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 M. 에이브럼슨 <불평등은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1. ‘노화’, 나이가 든다는 것의 실제적인 정의는 무엇일까? 노화는 생물학적인 기능의 붕괴라는 신체적 변화와 그 변화가 야기하는 사회적 변화를 종합해서 인식해야 한다. 노화가 가져오는 이동의 어려움, 인지적 기능의 축소, 외모의 변화 등은 변화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가져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은 모두가 ‘유사한 형태의 문제들’을 맞이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문제에 대처하고 대응하는 방식에는 엄청난 차이와 불공정한 경쟁이 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노년의 삶은 노년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인종적, 성적 구분에 의해 ‘계층화된 과정’의 영향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라 할 수 있다.
2. 미국의 사회학자 에이브럼슨은 약 3년에 걸쳐 미국의 4개 지구(2개 중산층 지구, 2개 하층 계급 지구)의 노인들에 대한 심층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노년에 삶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의 상호관계를 추적하고 그 결과 나타나는 불평등의 문제에 주목하였다. 이러한 민족지학적 방식의 질적 연구를 통해 발표한 것이 『불평등이 노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가』이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이 책의 목적은 사회계층화의 핵심 메커니즘(건강불균형, 구조적 불평등, 문화, 관계망 등)이 어떻게 노년의 일상생활을 구조화하는지 또한 노년에만 해당하는 실제적이고 상징적인 측면이 어떻게 미국 불평등의 중심축을 이루는지 보여주는 데 있다.”
3. 저자의 관찰 결과 노년의 삶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계층화 메커니즘의 차이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 요인이다. 경제적 요인에서 개인이 갖고 있는 자원의 차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해준다. 가난한 노인들은 공적인 정부 서비스에만 의존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성의없는 행정서비스에 의해 정신적인 상처를 받거나 자존감에 대한 위협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른 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노인들이 갖게 되는 정체성은 심각하게 붕괴되기도 하는 것이다.(미국에서는 의사의 진단에 의해 노인들에 대한 병원이나 요양소에 대한 강제 입원이 결정되기도 한다) 개인이 갖고 있는 자원은 이러한 위험에서 자유를 제공한다.
4. 개인적 자원뿐 아니라 어디에 사는가에 따른 지역적 자원의 차이도 중요하다(궁극적으로는 그 지역에 살 수 있는 개인적 자원의 결과이지만) 지역마다 노인들에 대한 서비스의 질과 수준에서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지역의 시설과 서비스의 질은 열악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도 훨씬 적다는 것을 저자는 관찰을 통해서 확인했다. 흥미로운 것은 자원봉사자의 참여의지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하는 가난한 지역 봉사 담당자의 태도이다. 결국 어디에 거주하는가에 따라 노년의 삶이 주는 질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5. 경제적, 사회적 요인과 같은 구조적 격차 이외에도 문제를 바라보고 인식하고 대응하는 문화적 태도와 그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망의 중요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화적 태도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판단과 행동이 나온다는 점에서 노년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어쩌면 이러한 요인이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독립적인 노년의 삶’에 대한 자세를 제시하는 하나의 근거가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사회학적 연구는 개인적인 성찰이나 태도의 영향보다 구조적 요인의 강도나 영향력의 범위가 훨씬 압도적임을 확인시켜 준다. 개인의 선택보다 구조적 변화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6. ‘관계망’은 노인들의 물질적, 심리적 삶의 한계를 넓혀주는 효과를 갖는다. 하지만 관계망이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때론 관계망의 성격이 고통이나 불안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관계망은 위협적인 요인이 될 수도 있다.(만나는 사람이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인물이라면 그러한 관계는 없는 것보다 못하다) 결국 이러한 계층화를 가져오는 메커니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노년의 삶을 형성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내용일지 모른다. 하지만 연구의 방법이 추상적이고 양적인 방식의 연구가 아닌 구체적인 개인들의 사례에 대한 심층적 관찰을 통한 결과라는 점에서 문제의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시켜 준다.
7. 먼저 ‘운전하기’의 중요성이다. 미국에서는 운전이 불가능해졌을 때 치명적인 이동의 위험을 겪게 되며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한다. 대중교통의 이용은 어렵고,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불편하고 불합리하다는 점에서 운전의 포기는 어쩌면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결국 “일주일 내내 빈둥거리며 죽어가고 있지요, 죽음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젠장, 몸이 말을 안 들어 밖에 나갈 수도 없었요.”와 같은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기업후원’과 ‘자원봉사’의 문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의 후원과 자원봉사는 노년의 삶의 질을 보완해주는 중요한 지원요소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 이러한 지원이 편향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의 후원도, 자원봉사자의 참여도, 대부분 중산층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가난한 지역의 대한 지원은 상대적 낙후되고 관심에서 조차 멀어져 있었다. 가난한 지역에 대한 후원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 함에도 현실은 정반대의 불평등한 상황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8. 저자의 연구 결과는 미국에서 불평등이 노년의 삶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대한민국 상황에 대한 몇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먼저, 노인 지원에 대한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접근의 필요성이다. 노인들이 갖는 유사한 집단적 성격에만 주목한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자립성이나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론 지역 행정센터에서 벌어지는 노인들의 불만은 단순히 인성적 문제를 넘어 공적서비스가 갖는 모욕적인 성격이 잠재하고 있지 않은지를 점검해야 함을 말해준다. 또한 복지지원이나 시설지원 그리고 봉사활동에서도 일회적이고 편파적인 지원이 되지 않도록 관심을 가울여야 한다. 소외되고 발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서비스망에서 사라지는 노인들이 없도록 더욱 촘촘한 국가 지원체제가 수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자의 연구는 최근 노인들의 자발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는 추세 속에서 실제 많은 노인들의 삶이 불평등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노인들은 독립하고 성장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삶의 오랜 시간 속에서 누적되어 독립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의 불평등에 관한 문제는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인 지원을 통해서 축소시켜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첫댓글 - 나이듦은 시간의 흐름이다. 노년의 경제력은 안전한 삶의 버팀목이다.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할 때 삶의 가치는 초라해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