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우 재판장님께
늘 평안과 보람이 있으시기를 빕니다.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의 가슴 속에 44년 동안 사무친 아픔과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재판장님께 간청합니다. 한울회 사건의 재심을 허락하고 무죄 판결을 내려서 40여년 동안 저희의 몸과 맘을 옭아맨 사법적 올무를 풀어주시기를 간곡하게 호소하며 탄원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한울모임은 중고등학생, 청년대학생, 교사들과 직장인으로 이루어진 2~30여명의 작은 기독교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저는 이 모임과 깊은 관계가 없었고 여름과 겨울 수련회에서 설교를 하거나 성경강의를 하는 정도로 가볍게 만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976년 봄에 제가 큰 척추수술을 받고 대전의 집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 동기생인 홍성환 선생과 홍응표 목사께서 찾아주셔서 한울 모임과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한국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하느라고 바빴고 방학 때 대전 집에 들를 때 한울 모임에 참여하였습니다. 한울 모임 사람들은 순수하고 진지한 신앙을 가지고 사랑으로 살려고 하였으며 배우기를 힘써서 신학과 동서양 고전을 공부하였습니다. 저는 이들보다 먼저 공부하고 조금 더 많이 아는 선배로서 저의 지식과 생각을 기꺼이 나누었습니다.
당시 한국사회와 한신대학교 주위에서 그리고 함석헌 선생님의 ‘씨ᄋᆞᆯ의 소리’에서 공동체적 삶을 강조하였는데 한울모임 사람들도 공동체적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공동체와 관련된 성경연구와 신학공부를 하면서 주위의 공동체들을 방문하고 배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전두환 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광주에서 시민들을 살육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 이규호 선생은 전두환을 살인자라고 비난하였고 저는 마가복음 5장 군대귀신 이야기를 해석하면서 “이 나라가 군대귀신에 들렸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국민을 살육했다,”고 비판하면서 예수가 군대귀신을 몰아냈듯이 이 땅에서도 군대귀신을 몰아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1981년 3월에 저를 조사했던 서대전 경찰서 형사들은 제가 불순한 세력과 관계가 전혀 없고 한울 모임과도 깊은 관계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저에게 “당신은 관계가 없다고 하고 서울로 올라가라.”고도 하였습니다. 또 웬일인지 검사는 저를 불러놓고 아무 말 없이 1시간 동안 신문만 보다가 조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대전교도소에 수감시켰습니다. 장애인이었던 제가 인정에 호소하면 빠져나갈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어린 후배들이 죄없이 고난당하는 것을 두고 홀로 고난을 피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한울 모임 후배들이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들임을 확신하였으므로 후배들과 함께 이 고난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전의 정보경찰들은 어린 고등학생들을 한 달 동안 감금하거나 수시로 불러내어 그들의 선생님과 선배들이 빨갱이, 간첩이라는 것을 증언하도록 협박하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렇게 날조된 증거를 바탕으로 한울모임은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히고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1차 대법원에서 한울 모임은 반국가단체가 아니고 기독교 신앙 모임으로서 다양한 공동체들을 탐구하고 모색하는 단계에 있었다면서 참여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죄취지의 원심파기 환송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서울고등법원은 수괴 이규호, 고문 박재순을 모두 지도적 임무에 종사한 자라고 수정하고는 반국가단체 유죄판결을 내렸고 사법부는 그대로 유죄판결을 확정하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르크스 레닌의 공산혁명사상이나 변증법적 유물론이나 프로레타리아 독재나 폭력혁명에 대하여 평생 깊은 불신과 저항의 심정과 신념을 지니고 살아왔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기독교 신앙에 깊이 몰입하여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새벽예배를 다녔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산에서 하는 부흥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제 몸과 맘뿐 아니라 온 세상에 가득함을 체험하였습니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나와 인간과 세상을 바꾸는 참된 힘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는 앙리 베르그송의 생명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였고 4학년 때 함석헌 선생을 만난 후에는 씨ᄋᆞᆯ생명철학연구에 힘을 쏟았습니다. 학사편입한 한신대학교에서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은 박봉랑 교수의 지도로 학사논문 ‘칼 바르트의 성서론’, 석사논문 ‘칼 바르트의 인의론(認義論)’, 박사학위논문 ‘디트리히 본회퍼의 그리스도론적 하나님 이해’를 썼습니다. 그리고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근현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안창호, 유영모, 함석헌의 생명철학을 정립하는 데 힘썼습니다. 안창호, 유영모, 함석헌은 삼일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과 철학을 확립하고 민주공화국의 정신과 철학, 동서정신문화를 아우르는 세계보편문명의 정신과 철학을 형성한 철학자들입니다. 제가 쓴 책들로는 ‘다석 유영모-동서를 아우른 생명철학자’(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씨ᄋᆞᆯ사상’(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함석헌의 정신과 철학’,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애국가 작사자 도산 안창호’, ‘애기애타-안창호의 삶과 사상’, ‘도산철학과 씨ᄋᆞᆯ철학’, ‘인간교육의 철학과 방법’(문화관광부 출판문화진흥원 우수학술도서)가 있습니다. 제가 연구한 철학사상의 핵심은 인간 주체의 깊이와 자유에서 전체의 하나됨에 이르는 생명철학입니다. 제가 평생 연구한 안창호, 유영모, 함석헌의 씨ᄋᆞᆯ생명철학은 한국근현대의 시대정신을 구현한 것이면서 민주공화국의 정신과 철학을 확립한 것이며 대한민국 헌법전문의 정신과 철학을 탐구한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저는 평생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은 모두 한울 모임이 반국가단체라는 사법부의 판결이 터무니없이 잘못된 판결이었고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사회가 되면 당연히 사법부가 무죄판결을 내려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임이 반국가단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아무든지 누구나 조금 관심만 가지면 한울 모임이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아줄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 또한 2007년에 정부는 한울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민주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켰다”면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이름으로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를 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1차 진실화해위원회에 한울회 사건의 진실규명 신청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한울회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아람회, 오송회 사건 관련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고 형사보상과 민사배상을 받은 것을 확인한 후에 한울 모임 관련자들도 2010년에 재심을 청구하였습니다. 한울회 사건은 이미 정부로부터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았으므로 당연히 재심을 열고 무죄판결을 해달라고 우리는 사법부에 간절히 호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사법부는 2015년 재심에서 광주민주화 운동 관련 진술은 무죄로 반국가단체 관련부분은 유죄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저는 한울회 사건으로만 이미 여덟 차례 재판을 받았고 이제 재심을 열기 위한 재판을 아홉 번째 받고 있습니다. 저희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은 이미 여덟 차례 사법부의 재판을 통해서 한 차례 무죄취지의 파기환송과 일곱 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한번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을 때마다 큰 대못이 가슴에 박히는 듯 하였고 날카로운 칼이 목을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고등학생들을 감금하고 협박하여 그들의 선생님과 선배들을 빨갱이, 간첩으로 날조하는 증언을 강요한 경찰과 검찰, 사법부는 사회적으로나 인륜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끔찍하고 패륜적인 국가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처럼 파렴치하고 패륜적이며 잔혹한 국가폭력을 저지르고도 검찰과 사법부는 자신들의 죄악과 위선을 감추고 정당화하려고만 하였습니다.2차 진실화해위원회가 2021년 5월 활동을 시작하자 저희는 한울회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신청하였습니다. 2023년 12월 12일 진실화해위원회는 한울회 사건이 “불법구금, 가혹행위, 허위자백 강요 등 불법적인 조사를 받은 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은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론을 짓고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저희는 2024년 2월에 서울고등법원에 한울회 사건의 재심을 신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1년 반이 지나도록 재심을 허락하지 않다가 지난 9월 3일에 재심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심문 절차를 시작하였습니다. 검찰은 이미 2015년에 재심을 거친 사건이라는 이유로 재심에 반대하는 의견을 법원에 제시하였습니다. 2015년 재심 때는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을 받지 않은 사건이므로 반국가단체 유죄판결을 내리더니 진실화해위원회 진실 규명을 받으니까 이미 재심을 거친 사건이어서 재심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사법부와 검찰의 행태가 말할 수 없이 억울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얼마 전에 이재명 대통령께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재판과정에서 억울한 국민이 없도록 법무부에서 세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정성호 법무부장관께서도 매일 억울한 사건이 없도록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고 확인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한울회 사건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외면하고 버려진 사건인가요? 지난 40여년 동안 국가와 사법부에게 버려지고 외면당한 것처럼 이렇게 한울회 사건이 짓밟히고 잊혀져도 되는 것인가요? 민주공화국에서 국민주권 정부가 시작된 나라에서 한울회 사건처럼 억울하고 불의한 일이 은폐되고 숨겨져야 할 일인가요?
저희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은 지난 40여년 동안 속으로 앓아오던 아픔과 한맺힌 소리를 2022년 12월에 『한울회 사건의 진실』이란 책으로 펴내었습니다. 다행히 이 책은 문화관광부 ‘출판문화진흥원’의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되었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읽게 되었습니다. 동화작가로 알려진 박은자님은 20여년전부터 저와 한울회 사건으로 함께 옥고를 치른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총무인 김종생목사를 알고 지냈는데 이 책을 읽고 한울회 사건에 깊은 관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의 심정과 아픔에 깊은 공감과 교감 속에서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를 펴내었습니다. 이 책은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인 우리 자신들의 심정과 삶, 아픔과 슬픔, 믿음과 꿈을 우리 자신보다 더 진솔하고 아름답게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쉽고 간결하게 쓴 이 책을 읽으면 한울 모임 사람들의 믿음과 꿈, 생각과 뜻을 알 것이고 우리가 “마르크스 공산사회를 건설하고 확산하는” 반국가단체 구성원과는 다른 사람들인 것을 확인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판장님께서 재심을 열고 무죄판결을 내려주셔서 지난 44년 동안 저희의 몸과 맘을 옭아맨 사법부와 검찰의 족쇄에서 벗어나 명예를 되찾고 짓밟힌 권리를 회복하도록 길을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탄원합니다.
2025년 10월 13일 박재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