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여행 중 종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친구와 함께 거센 비를 맞으며 깔깔깔 돌아다니다가
빗소리 음악소리 파도소리 섞여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오늘은 서핑도 글렀고, 더 이상의 산책도 어렵겠고
딱 영화 보기 좋은 날이었다.
마리아샘이 추천해주신 영화 '박화영'을 틀었다.
학교밖청소년들이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라기에 전부터 계속 어떤 영화일지 궁금했다.
영화 포스터 느낌만 보면 생각보다 가벼운 코믹영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그리고 코믹한 표정과 제스처.
무슨 의미일까.
이 영화가 유쾌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영화를 틀고 7분 이내로 싹 사라졌다.
무엇때문이었을까, 7분 무렵 영화를 잠깐 멈추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영화 보는 내내 영화를 멈추고 싶었다. 중단하고 싶었다.
겨우겨우 끝까지 다 봤다.
나는 단지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너는 이 영화를 어떻게 현실로 살았을까?
날다의 한 녀석이 계속 떠오른다.
이 영화 주인공 '박화영'이 극중에서 내내 짓던 웃음은
날다의 그 녀석이 짓던 웃음과 똑 닮아 있다.
그렇게 웃지 않으면 좋겠어, 네가 진짜 웃고 싶을 때 웃으면 좋겠다고.
너에게 쉽게 내뱉었던 나의 말이 미안해진다.
네가 왜 이렇게 웃게 되었는지를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보듬어줄 걸 그랬다.
어렴풋이 네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상상할 뿐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영화 속에서 박화영이 자퇴를 하려고 교무실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교무실에 앉아있는 그 어떤 교사도,
교무실에 들어온 그 학생을 쳐다보지 않는다.
그러자 박화영은 교무실 한복판에서 보란듯이 담배를 피기 시작한다.
절에서 나를 쓱 보고 담배 한까치를 물던 그녀석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선생님한테 관심받고 싶어서 그랬어요."
영화 속 박화영은 도대체 친구인지 아닌지 모를 또래 무리들 사이에서 '엄마' 역할을 자처한다.
라면을 끓여 내오며,
누구 대신 맞고 뒤처리를 하며,
모든 죄를 혼자 다 뒤짚어 쓰고,
"니넨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라고 씩 웃으며 말한다.
영화가 끝나고
은미정의 대사 하나가 뇌리에 꽂힌다.
"엄마, 엄마야말로 나 없었음 어쩔 뻔 봤냐?"
이들은 무슨 관계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고 충족하고...또는 충족되었다고 착각하고.
어쨌든 극중 박화영은 열심히 살아간다.
자신의 세계에서 만들어낸 '엄마'라는 정체성에 충실하며.
친엄마에게 외면받고, 차라리 자신이 '엄마'가 되기로 한, 그렇게 살아가는 너를 탓할 수 없다.
너를 둘러싼 환경이 잔인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그 환경에서 멀어질 수 있을까?
좀 더 친구다운 친구를 알아보고 사귈 수 있기를.
덜 상처받길.
진짜를 살길.
그래서 나는 널 위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날다에서 교사로서의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