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숲에서 생명을 느낍니다/ 신원섭 (충북숲해설가 협회 대표)
이제 바야흐로 봄의 시작입니다.
봄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보다도 ‘생명’과 ‘희망’일 것입니다. 봄의 숲에서는 이 생명과 희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잎새의 반짝이는 몸짓도 떠나보내고, 온갖 풀벌레들의 재잘거림도 비워버리고, 떠나간 모든 것을 위해 외곬으로만 우러러 기도하던’ 그 숲의 나무들이 새로운 삶을 살기위해 기지개를 켭니다.
봄의 숲은 이런 생명과 희망의 기운을 오감으로 느끼고 체험하게 합니다.
봄의 나무와 숲은 생명의 역동을, 그리고 생명의 신비함을 눈으로 직접 보게 해 줍니다. 봄의 나무와 숲을 보면 그 색이 오전과 오후가 다르고, 또 오늘과 내일이 다릅니다. 살아있음의 변화를 시간의 단위로 느낄 수 있지요. 굳이 숲을 찾아 확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출근길에 보았던 담장의 개나리가 오후 퇴근길이면 더 짙노랗게 변해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겨울의 숲은 단순함과 적나라함을 보여주지만 봄의 숲은 다양함을 보여줍니다.
봄의 숲에 가보면 각기 다른 나무들의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성질이 급한 녀석은 벌써 잎을 돋우고 한창 생명력을 뽐내고 있는데 게으른 녀석은 아직도 겨울잠에 빠져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일찍부터 뽐내고 싶어 안달하는 녀석은 벌써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합니다. 어쨌든 이제 겨울동안 움츠리고 쉬었던 생명활동을 시작하려고 나무들은 기지개를 켭니다.
가을 가고 결박 풀어져 봄이 오다.
나무, 나무에 바람은 연한 피리 불다.
실강지에 날 감고 밤 감아
꽃밭에 매어 한바람, 한바람씩 당기다
황석우 시인의 봄이란 시입니다.
참으로 시인의 눈은 예리하기만 합니다. 계절의 흐름을 머금은 나무의 표정을 어쩌면 그리 잘 표현했는지요. 봄의 숲에서 이 시를 음미하면 생명의 신비와 환희를 더욱 잘 느낄 수 있습니다.
봄 숲은 우리의 무뎌진 감각을 새롭게 합니다.
이제 막 피어난 잎새, 터질듯 한 꽃 봉우리... 이것들은 마치 부드러운 아기의 피부 같은 순결한 감각을 느끼게 합니다. 봄에 나온 새순과 잎새의 초록은 여름의 초록에 비해 해맑고 부드러운 초록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것들을 보고 느끼면 나의 피부, 눈, 코에서 마치 각질이 벗겨지면서 새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 같습니다.
감각의 회복은 순수한 인간으로의 회복입니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숲에서 살면서 예민한 감각에 의존하며 생활하였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바람소리를 듣고 폭풍우를 대비하였고, 멀리 들리는 짐승의 울음 소리로 안전을 지켰습니다. 바람 한줄기의 변화도 감지할 수 있었던 우리의 원래 감각을 현대의 우리는 모두 잃었습니다. 수많은 인공의 소리와 소음, 오염된 환경으로 인해 우리가 간직했던 감각의 능력은 상실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 시달립니다. 곧 감각을 회복하는 일은 건강하게 사는 길이며 원래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봄의 숲이 바로 그 감각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줍니다.
숲에서 나오는 감각의 원천은 인간의 감각과 코드가 맞습니다. 그래서 역겹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고, 자연스럽고 포근한 느낌을 줍니다. 또 시각적으로 본다면 숲이 만들어준 자연미는 인공의 어느 것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생활에 숲의 녹색을 많이 응용하지만 숲이 가진 녹색과는 질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봄 숲에서 우리의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시각적인 아름다움입니다.
봄 숲은 마치 파스텔화를 감상하는 것 같이 착각할 정도로 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뚜렷하게 나타낼 수 도 없는 색깔로 그 아름다움을 표현합니다.
봄 숲은 나무와 풀만 분주한 곳이 아닙니다.
봄 숲에서는 온갖 산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짝을 구하기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새들의 합창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집니다. 넓은 들에서 사는 들새들과 달리 산새들은 자기의 멋진 모습을 소리로 보여주어 암컷의 환심을 사야하기 때문이지요. 이 새들의 합창은 봄 숲에 더욱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이 산새들의 합창은 그동안 소음으로 마비된 우리의 귀를 다시 되살립니다. 어떤 작곡가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빠지다보면 세상의 근심은 어느덧 멀리 가버립니다.
봄 숲이 내뿜는 풋풋한 냄새는 마치 어린아이에게서나 맡을 수 있는 원초적이고 순수한 자극입니다.
아무리 비싼 고급 화장품이나 향수도 이 냄새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나무들이 새 순과 새 잎을 내면서 같이 나오는 냄새, 봄의 땅에서 품어나는 흙 내음, 숲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작은 풀들이 내는 냄새, 이 모든 것들이 어울려 만든 숲의 냄새는 은은하면서도 우리의 뇌를 자극하고 신경을 각성시킵니다. 봄 숲에서는 이러한 자극 때문에 지치거나 지루해지지 않습니다.
봄의 숲은 우리를 호기심과 환희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막 터진 꽃 봉우리, 줄기 끝을 막 비집고 나온 어린아이의 부드러운 손 같은 여린 나뭇잎, 물기를 머물고 막 생명의 색깔로 변하기 시작한 어린 줄기들... 이 모두가 우리의 눈길을 붙잡습니다. 생명의 신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신비에 빠져들면 자연과 그것을 창조한 절대자의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되고 자연을 경외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납니다. 이런 신비의 체험이야말로 정말 피부로 생생히 느끼는 환경교육입니다. 이 신비를 체험한 순간 우리는 오만을 벗게 되고 위대한 자연 앞에 겸손해 집니다.
이제 한동안 활동을 멈추었던 뿌리도 열심히 땅에서 물과 양분을 흡수해 나무의 머리끝까지 생명의 활동을 위해 올려 보내기 시작합니다. 나무 줄기에 가만히 손을 대보면 그 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귀를 대고 들어보면 뿌리로부터 올라온 물이 줄기를 통해 나무 끝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이제 이 나무들은 잎의 엽록소가 탈색하여 단풍으로 바뀔 때가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활동인 광합성을 하겠지요. 이 지구의 생존과 또 자신들의 등치를 늘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봄의 숲은 우리에게 기쁨과 탄성을 주는 동시에 경외와 겸손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봄 숲에서 우리는 생명의 존귀와 삶에 대한 희망을 배울 수 있습니다. 봄 숲에 가면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삶이, 힘들다고 느꼈던 삶이, 소중하고 희망의 삶으로 바뀜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충북숲해설가협회에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