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증도는 물이 귀하여 물이 ‘밑 빠진 시루’처럼 스르르 새어 나가 버린다는 의미의 시루섬이었다. 한자로는 시루 증(甑) 자를 써서 증도(甑島)라 하였다.
원래는 앞시루섬과 뒷시루섬 그리고 우전도라는 3개의 섬이었으나 앞시루섬과 우전도가 간척으로 합해져서 전증도가 되고 뒷시루섬이 후증도가 되어 2개의 섬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 두 섬 사이를 간척하여 하나의 섬으로 합쳐지면서 옛이름도 살릴겸 ‘더한 섬, 늘어난 섬’이라는 뜻의 증도(曾島)가 된 것이다.
증도는 삼국시대에 백제의 고록지현에 속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압해군의 영속인 임해현에 속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영광군에 속하였다가 나중에 나주목에 편입되었고, 숙종 8년(1682)에는 지도진에 속하여 목장이 설치되었으며, 그 후 고종 32년(1895) 신설된 지도군에 이속되었고, 1914년에 무안군 지도면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1983년 증도면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최초로 이 섬에 들어온 사람은 한양 조씨 조도흥으로 지도 태천에서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이후 김해 김씨가 1618년에, 밀양 박씨가 1638년에 이주해 와 마을이 형성되었다.
<대초리>
증도에 있는 도서지역으로 여러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후증도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앞실이라 불렀다. 그 후 마을에 대추나무가 많이 자란다 하여 대치동이라 부르다가 다시 대초리라고 개칭하였다. 대초리는 대초, 덕정, 돌마지, 화도, 등선, 버지, 장고, 사동을 합한 지명이다.
<우전리>
서해의 도서지역으로 기러기떼가 한겨울을 지내고 간다 하여 깃밭이라 부르다가 그 후에 우전으로 개칭하였으며 갈마도, 명덕도, 미영섬, 벼락섬 등의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산과 도안산이 낮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넓은 개가 형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우전, 우동, 우서 등이 있다. 우전은 우전리의 본 마을로 길게 뻗은 벌이 있어서 깃밧이라 불리다가 우전이라 개칭되었다. 우동은 우전 동쪽, 우서는 우전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쇠기러기, 큰기러기 등 겨울철새들이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2. 교통
증도에 가려면 4개의 다리를 건너야 된다. 먼저 전남 무안군 해제에서 지도로 가는 다리를 건너면 지도읍, 그리고 지도에서 다시 다리를 지나가면 서남해안 최대의 수산물 어판장 송도, 송도에서 다리를 건너면 사옥도, 마지막으로 사옥도에서 증도대교를 건너야 증도를 갈 수 있다.
증도는 육지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지만 교통수단 때문에 고초가 많았던 섬이다. 60년대 전후 증도 사람들은 배를 타고 걷고, 다시 배를 타고 걷기를 서너 번 반복해야 육지로 갈 수 있는 가장 더딘 섬이었다. 즉, 증도 진번나루터에서 사옥도 지신개선착장까지 나룻배로 노를 저어 가고, 거기서 사옥도의 탑선나루터까지 3km를 걸어간다. 탑선나루터에서 다시 나룻배를 타고 지도까지, 거기서 다시 5km 정도를 걸어가서 다시 나룻배를 타고 육지인 무안 해제로 건너갔으니, 증도 사람들이 뭍으로 건너가기까지 모두 여섯 시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연륙이 되기 전, 증도 사람들에게는 나룻배와 연계된 육로편보다 선편이 더 유리했다. 목포까지 3시간이면 갈 수 있고, 지도읍 송도 선착장에서 증도 버지선착장까지 철부도선이 운항하게 되면서 차를 싣고 드나들 수 있었다. 증도는 섬이 커서 소금 생산과 논농사를 많이 하지만, 유통이 큰 문제였는데 차도선(車渡船)이 대형차들을 싣고 와 소금과 벼를 수송하는 것은 거의 혁신이었다. 철부선이 섬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디 이 섬뿐일까마는 증도는 특히 다른 섬들보다 기쁨이 더하였다.
증도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관광객들의 차가 들어오면서부터 보물섬으로서의 진가를 보여 줄 수 있는 관광의 섬으로 발돋움을 한 것이다. 2004년에는 지도대교(사옥대교)가 완공되어, 사옥도 지신개선착장에서 증도 버지선착장까지만 배를 타면 되었다. 특히, 야간운항을 하면서 증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났고 지역소득도 높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증도 사람들의 연륙교 혜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그들에게 증도와 사옥도가 연륙되었다는 것은 절박한 생존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위급환 환자를 수송해야 하는데 바람이 많이 불거나 높은 파도 앞에서 절망해야 했던 일, 부모의 임종이나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등 안타까운 경험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이제 사옥도와 연륙이 되면서 사옥도 지신개 선착장과 증도 버지선착장을 연결하던 철부선 증도호는 2008년 3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3. 증도의 관광
가. 해수욕장
대광해수욕장 임자면 대광해수욕장길 179
도초시목해수욕장 도초면 시목길 219-30
동개해수욕장 흑산면 가거도리
상사치도해수욕장 안좌면 한운리
시목해수욕장 도초면 시목길 290
용출도해수욕장 압해읍 장감리
-사진자료 미확보
우이돈목해수욕장 도초면 돈목길 33-1
우전해수욕장 증도면 우전리
임자대광해수욕장 임자면 대광해수욕장길 179
짝지해수욕장 흑산면 만재도리
짱뚱어해수욕장 증도면 대초리
나. 신안해저유물발굴지
증도면 방축리에서 서북방향으로 2,750m 지점의 바다 속에서 중국 원나라 때(14세기경) 제작된 정차를 비롯한 대외무역용의 많은 유물이 다량으로 발굴되었다. 해저 발굴조사는 1976년 10월부터 1984년 9월까지 10차에 걸쳐 발굴된 유물은 침몰된 배의 조각 445편을 비롯하여 도자기 20,661점, 금속제품 729점, 돌로 만든 제품 43점, 자주빛 나는 자작 향나무 1,017개, 동정 28톤 18kg, 기타 574점 등 총 23,024점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 이외에도 약품. 일용품 등을 비롯하여 맷돌에서 바둑판에 이르기까지 당시 배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생활용품들도 발굴되어, 세계 학계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었다. 13·14세기의 남송에서 원대에 걸친 각종 도자기 연구에 새로운 자료를 제공해 주는 계기와 함께 고대 동양의 원양 항해선박인 무역선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다. 짱뚱어다리
우전해수욕장 좌측 편 갯벌위에 475m의 목교로 썰물때 다리를 건너면 짱뚱어, 칠게, 조개 등 갯벌의 자연생태를 눈으로 보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라. 화도 드라마 촬영지
해당화가 많이 핀다고 화도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본섬과 화도는 1.2km정도 떨어져 있는데 현재는 노두로 연결되어 갯벌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최근 “고맙습니다”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마. 갯벌생태전시관
갯벌이 주는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는 배움의 장을 만들고 있으며, 대규모 회의실을 갖추어 각종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바. 염전
증도대교를 건너 증도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염전으로 간척으로 만든 염전과 농지가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대동염전>
대동염전은 1948년경에 비금도의 450세대 주민들이 염전조합을 결성하여 100여ha가 넘는 광활한 대동염전을 조성하였으며, 이는 폐염된 경기·인천지역의 주안·남동·군자·소래염전을 제외하고는 설립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다.
비금도에는 '천일염전기술자양성소'가 설치되어 염전기술자를 양성하였고, 여기에서 배출된 기술자들이 인근 도서지역과 완도, 해남, 무안, 영광, 고창, 부안, 군산 등지에 진출하여 천일염전 조성공사에 참여함으로써 광복 후의 우리나라 염전발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인근 떡매산에서 바라본 대동염전은 넓은 염전지대의 저수지, 증발지(蒸發池), 결정지(結晶池), 해주(海宙, 鹹水溜)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천일염전의 형태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인문적 경관 가치가 뛰어난 살아있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11월에 등록문화재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태평염전>
1953년 6.·25전쟁 후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고 소금 생산을 늘리기 위하여 증도와 대조도 두 섬을 잇는 제방을 쌓고, 그 안에 대규모 염전을 조성한 후, 정부에서 민간사업자인 척방산업(주)에 영업권을 넘겨주었고, 이어 1963년부터 대평염업(주)이 운영하다가 문을 닫은 것을 1985년 태평염업사가 인수한 뒤 태평염전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260ha, 한국에서 단일 규모로는 두 번째로 크며 한 해 1만 6,000톤의 천일염을 이곳에서 생산해 낸다.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11월에 등록문화재 제360호로 지정되었다.
사. 모실길
아. 왕바위
4. 민속
<초분(草墳)>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다 사라진 초분이 증도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 초분은 섬 지방 특유의 매장방식으로 시신을 풀이나 짚으로 덮어 임시무덤을 만들었다가, 2~3년 뒤에 뼈를 추려 시루에 쪄서 땅에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는 뼈에 죽은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어 뼈로 그 사람의 죽음을 확인하고 뼈와 함께 영혼을 매장하기 위한 풍습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오랜 출어기간에 상을 당하는 경우, 객지에서 숨진 경우 등에도 초분의식을 하였다고 한다.
증도의 이런 풍습은 70년대 새마을운동 등으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으나, 지난 봄 증도에 새 초분이 하나 생겼다. 증도면 증북리의 서 아무개씨 집에서 상을 당해 초분을 쓴 것이다. 그러나 직접 보겠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늘자 유가족들이 초분의 관광상품화를 꺼려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증도면에서는 관광객들을 위해 항월포와 목넹기 사이 해변 일주도로변 산 쪽에 초분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5. 축제
가. 섬갯벌축제
매년 7월 말이면 우전해수욕장 일대에서 갯벌축제가 열린다. 행사주체는 신안군과 신안섬갯벌축제추진위원회. 축제 프로그램은 갯벌 체험, 슬로시티 체험, 주민직거래녹색장터, 갯벌센터 방문 등이다. 축제를 통해 섬과 갯벌, 바다를 체험할 수 있는 다채로운 체험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증도를 찾는 관광객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주민과 더불어 새로운 섬문화를 만들어가는 슬로시티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 슬로소금마을축제
5~7월 사이 매월 15~23일 우전해수욕장 일대에서 벌어지는 축제이다. 행사주체는 신안군과 섬들채소금마을. 축제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의 대표적인 태평염전에서 천일염과 갯벌 체험, 슬로푸드를 중심으로 개최된다.
기존의 대규모 축제와 다르게 3개월 동안 각각의 테마로 다양한 체험거리와 먹거리를 선보인다. 예컨대, 5월의 제비꽃(삐비꽃), 6월의 소금, 7월의 함초(칠면초의 전라도 사투리)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