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노(吉野)의 벚꽃놀이 긴테스 천리역으로 나갔다. 강교수와 마즈오(松尾) 교수가 기다리고 계시었다. 나는 그냥 따라만 가면 된다고, 준비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여 지갑과, 만일에 대비해서 진로소주 팩 하나와 등산용 컵 하나를 백 팩에 넣었을 뿐이다. 사실상 나는 어디로 무엇 하러 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전철역에 이르러서야, 가는 곳이 요시노(吉野)국립공원, 벚꽃의 명소로 벚꽃놀이 하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벚꽃철의 전철 안은 복잡했다. 전철 손잡이에 매달려 사람들 틈에 끼어 섰다. 두 장정은 열심히 무슨 이야기인지 나누고 있었다. 한동안 달리던 전철이 잠시 서자 두 분은 나를 한 번 툭 치고는 전철에서 내려 냅다 달리기 시작, 건너편의 플랫폼을 겨냥하고 달렸다. 나도 열심히 뛰었다. 간신히 플랫폼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전철이 들어왔고, 그분들이 뛰어들기에 나도 뛰어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전철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나서야 두 장정은 몸을 돌려가며 내가 어디 있는지 찾는 모양이었다. 나는 바로 그분들 옆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사람들 틈바구니에 그렇게 끼어서 가다가 다시 한 번 차에서 내려 이번에는 구름다리를 건너 좀 더 많이 달려서 다른 전철에 올랐다. 달리는 동안에 그분들은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문득 생각이 난 듯 고개를 돌려가며 나를 찾다가 눈이 마주치자 웃었다. ‘유선생 등산가라 다리 힘이 좋아서……’강교수는 내가 뒤지지 않고 그들을 부지런히 좇아서 전철에 오른 것이 대견스럽다는 듯 말했다.
요시노 역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구경이었다. 일본 전국의 사람들이 모두 요시노로 몰려든 것 같았다. 사람들을 따라서 벚꽃 순례에 나서는 길. 좁은 골목을 지나고 상가를 지나고, 곳곳마다 벚꽃 봉오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관광지의 쾌활함과 분주함이 가득찬 거리를 지나서 언덕으로 언덕으로 올랐다. 제법 경사도가 급한 길을 사람들 뒤통수만 바라보면서 올라갔다. 나라현(奈良縣)의 중앙에 위치한 기이산지(紀伊山地) 그곳에 일본의 오래된 산악 도시인 요시노가 있었다. 급경사진 비탈길에 촘촘히 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세상은 연분홍이었다. 강교수은 연방 ‘우마이’를 외쳤다. 산 정상에 가깝게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산위로 오르고 있었다. 꽃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정신없다는 것이 내 심정이었다. 꽃은 조용한 마음으로 천천히 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곳은 꽃을 보기 위해 왔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나를 구경시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즈오 교수가 커다란 벚꽃나무 아래 나를 세워놓고 카메라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꽃을 배경으로, 꽃핀 산을 배경으로, 사람들을 배경으로…… 점심은 산 정상의 매점에서 도시락을 사다가 먹었다. 꽃을 보러왔으면 꽃만 보면 되지 꼭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 여기 저기 가족단위로 꽃놀이패들이 모여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산 위에, 산 아래쪽으로 벚꽃 구름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신기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일본의 한 산간마을에서 벚꽃놀이를 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산 아래로 내려오면서 오래된 사찰이며 신사(神社) 건물은 바깥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사찰의 한 모퉁이 수양버들처럼 칭칭 휘늘어지면서 벚꽃이 피어 있었다. 마즈오 교수가 일본에서도 귀한 벚꽃이라며 나를 벚나무 아래 세워놓고 또 사진을 찍었다. 꽃놀이패로 가득 찬 골목, 늘어선 관광 상품 파는 상점에서 나는 종이로 만든 일본인형 하나를 골랐고, 파견 우체국에 들려서 기념우표도 몇 장 샀다.
꽃놀이패의 물결 속에서 혹시나 동행을 잃을까봐 노심초사, 그분들의 헌칠한 키를 연신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전철역이 가까운 어느 골목. 리어카에 숯불풍로를 피워 올려놓고 젊은 남자가 손바닥 만큼한 물고기에 나무젓가락을 세로로 관통시킨 것을 구워서 팔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음식문화였다. 민물고기라는데 굵은 소금을 뿌려서 즉석구이로 팔고 있었다. 양미리 굽는 냄새와 비슷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경을 하는 내게 마즈오 교수가 한번 먹어 보자고 했다. 두 장정이 구운 생선을 먹으려고 할 때, 나는 가방에 넣어온 진로 소주팩을 꺼냈다. 술안주가 좋은데 술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이었다. 두 장정은 기가 막혀 하면서도 즐거워했다. 미리 준비한 등산용 컵에다 소주를 따라서 나누어 마시며 맛보는 즉석 생선 소금구이.
“오이시이! 오이시이!” 강교수의 목소리가 드높았다. 강교수 ‘오이시이!’ 소리에 지나가던 꽃놀이패들이 리어카로 모여들고 있었다. 내가 한국어로 강교수과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던가. “한국에서 오셨어요 ?” 꽃놀이패 가운데 인사를 해오는 30대 중반 정도의 남자가 있었다. 우리가 먹고 있는 생선을 한 번 쳐다보고는 그도 구운 생선 하나를 사 먹었다. 소주 한 잔 들라고 했더니 사양했다. 구운 생선을 다 먹고 골목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그가 한 스무 걸음 정도도 못가서 갑자기 우리 쪽으로 되돌아 왔다. “죄송하지만 한 잔 주시겠어요?” 그는 등산용 컵에 1센티 정도 따라준 진로 소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크!~” 감탄사를 연발했다. 귀한 술을 얻어먹기가 미안해서 사양했던 것이지만 그대로 지나칠 수 없었던 멋쟁이였다. 일본의 오래된 산간마을 요시노에서 마시는 한국산 소주가 우리 모두를 즐거움의 절정으로 데려가 주었다.
이국(異國)의 사월 벚꽃놀이, 향기롭고 고운 벚꽃동산, 입맛 당기는 즉석 생선구이, 물론 요시노의 꽃구경도 좋았지만, 출렁이는 일본어 가운데서 한국어로 소통하는 사람들, 이러한 때에 소주 한 모금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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