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학정기(伴鶴亭記)
부형(父兄)의 고을살이에 따라가 자제(子弟)들은 술ㆍ고기ㆍ음악ㆍ여자 등 유흥에 빠져들지 않으면, 부서(簿書 관청의 장부와 문서)와 약속(約束 법령에 의하여 단속하는 일) 등에 반드시 간여하며, 심한 경우에는 차꼬를 채우고 채찍과 몽둥이질하는 것으로 이목(耳目)을 즐기면서 세월을 보낸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말하기를 지방관이 된 사람은 세 가지를 버린다고 하는데, 첫째는 집을 버리고, 둘째는 동복(僮僕)을 버리고, 자제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하니, 매우 탄식할 일이다.
나는 예천(醴泉)에 도착하는 날로 관(館)ㆍ해(廨)ㆍ정(亭)ㆍ누(樓)의 제도를 살펴보고, 정각(政閣)의 동쪽에 폐허가 되어 버린 정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자 아래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어 사방으로 넓이가 수십 보나 되었는데, 모두 섬돌로 되어 있었다. 연못 주변에는 향기로운 온갖 화초가 많이 심어져 있고 둥그런 울타리로 둘려 있었는데, 조그만 문이 하나 있어 정각(政閣)으로 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정자 뒤에는 키 큰 대나무와 높이 솟은 나무들이 많았다. 모든 창마다 붉은 색과 푸른색으로 아름답게 칠해졌으며, 버려진 지가 오래되었다. 주위 사람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정자에는 귀신이 살아서 혹 병을 얻든지 그렇지 않으면 놀라고 두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폐허가 되었습니다.”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귀신이라는 것은 오로지 사람이 부르는 것이니, 내 마음에 귀신이 없으면 귀신이 어찌 스스로 올 것인가.” 하고, 그 다음날 나는 아버지를 뵙고 말씀드리기를, “반학정(伴鶴亭)은 그윽하고 조용하여 독서를 하고 시를 지을 만한 곳입니다. 정각과의 거리도 좀 떨어져 있고 빙 둘러 담으로 막혀 있어서 송옥(訟獄)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참으로 자제(子弟)가 처할 만한 곳입니다. 오늘 닦아내고 쓸어낸 뒤에 침상과 이불을 옮기려고 합니다.”
하니, 아버지께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셨다.
내가 이 정자에 살게 되면서 글을 짓다가 여가가 많으면 책을 보는 데에만 뜻을 두었더니, 사람들이 말하는 ‘귀신이 대들보에서 읊조리고 계단을 걸어다닌다.’는 것은 고요할 정도로 다시는 소리나 흔적이 없었다. 늘 밝은 달이 물에 비쳐 그윽한 달빛이 문안으로 들어오고 나무 그림자가 너울너울 움직이며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드리고 남는 시간은 이리저리 마음 내키는 대로 거닐고 경적(經籍)을 애써 읽는다. 저포(樗蒲 놀이의 일종)나 장기, 그리고 노래하는 아이와 춤추는 계집과 같이 사람의 마음과 눈을 어지럽힐 수 있는 것은 소문(小門)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렇게 되면 부모님께 근심을 끼쳐 드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내 마음속에 즐거운 것을 써서 반학정기(伴鶴亭記)로 삼는다.
伴鶴亭記
子弟之從父兄之官者。不沈酣於酒肉聲色之場。必干預於簿書約束之間。甚者以鞭苔桁楊。爲耳目之玩。而消遣日月。故世稱作宰有三棄。棄屋盧棄僮僕。而子弟居其一焉。可勝歎哉。余至醴泉之日。則巡視館廨亭樓之制。於政閣之東。得一廢亭。亭下有小池。方數十步。皆石砌。池邊多植花卉羣芳。環以曲墻。唯有小門一。以抵政閣。亭後多脩竹高林。房櫳牕牖。皆施丹碧。顧廢棄有年。詢其故。曰亭有鬼。處之或得疾。不然驚怖失寐。所以廢也。余曰鬼者唯人所召。苟吾心無鬼。鬼安得自來哉。厥明日。謁家君而告之曰。伴鶴亭幽深靜僻。可以讀書。可以賦詩。距政閣有間。障以繚垣。不聞訟獄之聲。眞可以處子弟也。今日將修掃而移牀褥矣。家君曰唯汝之所欲。余旣處是亭。筆墨多暇。佔畢唯意。而所謂嘯於梁步於階者。寂然不復有聲跡。每明月照水。幽光入戶。樹影婆娑。花香觸鼻。定省之餘。得消搖自適。劬心經籍。凡摴蒱象棋歌兒舞女。有可以迷人心目者。令不得入小門一步。此可以不貽親以憂也。遂書余心之所樂。以爲伴鶴亭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