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것 -hospitality 경영학부 황유신
내가 사랑하는 것. 최근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배우 변요한이 연기한 김희성이라는 캐릭터의 대사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내 원체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웃음, 농담 그런 것들.” 많은 대사가 있었지만, 이 대사가 참 공감이 되었다. 어쩌면 이 대사 때문에 3명의 남자 주인공 중 희성이를 제일 좋아했는지 모른다. 아름답고 무용한 것. 나도 이들을 좋아한다. 글의 주제에 맞게 말한다면 나도 이들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나. 이를테면 풀벌레 소리, 밤공기, 비 온 후 산 냄새, 아빠의 오래된 산울림 테이프, 흙길의 부드러움, 무겁고 포근한 겨울 이불 등 사소한 것들 말이다. 특히 난 감각적인 것을 사랑한다. 청각, 시각, 미각, 촉각, 후각 중 특히 미각, 후각, 청각에 민감하다. 난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행위를 사랑한다. 만약 누군가 음식 대신 캡슐만 먹으며 50년을 살 것인가 아니면 마음껏 먹으며 20년을 살 것인가 물어본다면 조금의 망설임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후자를 선택할 것 같다. 또한 핸드폰 용량이 부족해서 내 사진을 정리하는 한이 있어도 내가 먹은 음식들 사진을 정리하진 않는다. 이렇듯 나는 먹는다는 행동과 음식들을 사랑한다. 후각에 있어서는 특히 ‘공기’ 냄새를 맡는 것을 사랑한다. 시간마다, 장소마다 향이 다르지만,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겨울이 오기 직전의 코를 뚫는 시원한 밤공기와 새벽공기,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의 밤공기, 산 공기 등이다. 아 공기 냄새 말고도 나는 한나절 동안 햇볕을 쬔 이불의 냄새를 좋아한다.
여행을 사랑한다. 어쩌면 여행을 하는 내 모습을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좋아한다고는 느끼고 있었지만, 여행을 사랑한다는 것을 안 순간은 고2 때 첫 홍콩으로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난 이후였다. 나는 누군가가 내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굉장히 어색해하며 카메라 후방렌즈를 보면 얼굴이 굳어진다. 그런데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찍은 사진 속의 나는 너무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지금 보면 다시금 행복해지는 그런 미소 말이다. 체감온도 40도의 날씨에 샐러드 하나 먹고 버티다가 일사병 걸릴 뻔한 상황을 겪고도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새삼 놀라웠다. 여행을 다녀오면 지치다가도 이내 다음은 어디 가지 하는 고민에 빠져있다. 전 여행의 추억과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버틴다. 가끔은 내 인생 자체가 여행을 위해서 변형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에 빠질 때도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뽑자면 엄마다. 물론 일기에 엄마에 대한 안 좋은 감정들을 쓸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그저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고 기본 베이스에는 언제나 사랑이 전제되어있다. 엄마는 항상 내 자랑이었다. 난 엄마를 자랑하는 것을 좋아했다. 내 눈의 엄마는 만능이었다. 머리도 자를 줄 알고, 옷도 만들 줄 알고, 항상 배우려고 노력하며, 음식도 잘하고, 말 그대로 못 하는 게 없었다. 엄마가 못 하는 게 없다는 걸 알수록, 어떤 상황에 있어도 잘 헤쳐나간다는 걸 알수록, 엄마에게 미안했다. 왠지 나와 오빠가 엄마의 발목을 잡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 성공하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인데 날개를 꺾어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엄마를 보면 뭔가 해주고 싶다. 엄마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내 용돈 털어서 뭘 해주고 싶고, 아빠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아빠 생신에는 선물도 따로 준비 안 하고 넘겼는데 엄마 생신 때는 꼭 따로 선물을 준비하게 된다. 난 엄마의 웃는 모습을 사랑한다. 아이처럼 장난치는 모습도 사랑하고, 항상 배우려 노력하며 찾아다니는 모습도 사랑한다. 그런 다양한 모습들을 사랑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 그냥 그 행동을 하는 주체가 엄마이기에 그 모습을 사랑한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좋아한다’와 ‘사랑한다’는 것을 섞어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사랑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것보다 강한 감정이고 사랑의 대상에 있어서도 그 깊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안다. 내가 엄마와 음식을 같은 깊이로 사랑하지 않듯 말이다. 하지만 내가 아직도 ‘사랑한다’와 ‘좋아한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아마 아직은 내가 ‘이런 게 사랑이다’라고 스스로 정의내릴 만한 경험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첫댓글 마지막 문단에 "사랑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것보다 강한 감정이고~"에 완전 공감돼. 나는 평소에 어떤걸 '좋아한다'는 잘 사용하지만 '사랑한다'는 선뜻 쓰지 않거든. '사랑한다'를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나는 글을 쓸 때 사랑한다는 표현이 좋아한다보다 뭔가 더 깊이 있어야한다는 것 때문에 고민을 참 많이 했는데 나도 너처럼 사랑한다와 좋아한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아
마지막 말 정말 공감돼! 나도 아직 사랑한다라는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난 그래서 말하기 더 어렵더라! 나이들면 알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