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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
An Interview with Byung-Ho Chung
다음은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한양대 정병호 교수를 미국인류학회(AAA) 사무총장 에드 리보우(Ed Liebow)교수가 인터뷰한 내용이다. The Asia-Pacific Journal은 정상회담 이후 에필로그와 사진 등을 추가 편집하여 소개하였다.
리보우: 최근에 정교수님의 책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 (한국어 번역, 『극장국가 북한: 카리스마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권헌익·정병호 공저, 2012, 창비)를 읽었습니다. 북한의 카리스마 정치가 극장국가적 연출(theatrics)을 통해 지속된다는 주장에 매우 흥미를 느꼈습니다. 예상하시겠지만, 이번 주 김정은과 트럼프의 정상회담이 다가오면서 미국 미디어는 이 만남이 마치 한쪽이 ‘승자’, 다른 한쪽이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스포츠 경기인 것처럼 보는 단순한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 권력의 삼대에 걸친 세습을 뒷받침해 온 강력한 현대적 ‘극장국가’와 극적 연출에 대한 교수님의 강조는 김정은의 리더십을 관찰하는데 (새로운) 지적 사고를 촉발하는 렌즈입니다. 일반적으로 극장에 대한 비유는 시간적 압축, 과장된 몸짓, 눈에 띄는 성격유형, 각본, 상징적 소품 등을 포함할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북한을 현대의 ‘극장국가’로 보시는지요?
정병호: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정치권력은 “권력의 과시(display of power)”와 “과시, 중시, 드라마의 규제력(the ordering force of display, regard, and drama)”과 관련된 문제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카리스마 권력은 극장적 연출을 통해 공산권 최초로 세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카리스마 권력을 세번째로 물려받은 김정은은 34세(집권당시 27세)의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인민복, 헤어스타일, 걸음걸이, 표정과 말투로 할아버지 김일성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혁명 서사극의 주인공처럼 등장하여 지금도 당대의 사회드라마의 주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외모만이 아니라 선대 카리스마 리더들의 정치적 상징과 통치술을 계승하고 시대 상황에 맞추어 변형하며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은 10만명 이상의 학생, 시민, 군인들이 고도로 훈련된 국민-배우로 출연하는 아리랑축전과 같은 대규모 스펙터클을 연출했습니다. 이 스펙터클은 북한 주민에게는 도덕적․정치적 슬로건을, 국제사회에는 핵심적 외교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아들 김정은은 각종 예술 공연과 ‘현지지도’와 같은 권력 연출방식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그 내용과 양식은 팝음악과 아이돌 공연을 혼합하고, 스키장과 놀이공원, 서양음식점과 고층건물, 네온사인 설치를 이끌며 도시의 경관을 바꾸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보다 할아버지 김일성의 외모와 스타일을 재현한 것은 대단히 상징적입니다. 사회주의권 붕괴시기에 대규모 기근을 겪으면서도 선군정치로 체제수호를 택한 김정일의 후계자가 한국전쟁 후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영국 경제학자 로빈슨(Joan Robinson)이 ‘조선의 기적(Korean Miracle)’을 이끈 메시아라고까지 칭찬했던 김일성을 닮고자 한 것입니다. 핵무기보다는 경제를 부흥시킨 그런 카리스마 지도자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특히 미국이)가 그의 변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서 그도 자신의 역할을 재구성할 것입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국제사회는 날씬해진 몸매에 양복을 입고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김정은을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정은의 물놀이장 현지지도, 능라인민유원지, 평양
놀이공원 야간개장, 개선청년공원, 평양
룡성 피자 레스토랑, 평양
리보우: 극장국가 북한에서 핵무기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정병호: 총은 북한 권력 정통성의 상징입니다. 극장국가 북한의 건국설화에 따르면, 지도자 김일성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두 자루의 권총이 항일 빨치산의 수천자루 총이 되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민족을 해방시켰고, 조선인민군의 수만자루의 총이 되어 미제국주의로부터 북한을 지켰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미사일과 핵으로 국제사회주의의 위기상황에서 북한체제를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물려받은 김정은은 핵폭탄을 수소폭탄까지, 미사일을 ICBM까지 발전시켜서 세계를 경악시켰지만 북한 주민들은 열광했습니다. 스스로 구축한 무력의 위세로 미국과 온 세계가 북한을 주목하고 상대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북미회담은 항복의 징표가 아니라 군사적 자위력을 토대로 한 성공의 결실입니다. 기술적으로 그런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들은 지구상에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특별한 것은 실제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나라 북한이 첨단 무기를 만들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국제적 봉쇄와 압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모든 자원과 인재를(다른 분야에 뺏기지 않고) 핵과 미사일 프로젝트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한국사 전문가 커밍스(Bruce Cumings)교수는 북한의 핵폭탄을 그 나라를 악의 축으로 고립시킨 미국 대통령 ‘부시의 폭탄(Bush's Bomb)’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총, 군, 미사일, 핵은 국가권력의 정체성이자 체제 생존의 열쇠입니다. 과연 스스로 버릴 수 있을까요? 버리고도 생존할 수 있을까요? 드라마는 상식을 넘어설 때 충격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미사일 발사 시위
리보우: 이러한 극장적 상황에서 북한 국민들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정병호: 무대 위 주연배우들은 화려한 조명을 받습니다. 정치과정이 외부세계에 잘 드러나지 않는 북한의 경우, 특히 지도자 개인이나 몇몇 엘리트들의 의지로 온 사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극장국가 북한의 2천5백만 국민 대부분은 이 드라마에 제작, 연출, 작가, 배우, 엑스트라, 스태프, 그리고 관객 등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드라마 내용의 구성과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1990년대의 북한 대기근 이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장마당이 일상화 되었습니다. 또한 탈북민과 밀거래와 해외파견 노동자 등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 물자, 사람 때문에 더 이상 폐쇄적인 사회주의 양식의 예술정치만으로는 사회적 동의를 얻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국가권력이 통제하는 유흥 소비시설과 대중공연 등 여러 분야에서 자본주의적 문화양식을 혼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권력 자체의 생존을 위해서도 개방을 늦추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권력 엘리트 집단으로서는 그러한 변화가 기존의 위계질서를 유지하면서 질서 있게 진행되기만을 바랄 것입니다.
리보우: 그러면 세계무대의 국민국가 행위자들, 즉, 남한, 일본,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정병호: 현재 남북한과 관련 4대 강국의 국가 지도자들은 모두 강력한 카리스마 리더들로 그들 나름의 문화적 스타일로 극장적인 권력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국 대통령 문재인의 역할이 특별히 두드러집니다. 그의 카리스마는 바로 살아있는 권력을 끌어 내린 수백만 촛불시위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라는 점입니다. 전임 대통령 박근혜는 권위주의적 지도자 박정희의 딸로 북한의 세습 권력인 김정은과 짝을 이루며 적대적 공존체제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그 한 축을 무너뜨린 촛불시위는 그 자체가 국민주권의 힘을 상징적으로 연출한 ‘사회적 드라마(social drama)’이었습니다. 국가권력의 극장적 연출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있는 문재인은 동계올림픽과 예술문화교류를 통해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실현시켰습니다. 이렇게 북한과 미국의 대조적인 카리스마 권력을 글로벌 정치무대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자리에 올리는 ‘기획자이자 중재자(designer and mediator)’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리보우: 마지막으로, 도날드 트럼프라는 인물의 특성은 이런 극장적 제작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정병호: 트럼프는 권력의 극장적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TV 리얼리티 쇼 스타일의 연기, 과시적 말법, 예측 불가능한 즉흥성으로 존재를 과시하고, 주목하게 하고, 극적인 메시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주연배우로서 그는 ‘미국식 영웅(american-style hero)’의 전형적 특징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기성 정치가들과 다르게 쉽고, 단순한 논리로 설명을 하고, 감정 표현도 직선적입니다. 익살, 너스레, 노골적 자기자랑 등 권력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도 뻔하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그래서 기존의 관행과 현상유지와는 다른 가능성을 열 수도 있는 존재로 자신의 역할을 부각시킵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비밀주의적 카리스마 권력과 대비되는 개방적 성격이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유사한 예측 불가능성으로 긴장감을 높이고 끊임없이 주목하게 합니다. 그 두 주연배우들은 어떤 내용의 드라마를 연기할까요? 트럼프는 닉슨대통령이 ‘세계를 바꾼 일주일’이라고 한 1972년 북경방문과 같은 역사적 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 둘의 욕망과 필요가 평화를 향하는 길을 선택하기 바랄 뿐입니다.
리보우: 이 드라마가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류학자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정병호: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일본 천황제과 같은 상징권력은 한 국가가 극적으로 방향전환을 할 때 효율적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금이 바로 극장국가 북한에 극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입니다. 일본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종전 당시의 일본 천황처럼 제작자 겸 주연배우 자신이 하던 연극을 멈추고 연출과 대본을 바꾸게 하는 방법도 있고, 메이지유신처럼 새로운 연출가들이 전통적인 중심상징을 이용하면서 실제로는 급격한 개혁을 추진하는 혁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고도로 훈련받은 극장국가의 배우와 스태프, 관객들은 그 어느 경우에나 똑 같은 열정으로 새로운 방향의 새 연극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극장국가 북한도 희생을 최소화하며 새로운 판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인류학회(American Anthropological Association)
2018년 6월 12일
https://blog.americananthro.org/2018/06/12/north-korea-beyond-charismatic-politics-an-interview-with-byung-ho-chung/
정상회담 이후 북한 언론은 예전과 달리 신속하게 북미회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북한 지도자의 활동에 대해서 철저한 비밀주의 원칙을 지켜왔던 북한으로서는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특히 지도자와 외부세계와의 접촉내용은 지도자의 절대적 권위와 위상을 지키기 위해 극도로 신중하게 편집해서 사후에 보도했던 관행과 달리,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공식 회담 장면만이 아니라 일상적 상호작용 모습까지 보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수십년간 그 나라를 위협하고 고립시킨 적국의 수장으로 악마화했던 그 상대와 만나서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을 거의 그대로 전 국민에게 알린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보도 자체가 바로 북한 체제의 변화 의지와 방향을 국내외에 알리는 일입니다. 특히, 북한 주민과 엘리트들에게 이번 변화는 진짜 역사적이고 전면적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합니다. 신비주의로 감싸왔던 지도자의 실제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일은 그 체제로서는 위험부담이 큰일입니다. 그만큼 지도자 스스로도 되돌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이 길에 매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극장국가 북한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은 그러한 공식적인 입장 변화에 민감합니다. 그에 따라 전면적으로 태도를 바꿉니다. 나는 2000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과 후에 달라진 북한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전에 의심과 경계의 태도로 멀리 하던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 입장이 달라지자 마치 대본이 달라진 것 같이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앞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은 이전과 달리 활짝 웃으며 친근하게 대하는 많은 시민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권력의 극적 연출에 대한 트럼프와 김정은의 이해가 회담과 합의 자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극적 연출은 분위기, 감정, 동의를 만들어 냅니다. 역사적으로 오랜 문화적 편견과 고정관념의 대상이 되었던 상대와의 관계를 시작하는데 우선 필요한 일입니다. 이미지로 상상하던 악마가 자신과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을 실제로 느끼고 공감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서 널리 공감하게 하는 것이 권력의 극적 연출력입니다.
싱가포르 북미회담의 합의문에서는 “상호 신뢰 구축(mutual confidence building)”을 언급하면서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서로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계약 문구를 중시하는 미국의 변호사 출신 정치가들은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미국사회의 ‘계약문화’와 달리 지구상의 많은 사회에서는 문자로 된 계약서보다 서로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가 실질적으로 중요한 구속력이 있습니다. 즉, 선물, 호의, 친근한 태도, 사회관계, 체면 등으로 쌓아 올린 ‘신뢰'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국제적 사업가인 트럼프는 다문화적 협상의 특성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중요한 대의가 있습니다.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 회담을 마치 승자와 패자가 있는 스포츠 경기나 두 국가 간의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는 점입니다. 남과 북의 모든 한국 사람들은 오래 기다려온 평화를 절실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수백만명의 생명을 전쟁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자 한다”고 한 말은 울림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세차례 참여했던 북한문제 전문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합의문의 어떤 문구보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이 말이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라고 했습니다. 역사는 가끔 예상치 못했던 사람을 택해서 세상을 바꾸는 영웅 역할을 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그런 역사적 역할을 맡아서 이 세계에 평화를 가지고 오는 ‘사회적 드라마(social drama)'를 만들어 나가기 바라고 있습니다.
The Asia-Pacific Journal
July 1, 2018 (Volume 16, Issue 13, Number 1)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 Byung-Ho 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