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에 오염된 인생들을 생각한다
- 허윤욱(여천교회)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사단의 거짓말에 마음이 미혹된 하와는 선악과를 주목하여 보았다. 필자는 만약 이 때에 하와의 눈이 남편에게나 하나님께 먼저 주목되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무엇을 주목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달라지고 그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사람 호오드온이 쓴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에 주인공이 늘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성인을 기다리고 사모하다가 자신이 그와 같은 큰 인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지 아니한가?
사람의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만들고 삶을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T.V를 통해서 온갖 폭력과 죄악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크는 청소년들 속에서 선을 기대한다는 것은 씨앗을 심지도 않고 거두려는 어리석음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T.V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자기를 낳아 준 부모에게 사정없이 소리지르며 대들고 말대답 하면서 달려드는 모습을 수없이 방영하지 아니한가? 또 부모의 자세는 어떠한가? 소공녀에 나오는 주인의 아씨를 모시는 늙은 하녀처럼 딸 아이에게 굽신 굽신하며 큰 소리치는 딸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청소년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뉴스시간이나 기타 프로에 수많은 범죄 행위가 발표되면서 우리 사회도 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자식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고 그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룬다. 병든 부모는 병든 자식들을 만들고 그들은 병든 사회를 만든다.
하와는 사단에 미혹된 눈으로 선악과를 바라 보면서 죄악에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갔다.
하와의 눈에 비친 선악과는 첫째 먹음직하게 보였다.
그의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가장 맛있는 과일은 선악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 중 가장 맛있는 과일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먹음직한 과일을 왜 못 먹게 했을까? 과일을 먹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와는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아니하였겠는가?
오늘날도 죄악에 오염된 인생들이 가장 많이 유혹받는 도구가 물질 문제요 먹는 문제다.
성경에는 한 그릇 팥죽에 장자의 명분을 팔고 통곡을 하였던 에서가 있고, 신약에는 예수를 판 가룟 유다가 있지 아니한가!
예수 믿어야 한다고 전도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바빠서 믿을 새가 없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먹는 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보면 신앙을 거부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본문에서 선악과는 "먹음직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인생들은 먹음직한 식욕에 가득차 있다. 많은 시간을 먹고 마시는데 소비하고 있다. 사단은 인간의 영혼을 현혹시키기 위해 먹음직한 무기를 수없이 만들어 내었다. 각종 이름으로 만들어진 요리와 각종 술, 담배, 마약 등으로 인간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어서 결국 육신의 욕심만 채우다가 그의 영혼이 파리하게 말라서 지옥에 떨어질 때까지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것이다.
둘째 선악과는 보암직한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사단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켜서 타락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즐거운 것들을 만들어서 인간의 시간과 정열과 물질을 다 빼앗아 간다. T.V는 밥 먹는 시간도 눈을 떼지 못하도록 붙잡아매는 즐거운 프로로 유혹하고, 눈 앞에 나타난 많은 좋은 것들이 인간의 삶을 다 빼앗아 가는 것이다. 보암직한 여인을 찾아서 몇 번이나 이혼과 재혼을 거듭하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다.
아무개가 골프로 이름을 날리니 목표도 가치관도 없는 불쌍한 인생들이 골프채 사기에 여념이 없이 골프채가 다 매진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유명인사가 입는 복장이나 쓰는 모자 가 "보암직하여 사람들은 무조건 흉내를 낸다.
유명한 가수들이 미친듯이 뛰고 뒹굴면 뜻도 모르고 겉만 보암직하여 열광한다. 그러나 그들의 뒤안 길에는 많은 슬픔과 비극과 때로는 숨겨진 죄악이 가득한 것을 아는 자는 많은 것 같지 않다.
사람이 보는 것 같으나 보지 못하며 아는 것 같으나 알지 못하는 소경이기에 우선 "보암직"한 것만 보고 따라가는 불쌍한 모습이 수없이 연출되는 것이다. 방황하는 그 죄인들의 결국은 멸망의 지옥인 것이다.
세째로 하와의 눈에 비친 선악과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이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지혜를 추구하였다. 그들은 지혜를 얻기 위하여 수많은 대가를 지불하였다. 그 결과 역사가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많은 지혜를 얻었고 지혜로 말미암아 상당한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인간의 지혜는 아무리 발전하여도 인간을 피곤케 하고 인간을 망치게 하고 인간의 어리석음만 증명하고 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상을 100년 전이나 200년 전 사람이 본다면 까무러칠 수밖에 없는 위대한 발전을 이루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지혜로 인간에게 돌아오는 행복은 무엇인가? 수많은 과학자들이 학술적으로 볼 때 지구는 중상을 입었으며 회생불가능하여 점점 파멸의 길로 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지 아니한가? 또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있지 아니한가!
엊그제 T.V 프로에 엘리뇨를 분석하는 해설자가 지구는 미쳐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범상한 일이 아니다. 하와의 눈에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은 사단의 속임수였으며 그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다. 종말의 징조에 대하여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월성신에 징조가 있겠고……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눅 21:25,26) 하셨다. 해와 달과 별의 역학관계가 흔들리므로 오늘의 재난이 임하고 있다고 학자들은 고백하고 있지 아니한가!
인간의 지혜로 아무리 연구하여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를 수 없음이 분명하다. 서울 중부지역에 온 비가 우리가 어 렸을 때부터 보아온 수해와 전혀 다르지 아니한가! 이것은 통상적 수해가 아니라 해와 달과 별의(일월성신) 역학관계가 흔들리므로 오는 말세적 재앙이 분명하다.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지구의 멸망의 날을 정하여 놓았다고 말씀하시고 있다(벧후 3:6-7).
인간이 사는 길은 정해져 있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길이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것들을 좇아간 인생들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지 아니한가!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우리의 관점으로 좋은 것들을 다 버리고 회개 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죄로 오염된 인간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아닌가?
모두에게 평강이 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