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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길벗이 되는 교회 (요 15:14-15)
* 2017년 표어를 '예수를 따르며 예수의 길벗이 되는 교회'로 정했다. 해가 바뀌면 의례 정하는 표어가 아니라 올 한 해 동안 우리의 삶과 신앙에 구체적인 지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표어가 지향하는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예수를 따르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보통 예수를 믿으려 하지 따르려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예수를 따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기만 하고 따르지는 않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될 수 없다. 말로만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이 바뀌지 않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고백은 진실될 수 없기 때문이다.
* 마 7:21에서 예수는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지난 해 수요기독교강좌에서 함께 공부한 한인철 교수의 <예수, 스승으로 만나다>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그의 길을 따르려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근본적으로 우리는 예수처럼 살 수 없다
2) 굳이 예수처럼 살 필요가 없다
3) 예수처럼 살려고 해서도 안 된다(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당 가는 것은 좋지만 예수 믿고 예수처럼 사는 것은 싫다)
* 마커스 보그가 쓴 <기독교의 심장> 역시 예수에 대한 과거의 이미지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기적 사건들, 동정녀 탄생과 육체적인 몸의 부활을 강조한다.
- 예수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기독교만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고 강조한다.
- 예수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었고 육체적으로 다시 살아났으며 다시 오실 것이라고 주장한다.
- 예수가 양성(신성 + 인성)적인 존재(예수가 체험한 하나님과의 일치에 근거한 기독론으로 예수가 게시한 인간의 참된 모습이 바로 인간적이며 동시에 신적인 존재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 이런 이미지들은 고대그리스의 “본체 형이상학”에 기반해 만들어진 것으로,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그 때문에 예수를 체험할 수 없고 논리적으로 따를 수 없고 따를 필요도 없고 따라서도 안되는 분으로 국한(규정)시킨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런 불균형적인 신앙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기형적인 경우가 많다.
*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면서도,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거나 알면서도 실천하려 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고 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신앙이란 자신이 믿는 것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행위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만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 독일 튀벡교회의 낡은 돌판에는 다음과 같은 시가 쓰여져 있다고 한다. “너희는 나를 주라 부르면서도 따르지 않고 /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도 우러러보지 않고 /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도 걷지 않고 / 너희는 나를 삶이라 부르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 너희는 나를 지혜라 부르면서도 사랑하지 않고 / 너희는 나를 부하다 부르면서도 구하지 않고 / 너희는 나를 어질다 부르면서도 오지 않고/ 너희는 나를 존귀하다 하면서도 섬기지 않고 / 너희는 나를 강하다 하면서도 존경하지 않고/ 너희는 나를 의롭다 부르면서도 두려워 않으니 / 그런즉 너희는 내가 너희를 꾸짖어도 나를 탓하지 말라.
* 가슴이 찔리는 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이른바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비웃음을 받는 것도 모자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바로 그런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 언행일치에 대한 유명한 예를 한 가지 소개하겠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다. 간디 앞에 무릎을 꿇은 어머니는 아들을 도와주기를 간청했다. “선생님, 제 아들을 도와주세요. 아들이 설탕을 너무 좋아해요. 건강에 나쁘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안 듣는군요. 그런데 아들이 간디 선생님을 존경해서 선생님께서 설탕을 끊으라고 하면 끊겠다는군요.”
* 간디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며 그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도와드릴 테니 보름 뒤에 아드님을 데려오십시오.” 그러자 그 어머니가 다시 사정했다. “저희는 선생님을 뵈러 아주 먼 길을 왔습니다. 그냥 돌려보내지 마세요. 제 아들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한마디만 해주세요.” 어머니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간디는 다시 한 번 소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보름 뒤에 다시 아드님을 데려 오십시오.”
* 보름 뒤, 그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다. 간디는 소년에게 말했다. “얘야, 설탕을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치니 먹지 않는 것이 좋겠구나.” 그러자 그 어머니는 고마운 뜻을 전하면서 간디에게 물었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보름 전에 제가 아들을 데리고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 왜 보름 후에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습니까?”
* 간디가 대답했다. “실은 저도 설탕을 좋아합니다. 보름 전에는 저도 설탕을 먹고 있었거든요. 아이에게 설탕을 먹지 말라고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설탕을 끊어야 했습니다.” * 위의 이야기는 간디의 삶이 얼마나 언행일치에 기초한 삶인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간디의 태도에서 본받아야 할 것은 자신이 지키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라고 함부로 권하지 않고, 자신의 습관/태도를 바꾼 후에야 비로서 권하는 철저한 자세이다.
*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내용 역시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전제된 것임을 생각하면 말과 행동의 일치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요 13:13-14에서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한다.
* 예수는 자신이 먼저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으니 제자들도 따르라고 명하지, 말로만 어떤 행동을 하라고 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살라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대표적인 인간들이 목사일 것이다. 목사가 주일마다 설교하는 대로 자신이 그렇게 살면 교회가 바뀔 것이고 나아가 세상이 바뀔 것이다.
* 지금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들 중 하나는 아마 그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목사만이 아니라 선생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TV 드라마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현명한 부모는 자식에게 책 읽어라 공부해라 잔소리하기보다 자신들이 먼저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자식들은 알아서 책 읽고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 예수는 오늘 본문의 앞에 기록된 8절에서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나의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나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는데 그 중 가장 큰 일치는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맺을 수 있는 가장 큰 열매이고 예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12절과 13절에서 예수는 “나의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라고 재차 강조한다.
* 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함석헌의 시 “그 사람 그대는 가졌는가?”가 생각난다. “만리길 나서는 길 / 처자를 내맡기며 / 맘 놓고 갈만한 사람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탔던 배 꺼지는 시간 /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 저 하나 있으니 하며 /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여러분도 다 아는 시일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그 계명, 즉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키면 비로서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한다. 아무나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길인데, 예수의 친구가 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 그러나 성서를 보면 신앙의 선조들이 하나님의 친구로 묘사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야고보서 2:23을 보면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것을아브라함의 의로움으로 여기셨다’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또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렀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또한 출애굽기 33:11은 “주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다 행하면 너희는 내 친구다. 그리고 예수는 오늘 본문에서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라고 약속한다.
*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땅에 떨어진 위신을 되찾으려면 예수가 가르치고 제시한 길을 제대로 걸어야 한다. 그것이 제자의 길이요 친구의 길이기 때문이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깊이 깨닫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존재이며, 친구는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서로를 돌보고 아끼는 존재이다.
* 2017년 한 해는 저를 비롯해 우리 하늘 씨앗들 모두가 그런 존재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그런 목표를 지향하는 말씀을 자주 전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았던 믿음의 선배들을 자주 소개하도록 노력하겠다. 한국 개신교는 1860년대에 소개되었으니 1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예수의 진정한 제자이자 길벗이라 할 만한 분들이 많다.
* 맨발의 성자라 불리는 이현필 선생을 비롯해 남강 이승훈, 도산 안창호, 다석 유영모, 바보새 함석헌, 늦봄 문익환, 그리고 대한복음교회의 창시자 시남 최태용 등이 그런 분들이다. 오늘은 말씀을 마치기 전에 이현필 선생의 삶과 신앙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도록 하겠다.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에서 태어난 이현필 선생은 호남 영성의 대부 이세종의 영성을 이어받아 한국의 수도원 운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 그는 29세부터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함께 농사를 지으며 수도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추종자가 생겼다. 산에서 부인·소년·소녀들이 움막을 짓고 조악한 먹거리로 끼니를 때우며 이 선생과 함께 수도의 삶을 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수도 공동체였다. 1948년 여수·순천 사건으로 많은 고아가 발생하자 그는 1949년부터 화순 도암에서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 1950년에는 광주에서 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동광원'이라는 고아원을 만들었다. 이 선생과 제자들이 고아원을 섬겼으나 후에 없어지고 '동광원'이라는 명칭이 남아 수도 공동체의 이름이 됐다. 동광원은 남원을 비롯해 전국 10여 곳에 자리잡았지만 이현필 선생은 늘 겸손했다. 식사를 할 때도 밥상 위에 밥을 올려놓고 먹지 않았다. 자신은 죄인이라며 방바닥에 놓고 먹었다.
* 한국전쟁 때 동광원 식구들은 100명이 넘었고 늘 식량과 땔감이 부족했다. 그의 삶은 늘 헐벗은 사람을 챙기고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아와 과부와 걸인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등 예수처럼 살고자 했던 이현필 선생을 사람들은 맨발의 성자요, 한국의 프란시스라 부른다. 그러나 한국의 제도권 교회는 오랫동안 이현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 오히려 산속에서 활동하는 ‘산중파 이단’이라 규정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금욕주의자라 비판하기도 했다. 이현필 선생이 가난한 삶을 택했던 것은 철저히 예수의 삶을 일상화한 결과였다. 예수님도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예수를 따라 살려고 애썼다. 그리고 결핵환자를 돌보다 자신도 결핵에 결려 1964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예수를 따르고 예수의 길벗이 되는 교회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신앙의 모범은 그런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제 새해를 맞아 우리 모두의 삶이 지난 해보다 더욱 성숙해지고 더욱 예수의 길에 다가가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면서 더 지혜로워지고 겸손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미련해지고 오만해지는 사람도 있다.
* 신앙적으로 말하면 예수의 길에 가까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멀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전자에 해당되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개척 당시에는 순순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면서 순수함으로 잃고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하늘씨앗교회는 처음의 열정을 잃지 않으면서 성숙해지고 발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지난 한 해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 맞는 해에 할 일을 계획하는 일일 것이다. 국가적으로 2017년의 가장 크고 중요한 과제는 박근혜 탄핵 절차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정권을 구성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해 촛불을 밝히며 탄핵 정국을 이끌었던 촛불 혁명이 정말 민주적인 정권의 수립을 통해 우리 민족 역사상 최초로 완성된 혁명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 교회 차원에서는 창립 12주년을 맞아 하늘씨앗교회가 대한복음교회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예배는 물론 교육, 봉사, 교제, 선교 등 교회의 본질적 소명을 온전하게 수행함으로써 진정한 대안교회가 될 준비를 해나가는 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모든 하늘씨앗들이 교회의 한 지체로서 각자가 맡은 소명을 성실히 수행하길 바란다.
* 2016년을 열심히 사셨던 우리 하늘씨앗들이 2017년에도 더욱 보람 있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시기 바란다. 겸허한 마음으로 이 무한한 우주의 한 모퉁이에서 2016년이라는 시간의 단위를 보내고,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밝아온 2017년의 새 아침을 힘차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럼으로써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첫댓글 가슴에 와 닿는 설교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며 살고자 하나,참으로 어렵습니다.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원수까지도 용서하라는 말씀은 아직 행하기가 어렵네요. 더 많이 비워야 하겠죠.
경재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미생에서 완생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고 그 과정을 함께 하는 도반(길동무)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