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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길 제 4구간
해안길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것 같은데 벌써 부산이 지척이다.
매주 140km씩 强行(강행)을 하다보니 몸은 많이 지쳤지만 마음은 늘 한결같다.
이번 구간은 日出(일출)의 명소인 호미곶에서 일출 시간을 맞추다 보니 자정무렵에 출발하게 되고
경북지부의 마녀수기님과 같이 전구간 함께 걷기로 한다.
늦은 저녁시간 구미에서 오신 수기님과 대구 동부 정류장에서 만나 포항으로 가는 차편에 몸을 부탁하고
통로를 가운데로 두고 따로 따로 자리 배정을 받는다.
그렇게 포항에 도착해서 길고긴 해안길 진행하기전 포항여고앞 학도의용군 6,25전쟁 참전비에 들러 잠시 묵념하기로 한다.
포항 터미널 앞 편의점에서 우유하나 빵하나 사서 해안길에서 떨어져있는 포항여고 앞까지 택시로 이동후
학도의용군 참전비에서 묵념하고 수기님은 참전내용 읽어 보시는중
11시간동안 사투
50년 8월 11일 이날 포항 여중에서의 전투로 북한군 60여 명이 사망했고 학도병 47명이 꽃다운 젊은 목숨을 잃었다.
포항에서 낙동강까지 2시간 거리. 학도병이 11시간 동안 북한군의 남침을 지연시킨 포항전투는 낙동강 사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어진 국군과 연합군의 반격에 크게 기여했다.
*1950년 8월 11일 경북 포항지구 포항여자 중학교 전투에 참전한 학도병 71명중 48명 전사, 13명 부상
*한국전쟁 당시 학도 의용대로 편성된 16-18세의 학도병들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서 3주간 군사 훈련으로
소총과 담요 군복을 지급받고 군번도 없이 전방에 배치
*1950년 6월27일 한강 방어전투를 시작으로 약 25만명 참전 그중 약 5만명이 직접전투에 참전, 7천명 전사
그동안 정부는 학도병들을 국가 유공자에 포함 시키지 않았다.
*18세 미안 소년병 징집을 금지하는 국제법을 의식해서였다.
정부는 2002년 소년병이라는 이름으로 참전 유공자를 인정
오래전에 찾았을때 담아둔 학도 의용군 전적비 내용
학도 의용군 참전비에서 다시 택시로 지난번 3구간 날머리 형산강 하구에 도착해
내일까지 이어갈 울산 방어진까지 발걸음으로 이어간다.
형산강 하구에서 본 포스코
진행 :포항 형산강 하구-경주-울산 방어진 140km
형산강따라 잠시 올라가며 구형산대교를 건너야 한다.
이곳 형산강 옆 포항시 해도 그린공원에 6,25전쟁 낙동강 전선의 워커라인 표지석이 자리하는곳이며
연제근 상사와 12특공대 전적비가 있어 가본다.
워커라인
워커라인이란?
월튼 해리스 워커(Walton H. Walker: 1889~1950) 대장
워커 장군은 초대 미8군 사령관으로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남진하는 북한군을 낙동강 방어라인
마산-왜관-영덕 (워커라인)을 구축하여 막아낸 인물이다.
"I will stay here to protect korea until my drath"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한국을 끝까지 지키겠다.)
낙동강 전선에서... (월튼 해리스 워커장군)
낙동강 전투 최후의 방어선 표지석을 잠시 들러보며
형산강 전투는 6,25전쟁 당시 8월 11일 부터 44일간 전투에서 국군 2천 301명이 전사한 격전지이며
9월 17일 형산강 도하작전의 3사단 22연대 1대대 연제근 이등상사와 12특공대 분대원이
야간을 틈타 형산강을 건너 적진의 기관총 진지을 파괴하는 도중에 12명 모두 전사했으며
이전투로 포항을 탈환하고 압록강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한다.
각기관단체에서 이날을 기념하고자 9월 23일 하얀 국화꽃을 헌화 하셨고
워커라인 이곳에서 영천을 지나 팔공산 넘어 왜관을 거처 낙동강길따라 경남 마산 진동리까지 340km을 이어가는길
그길에서 많은걸 느끼고 배웠는데...
읽어 보시고
해도 그린공원을 나와 구 형산대교를 건너 포스코 정문으로 진행한다.
수기님 "나도 이곳에 일하러 갈래"하시는듯
해안선길 그동안 전반전 40km는 뛰고 중,후반부는 거의 걷다가 뛰다가 했지만
오늘은 처음부터 걷기로 하니 마음이 편하다.
아스팔트길에 호미반도 둘레길이란 글자가 보여 이길로 가면
호미곶에 도착하겠지 하고 그길따라
일월동
유서 깊은 삼국유사의 마을이란다.
해와 달을 맞이하는 마을
이땅에서 가장 먼저 해 를 맞이하는 일월동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설화의 발상지로 신라시대부터 유래되는 유서깊은 마을이다.
일제 감정기때 민족시인이셨던 이육사(李陸史)가 마을앞 언덕위 포도원에서 조국광복을 염원하는 민족시 "청포도"를
쓴 곳으로 알려져있다.
야간이지만 거대한 석상 선바우 바위 군락지대를 지나
해안길 파도치는곳 자갈길도 이어진다.
무섭도록 고요한 길에 파도소리만 있을뿐
적막한길은 이어지고
오다보니 포스코의 화려한 불빛이 점점 멀어진다.
호미반도 둘레길
동해면 흥환리 포구
오다보니 산으로 가는길을 잊어먹고 구룡소 바위절벽구간을 오르고 내리고
결국은 막다른곳에 와서 "여가 아닌갑다" 다시 돌아간다.
구룡소
동해안 남한구간 770km중 영일만에서 경치가 매우좋은곳이라 한곳인데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가 승천한곳이라 한다.
구룡소는 높이 40-50m정도 둘레 100m의 움푹파인 기암절벽이다.
나혼자 왔으면 돌아가기 싫어 끝까지 지나같을것 같다.
그와중에서 게란 녀석들을 잡아보려는 수기님
날이 밝을 무렵 호미곶면 대동배리 마을을 지나게 되고
해안길
밤새 이런 자갈길을 걸었더니 벌써 물집이 생겼고
수기님은 아직 멀쩡하시단다.
큰바위 아래 사람의 형상을 닮은 바위를 지나고
산이 지부장님이 호미곶에 도착하셨다고
호미곶에서 일출은 물건너 갔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호미곶을 지척에 두고 독수리 바위를 지난다.
독수리 바위에서 수기님
호미곶면 구만리 항구에서
수기님이 혼자말로 "복어다"
옆에있던 어부분께서 수기님이 혼자말로 복어란걸 들으셨는지 복어라며 웃는다.
"아주머님 이게 무슨고기죠 하니"
삼식이란다.
삼식이 ...생긴게 어째 배는 볼록하고 상상초월 이상으로 못생겼다.
마중오신 산이 지부장님
일출은 별로지만 수기님의 웃는 모습이 동해의 일출 많큼이나 환하다.
연오랑과 세오녀 조형물
꼭두새벽에 마중오신 보라님
맛있는걸 준비해 오셨서 같이 모여서
보라님은 정맥 7차팀 총무며 성격좋고
멋지고 재미있으신분
내일 새벽에 다시 합류 하시기로 하고 집으로 귀가 합니다.
조신하게 앉아서 드시는 수기님과 산이지부장님.
호미곶에서 대충 씻고
인증 한장 담고 지루할것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해안길에 만난 사람들
그동안 푸른 동해에서 길고긴 시간을 왼쪽 바다만 쳐다 보느라 목이 돌아갈판이었지만
오늘은 수기님,산이지부장님을 오른편에 두고 이야기 하니 가자미 눈돌아가듯 목이 돌아갈 일은 없을듯
오누이같은 두분
아침부터 바람없는 바다만 보며
벌써부터 덥다.
멀리 호미곶
울진이나 삼척의 쭉 뻗는 미인의 다리같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은 아니지만
비,바람 모진 풍파에 맞서며 자란 절송(絶松) 그래서 더욱 멋스런 나무다
살다보면 그게 어떤 형태로는 살거나 자라며,
아무리 힘들어도 굽어지느냐 꺽이느냐
그렇지 않으면 뽑히느냐 죽느냐
죽음은 끝을 의미할뿐 절송(絶松)을 보며 참 대단하구나 하는걸 느낀다.
절송들 사이로 해국(海菊) 보호란 글이 보여 찾아본다.
금줄 넘어 해국(海菊) 한장 담고
해국 사진한장 찍고오니 두분은 저멀리 가버리고
자전거 타신 한분이 앞을 보란듯 지나간다
수기님 반바지로 갈으셨으니 우리는 이제 죽었다.
자전거 타신분이 우리하고 잠시 걸으며
그동안 자전거로 4대강 완주(804km),동해안 해안선 진행하신것 이야기를 하신다.
잠시 듣고 있다가 수기님과 산이지부장님은 그소리가 듣기 싫으신듯 먼저 가버리고
발바닥 물집때문에 약간 절뚝 거리며 진행하니 세명중 가장 상태 안좋아 보였는지
해안선 몇구간 진행하며 오늘 어디까지 진행 하느냐 물으신다.
"우리나라 19대 강 3,700km 걸어서 다했고 동해안선은 5구간으로 나누어 다음주에 끝난다 하니
더이상 할말이 없으셨는지 오른손 엄지척 들고는 대단하시다며 정중하게 인사하고 가버린다.
지나온 나무 테크길
강을 하면서 해안을 하면서 늘상 달고 다니는 발바닥의 집
발가락 물집 2개
발바닥 물집 4개 모두 6개의 물집이 생겨 걸음하는데 지장이 생겨
반창고 바르고 드래싱 밴드로 감고
너는 누구냐
3층 모기장 방에 나란히 누워있는 폼이
어제까지만 해도 동해의 푸른물속에서 놀던 녀석들 같은데
이녀석들은 무슨 죄를지었기에 갈고리로 꾀어 꺼꾸로 매달아 놓아
피가 머리에 쏠리는 모진 고문을 하는지
가운데 녀석이 하는말 "에고~~ 나죽네 하는것 같다."
자갈길도 좋고
바람없는곳 그늘도 없고
동해안 땅끝이라는 동네를 지나니
그냥 지나치기 쉽상이자만 안가면 후회할것 같고
잠시 가보자
땅끝으로 가는길에 방파제는 철문으로 굳게 막혀있고
철문옆 가두리 양식장 그곳 주인분께 "조짝핀에 가서 사진한장 찍고오면 안되느냐" 하니 웃으며 가보라며 하신다.
수기님 다리만한 물고기가 드글드글
입맛 다시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으시고
한반도 동쪽 땅끝지점
경북 포항시 호미곶면 강사리 15-1번지
두분이 가리키는곳은 나도 모르고 며누리도 모른다
두분만 아시는데 엿쭈어 볼수도 없고
정맥팀분들이라 한남정맥이 저쪽에 있다 이런걸로 해석할 수 있음
배고픈 두사람
땅끝 끝지점에 낚시꾼들이 있어 물고기를 연신 잡아 올리신다.
이곳 땅끝 바위는 가두리 약식장을 거쳐서 와야하는데 낚시꾼들은 가두리 양식장 출입이 제한되어
배로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
배타고 오는데 드는 비용은 일인당 1만원
우리야 낚시하고는 상관 없으니 말만 잘하면 그냥 들어와도 되지만 꼭 가두리 양식장에 허락을 받아 와야한다.
배고픈 두사람과 그옆에 자연산 회를 준비중이신 낚시꾼분들
자연산 회를 준비중이신 포항의 낚시꾼
모든 산에서 물을 찾고 사막에서도 얼음을 구할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바다에서 자연산 회정도야 식은 죽먹기라...
최대한 불쌍한 자세로 가까이 가서 이야기 몇마다 나누며
배고픈 두사람을 불러 옆자리에 앉아
이분들이 가지고 온 김밥과 싱싱한 회로 간단히 배를 채운다
회는 고추냉이(와사비)
평소 뻘건 초장에 부드러운 회를 찍어 먹는다는건 물고기를 모독하는 행위라 생각하기에
고추냉이(와사비) 없는 회는 생각도 못한다.
이분들도 뻘건 초장이 없다. 그많큼 회를 잘 아시는 분들
수기님은 자리 잡았고
인심 좋은곳에서 낚시대 없이도 자연산 회로 원기 보충하고
너무 오래 있으면 민패라 일어선다
가두리 양식장의 방어와 부시리
강원도에서 공수해온 물고기라고 ...
수기님 다리 많큼 큰녀석들
가두리 양시장을 나오며 구경 잘하고 간다고 정중히 인사를 드리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하신다.
강사리 바닷가를 지나며
호미곶면을 지나 이제 구룡포 길이다.
매점에 들러 꽁꽁 아이스크림 사고
잠시 휴식중
갯바위에 자리잡은 키작은 소나무
그동안 소나무 구경은 많이 했지만 저런 소나무는 처음
세월의 모진 풍파를 온몸을 낮게 낮추어 견더낸 절송(絶松)이다.
하늘로 오르지 못해 아래로만 자라는듯
때로는 몸을 낮추는게 살길이라 스스로 판단해서
몸을 낮춘이에 대한 보상으로 바위하나를 전부 얻어 산다.
구룡포 석병리 항구를 지나며
구룡포길 삼정리 삼정섬을 앞에 두고
마을 분들께 삼정섬에 볼것 있냐고 물어보니 가보면 안다고 하신다.
뭐그리 대단한 천년비기(天年飛氣)가 꽁꼼숨어 있는듯 말씀 하시니
호기심에 안가볼 수 없고
과메기가 허리춤에 묶여 한곳만 응시하니 바로 삼정섬이다.
저곳이 지상 낙원인가 싶어 가본다.
삼정섬에는 낡은 회집 한곳과 소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진 잔챙이 언덕에는 철조망이 둘러 처져있고
볼꺼 라고는 볼일보고 가라고 만들어 놓은 커다란 장실만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이런 염병" 한소리 하고...
어찌 보면 천년비기 가 맞을 수도 있겠다.
멀리 구룡포가 보이고
모진 녀석들
살면 어떻게든 산다.그것이 인생이다.
절망속에서 좌절하지 말고 따라 배우라고 가르치는듯한 소나무들
읽어 보시고
삼정리의 주상절리
로드 퀸 수기님
산에서는 같이 안가봐서 모르겠지만
해안길을 걸으면서 바른 걸음으로 잘 걸으신다.
로드 퀸으로 인정 합니다.
정맥길 잘 이어 가시고 언제나 한한 웃음으로 남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담한 구룡포 해수욕장
구룡포 일본풍의 거리
오래전 드라마 촬영지 였던것 같다.
여명의 눈동자
최재성을 우라나라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 놓은 작품이죠
구룡포 항에 와서
수많은 회집중에서 가장 깔끔한 집을 찾아서
음식도 깔끔하고 맛도 깔금하고
산이 지부장님 감사 합니다.
회집을 나오니 현관문 앞에서 젊은 남자 주인분이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하신다.
"동해안 강원도 통일 전망대부터 이곳까지 수백킬로를 내려 오면서 가장 깨끗하고 깔끔한 집이라
말씀 드리니 주인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다음에 또 오라고 한다
"오라는데는 많고 시간은 없으니 언제 이곳에 또올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구룡포에서 식사를 하고 나와 구룡포 길을 걷다보니
어느 작은 항에 도착한다.
그물에서 고등어 작은 녀석들 손질을 하시는데 큰 돈은 안될것 같다
인사를 나누고 오늘 많이 잡으셨나 물어보니 이게 전부라며
필요하면 몇마리 줄테니 가지고 가서 고등어 찌게해서 드시라 한다..
"아뇨 힘들게 잡으신것 제가 어찌 그냥 가지고 갑니까! 고마운 말씀만 감사히 받을께요" 하고 인사를 하고
두분 보기 좋구요 건강 하세요.
*(사실 당일치기면 고등어 몇마리 사서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음)
수기님께 고등어 몇마리 얻어줄까 했지만
수기님은 필요 없으시다고
산이 지부장님께는 고등어 얻어주기 싫고 ^__^
구룡포길 하정2리 항구
나무 화석처럼 길게 이어진 바위
이런곳은 꼭 가봐야
해안선 하정동 해파랑길을 걷는분들을 만나서 같이 인증 담아본다.
이분들은 양포에서 시작해서 구룡포까지 진행 하시는데
어디서 왔나고 물으시기에 "요 위에서 와서 요 아래까지 간다"고
구룡포읍 장길리 해상공원에서
잠시 휴식중에 수기님은 이팔 청춘이니 진한 블랙 커피
우리는 나이가 있으니 당분 섭취가 필요하다며 달달한 녀석으로
끝부분에서 낚시하는 분을 만나
"뭐 잡으시는데요"
-갑오징어요-
"잡을 수 있어요"
-일단은 던져 보구요-
웃으며 "아무리 봐도 못잡을 같은데.."
-제가 봐도 못잡을 것 같습니다"
서로가 잠시 웃고 나온다.
구룡포 구평길을 지나며
가을이 익어가는 벌판
허수아비는 참새의 공격에 완전 무방비 상태 그래서 빈페트병을 바람개비 삼아 만들었는데
다른 녀석들은 기름이 없어 전혀 돌지않고 한녀석만 쌩생 돌아간다.
수많은 해송(海松)중에서 가장 특이한 녀석
이녀석은 소나무는 이렇게 누워서도 클수 있다는걸 보여주듯
보란듯 누워서 자란다.
구평리 신각(神角)을 지나고
마을의 어르신(神)을 모시는 사당같은 곳이다.
해안길로 가다보면 철조망 때문에 길은 막히고 마을길로 올라
장기면 31번 지방로로 오른다.
장기면 고갯마루
포항시 장기면 모포리 해안길
이제 하루해가 빠질 무렵
산이 지부장님과 수기님 그리고 저
양포에서 추사대장님과 합류하기로 해서 발걸음을 양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