시작했다. 과거 출판가게 점원시절 종이에 대해 배운 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38선이 바로 인접한 개성은 너무나 시끄러웠다.
좌우대립은 고사하고 송악산전투 등 반 전쟁상태였을 정도로 남북 간에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이 잦았다. 도저히 장사를 계속할 수가 없어 모친을 모시고 서울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시작한 게 실 장사였다. 당시 개성에서는 직조기로 면포를 짜는 가내수공업이 성행했는데, 전 회장은 재료인 면사를 트럭에 싣고 가 개성에서 팔고, 직물을 사서 돌아왔다.
그러나 곧 전쟁이 터졌다. 난리 통에 장사가 잘될 리 없었다. 그래서 업종을 바꿔보고자 뭘 할까 고민하다가, 어릴 때부터 익숙한 종이장사가 떠올랐다. 그래서 1952년 종로3가에 종이도매상인 태창지업사를 차렸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만 한 우물을 파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개성상인들의 특징이다. 이후 전 회장은 25년 간 오직 종이 한 분야에만 집중한다.
1961년 고 김형목 씨(영동중·고등학교 설립자)와 동업, 부도가 난 안양 삼덕제지(백상지 생산업체)를 인수한 것도 그 일환이다. 김씨가 사장을 맡고, 종이에 대해 잘 아는 전 회장이 부사장으로 생산공장을 진두지휘했다. 그러다 김씨와 헤어지고 전 회장이 사장이 됐다.
1977년 전 회장은 평택에 있는 삼정펄프공업을 인수한다.
인쇄용지인 백상지 생산은 채산성이 떨어지는 데다, 안양공장은 너무 비좁고 확장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대안으로 정부가 적극 육성하고 있는 펄프생산으로 주력업종 변신을 꾀한 것이다. 삼정펄프(2002년 상호변경)도 기존 볏짚펄프 생산에서 화장지·판지시설로 교체했다.
즉 전 회장은 한 우물을 파면서도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응, 과감하게 혁신할 줄도 알았다.
부채 비율 16.95%… 유보율 1200%
현재 삼정펄프는 국내 화장지 원지 시장의 약 21%를 점유하고 있다. 매출비중은 원지와 완제품이 7대3 정도의 비율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923억원, 순이익 69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작년 10월 증권거래소에 상장됐으며, 미국지사도 있다.
개성상인 기업답게 무차입경영, 내실경영에 주력한다. 부채비율이 16.95%에 불과하고 유보율은 1200%에 달한다.
“남의 돈 안 써. 이자를 줘야 하잖아? 이자 물고도 이익을 낼 만큼 장사를 잘해야 하는데, 차라리 안 쓰는 게 속 편해. 누가 돈 받으러 오는 것은 전기세, 수도세만으로 충분해. 그 외 채권자나 이런 사람들이 돈 받으러 오는 것 난 싫어해요.”
전 회장은 “그러나 개성상인들이 확장경영, 공격경영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야.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돈벌 수 있는데 투자를 안 할 이유가 없어”라고 말한다.
실제로 삼정펄프는 2006년 중 평택공장에 100억원 가까이 설비투자, 신형 기계를 들여오고 공장자동화를 단행했다.
또한 펄프의 원료인 목재생산을 위해 베트남에 식목투자를 시작했다. 여의도 면적 정도의 땅을 임차해 나무를 심었는데, 8∼9년 후에는 목재생산이 가능하다고 한다. 1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투자인 셈이다.
전회장은 3남 1녀를 두었는데, 셋째 아들인 전성오(47) 사장에게 경영을 물려줄 예정이다. 장남은 사업을 싫어하고, 삼남이 제일 똑똑하고 잘할 것 같아 맡기기로 했다는 것.
전 사장은 대학졸업 후 삼성전자에서 13년 간 현장경험을 쌓은 뒤에야 지난2005년 7월 삼정펄프 사장이 됐다.
“우리 개성사람들은 다 그런 식이야. 사업을 하려면 남의 집 가서 현장에서 고생하며 배우고 오라는 거지. 옛날 개성상인들이 남의 가게에 들어가 어린 나이에 점원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말이야. 삼성 같은 큰 회사에서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지.”
이 말에서, 비록 개성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개성상인들은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으며, 이들이 21세기에 ‘송상(松商)의 혼불’을 계속 지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일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뭘 해?”라며 앞으로도 계속 일선에서 경영을 챙길 것을 다짐하는 전 회장은, 팔순이지만 영원한 청년 CEO, 영원한 개성상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