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년시절의 터전은 거의 광주 동구의 계림동 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도중에 삼사년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타지에서 살긴 했지만 늘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그 곳을 추억하자면 두 장소가 떠오른다.
한 곳은 우리 집 이웃에 있던 집인데 특출 나게 돌담 벽으로 장식된 멋스런 이층양옥집이었다. 우리 집을 비롯하여 동네 대부분의 집의 형태는 기와를 얹는 그저 그런 한옥스타일이었는데 그 집은 부러움을 자극하고 동경심을 자아낼 만큼 돋보였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나무들과 꽃들이 무성한 정원을 품은 대저택이었다. 어린 눈에도 그 집을 구경하고픈 마음이 일렁일 정도로 돋보였고 상상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집의 별명은 ‘독(돌)집’으로 불리었다. 한편으로는 나병환자가 산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집의 사람들을 본 적도 없었고 그 외의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무심했던 어린 내 귀에까지 당도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먼 훗날 그 집의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으로부터 우연히 들은 것은 10여 년 전쯤이었다. 자녀들 중의 한 분이 아버지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지금도 나의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 거주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러나 아름다운 집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시켜준 그 기억만큼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추억이 어리는 또 한 곳은 경양방죽이다. 유년기의 기억이어서 몇 년도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1960년대 초중반이지 않을까 싶다. 유치원을 다닐 수 있는 연령대였지만 그때는 유치원이 일반화된 교육기관이 아니어서 많은 시간을 경양방죽주변에서 놀았던 것 같다. 우리 집 뒷골목을 지나면 바로 그곳이었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갔을지 모르겠다. 호수 끝 후미진 쪽에는 너 댓살 아이들 키만큼이나 지름이 큰 배수관 건축자재들이 높이 쌓여있었다. 낮에는 동네의 친구들과 주로 배수관위로 달리기와 숨바꼭질 등 정신없이 놀기도 하였고 어쩌다 느지막한 오후에는 우리 집에서 하숙한 대학생 삼촌이 바람 쐬러 가면 따라가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학교에 근무하던 중 5·16 쿠데타로 인하여 반강제적으로 입대를 하시는 바람에 할머니와 엄마는 궁여지책으로 하숙을 시작하셨다. 이따금 빛바랜 채 남아있는 희미해진 흑백사진을 볼 때 두 여인들의 고생스러웠을 씁쓸함과 동시에 어린 망아지처럼 철없이 뛰고 놀았을 즐거움이 교차되기도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시내의 중학교 과학교사이면서 사진반을 지도하신 덕에 어린 나는 모델역할을 많이 했었나보다. 오남매 중에 사진이 많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서 그런 짐작을 해본다. 신혼시절 남편이 추억이 어린 낡은 앨범들을 들추다 하필이면 경양방죽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꺼내서 자신의 지갑에 넣었다. 그 사진 속 나의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다녔는지 양갈래로 땋은 머리는 산만하기 그지없었고 할머니가 지어주신 모시배의 옷매무새는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단추도 떨어져있고 한쪽 다리의 고무줄은 끊어져 있는데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고많은 사진 중에 그 민망한 모습의 한 컷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니겠다고 하여 실랑이가 오갔던 해프닝도 생각이 난다. 그 지갑속의 사진은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져버려 다행이라 여긴 적도 있었는데 글을 쓰고 있노라니 다시 그립기도 하다.
추억이 어린 그 호수는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단어는 무용지물이지만 경양방죽이 지금도 있다면 광주의 사랑받는 으뜸 관광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규모나 역사적인 면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은 아름다운 스토리가 팥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 호수를 매워 광주시청이 대신 세워졌고 시청은 다시 상무지구로 옮겨져서 지금은 홈플러스 매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역사의식이 깨어있는 행정가라면 깊은 고민 없이 얼마 되지도 않아 옮겨버릴 수 있었을까 하는 유감스러움이 밀려온다.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어느새 아름다운 무늬가 마음판에 새겨져 있고 그리움으로 드리워져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지금도 부모님 댁을 다니면서 조금은 돌아가지만 일부러 그 매장에서 쇼핑을 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