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시작점을 중요시하는 사람
이 글은 내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쓴 글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막 올라갔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이모네 집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지는 바람에 이모의 딸 인영(5살)이와 영우(6살)가 몇달간 우리집에서 나와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 몇 주는 같이 놀고 먹고 자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서로 싸우는 날이 늘어났고 이모와 전화를 하는 날에 인영이는 이모에게 울면서 하소연을 하였고 이모는 그때마다 나에게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아달라고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인영이와 이모에게 미안해서 인영이와 영우에게 숨겨두었던 간식들을 주고는 했다. 그렇게 4달이 지나갈때쯤 이모네 집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져서 일주일에 두 번씩은 하던 전화 시간은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 평균 이주에 한 번으로 줄었고 아예 못하는 달도 생겼다. 인영이와 영우는 이모가 많이 보고 싶은 마음에 몇 날 며칠을 울면서 지낸 것 같다. 그때의 나는 겨우 8살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나이였지만 인영이와 영우는 나보다도 더 어린 5살과 6살이었다. 아직 혼자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이들인데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지금 19살을 먹은 나도 부모님을 한 달만 못 봐도 보고 싶은데 그 어린이들은 4~5개월 동안 목소리만 듣고 일주일에 한 번씩 듣던 목소리도 줄었는데,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아이들이 받은 고통과 외로움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모네 집 형편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져서 우리 부모님과 영우네 부모님이 얘기를 해서 일주일간 이모가 있는 인천에서 지내기로 했다.
이모네 집에 도착하고 이모와 인영, 영우가 거의 반년만에 다시 만났다. 이모와 인영, 영우는 만나자마자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고, 이모는 몇 분 동안이나 눈물을 흘리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신 기억이 난다. 이모와 인영이, 영우는 거의 2시간 동안이나 꼭 붙어있었고, 그 사이 우리가족은 짐을 풀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다 같이 먹을 것을 사러 마트로 향했다. 나와 인영이, 영우는 신나서 먹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골랐고 계산할 시간이 왔다. 누가 대한민국 어른 아니랄까봐 서로 계산하려고 하셨고, 결국에는 우리 엄마가 계산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장난감 코너에서 레고를 사달라며 갖고 오니까 이모가 그것만큼은 자기가 사준다면서 얼마냐고 물었다. 그 레고는 당시 돈으로 5만원, 2012년도 기준 최저임금은 4580원이었다. 무려 11시간이나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나의 부모님은 안 된다고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지만 이모는 지금까지 내가 고생이 많았다면서 사주셨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비싼 장난감인데 많이 힘드셨을 텐데 사주신 이모에게 너무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나는 신난 마음으로 이모네 집에 도착하고 나서 사고가 터졌다.
나는 몇 시간 동안이나 레고만 만들었다. 레고를 완성시키고 나니 역시나 멋있었고 인영이와 영우에게 자랑을 했는데 신난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을까, 아니면 자기네 엄마가 힘들게 일해서 받은 돈인데 내 장난감을 사달라고 해서 이모의 고된 11시간이 허무하게 사라져서 였을까, 인영이와 영우는 내가 힘들게 만든 레고를 부셨고, 그에 화가 난 나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 인영이의 머리와 영우의 팔을 때려버리고 말았다. 영우는 훌쩍거리고 인영이는 눈물을 쏟아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어른들은 단숨에 달려오셨고 왜 우냐고 묻자 내가 때렸다고 영우가 말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가 때렸다는 말을 듣자 나에게 왜 때렸냐며 화를 내셨지만 이모는 다 이유가 있었겠지 라면서 나에게 이유를 물으셨다. 나는 혼날까봐 무서운 마음에 눈물이 흘러나왔고 훌쩍거리며 ‘인영이와 영우가 제가 힘들게 만든 레고를 부셨어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모는 나를 혼내기 보다는 인영이와 영우에게 내가 힘들게 만든 레고를 왜 부셨냐면서 혼내셨고 인영이와 영우가 레고를 부셔서 미안하다면서 먼저 나에게 사과를 하고 나도 때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잘 마무리되었다. 여기서 난 의문이 생겼는데 이모는 왜 나를 혼내지 않으셨을까, 자신의 딸을 때린 사람인데 왜 화를 내지 않으셨을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딸이 맞고 우는 모습을 본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화를 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나의 가족이 당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모는 나보다 딸들을 혼내셨을까 이유는 몇 가지 추정해 보았다.
1. 평소에도 인영이와 영우가 사고를 많이 쳤다.
2. 힘든 시기인데 자신을 도와준 동생의 아들을 혼낼 수 없었다.
3. 원인 제공한 딸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중에 나는 2번과 3번이 나보다 딸들을 더 혼내신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단 1번은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사고를 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 때문에 아닐 것 같다. 2번은 나름 그럴듯한데 자신을 도와준 동생의 아들을 혼내기는 좀 힘들었을 것이다. 3번은 원인 제공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그래서 나는 2번과 3번 둘 다 맞는다고 생각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모는 결과만 보고 따지고 화내고하는 것보다는 시발점과 경위는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지금 이모의 모습도 결과만 쫓아가는 사람이 아니시고 어떤 일이든 시작과 과정을 중요시 생각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천천히 올라가 그 단계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다음 단계를 준비하여 다음 단계를 향해 가고 있으시며, 자신이 먼저 잘못을 했다면 먼저 사과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사과를 받으려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멋있다. 나는 그런 이모의 모습을 중학생 이후로는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겉으로 살짝만 보아도 멋있는 어른이라 생각하고 그런 이모를 닮고 싶다. 결과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시작과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겠다는 마음과 열정이 없다면 과정이 없을 것이고 과정이 없는 결과는 매우 처참할 것이다. 작고 시시한 일이더라도 시작과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간다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높이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괜히 욕심내서 두 단계, 세 단계씩 오르려고 하면 언젠가는 미끄러질 것이다. 그렇기에 난 이모를 따라 한 단계 한 단계를 자세히 공략하여 다음 단계를 대비하여 안전하게 클리어하여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뤄내고 싶다. 물론 나는 이제 겨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학생이고 크게 성공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10년, 20년, 30년이 지나서 이 글을 다시 볼 때쯤이면 지금보다 더 낫고 높은 위치에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받은 것들을 배로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마지막으로 나중에 커서 이 글을 볼 나에게 짧은 편지를 남기고 싶다.
20대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뚜렷한 목표가 없고 관심사, 꿈도 없는 사람이지만 성인이 된 너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보고 배우며 인생을 알게 되고 힘들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믿고, 나는 네가 그 일을 꼭 했으면 해.
인생의 최종장을 앞둔 나에게
현재 나는 평범한 집에서 자란 평범한 학생이지만 10년, 20년, 30년이 지나서는 남이 보고 쉽게 말할 수 없고 닮고 싶어 하는 평범하지 않은 거대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모든 단계를 이겨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겠지 때로는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고 더 올라가기 힘들어 무리라고 한계라고 느끼겠지만 가끔은 무리도 하며 노력해서 네가 갖고 싶은 업적, 타이틀을 모두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 미래의 너는 꼭 받은 것은 배로 돌려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언도 해주며 우리 가족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 동생이 되어주길 바랄게
첫댓글 눈물이 주르륵
울지 마 넓적부리 황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