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마음이 생기면 먼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 한다(善心生,先慚愧)
선한 마음(善心)이란 참(慚)과 괴(愧)의 두 가지 법과 탐욕없음·성냄없음·어리석음없음의 세 가지 근을 선善의 자성自性으로 삼습니다. 그것과 상응하여 일어나는 일체의 마음과 심소(心所 : 마음에 속한 것)를 선한 마음이라 합니다. 이것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말하면 좋을 것입니다.
선한 마음이 생기면 먼저 부끄러워하고 두려워 하니, 두 개의 심소가 현전합니다. 참慚이란 양심이 편하지 않음을 느끼고 내가 사정을 좋지 않게 만든 것에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괴愧란 여론의 제제(외부의 시선)를 두려워하여 타인이 나에 대해 좋지 않은 비방을 할까 두려워합니다.
한편으론 타인의 비난을 두려워하고 다른 한편으론 양심이 편하지 않으니,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매우 쉽게 뉘우치므로 악을 끊고 선을 닦을 수 있습니다. 만약 양심이 없고 부끄러워하고 창피해 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런 방법도 없습니다. 나쁜 일을 해도 사람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듣습니다. 이런 사람은 양심과 수치심이 없고 양심과 수치심이 없으면 뉘우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작은 것을 좇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량수경』에서는 “과거의 사람들은 선을 행하지 않고 도덕을 알지 못하였으며, 이를 말해주는 사람조차 없어 세상살이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느니라. 이들은 생사 육도윤회의 과보와 선악의 업인을 모두 믿지 않았고, 아예 이러한 일은 없다고 말하였느니라." 라고 설합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 그를 불쌍히 여겨야 하고 그가 비록 무거운 죄를 지을지라도 여전히 잘 생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 원인일까요? 과거 생 가운데 닦은 큰 복보福報는 지극히 무거운 죄업을 지어도 여전히 그것을 상쇄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면 죄업의 말을 지어서는 안 되니, 그의 그러한 복보는 당대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 모아야 복보가 더욱 큽니다. 결국 참괴를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이 마음은 불선不善을 행하고, 그것은 일생에 없어져 버리며, 일생에 누려 없어져 내세來世에 도착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복을 누려 없어져 버리면 지은 죄업이 바로 현전하고, 그 재난(禍害)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인과因果교육이고, 진정으로 인과에 밝아지며, 여러분은 완전히 명백해 질 것입니다.
그래서 참괴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부처님 공부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두 글자에 주의하고, 기심동념(起心動念 ;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임)·언어구사가 양심에 떳떳해야 하고 타인의 비방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지금 이 사회는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헐뜯는 것이 일상의 일이 되었으니 우리들은 그것을 들은 후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심하게 비난한 적이 없는가? 만약 빨리 고칠 것이 있다면 고치고, 억울함이 없다면 내가 억울함을 당하더라도 변별辯別할 필요가 없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업장을 없애는 것이고 사정을 나쁘게 하지 않는 것이며 남에게 과실이 없다면 남의 악에 찬 비방을 당해서 업장은 소멸되고 그것도 빨리 소멸됩니다. 그래서 억울함을 받아들이면 마음과 기분이 평화롭고 원한이 없으며 보복이 없어, 이러한 복은 더욱 커집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자기를 높이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토대경과주淨土大經科注(제292집)2012/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