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생사
"산 자는 모두 고통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이데아를 깨달을 수 있다. 죽음 이후에는 우리의 감각기관이 사라져 죽음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현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윤리 공부를 하며 수없이 보던 문장들이다. 동서양을 불만하고 뛰어난 철학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이유 또한 납득 가능했다. 그리고 석가의 말씀 중에는 인간은 생로병사의 윤회에 갇혀 있으며 인생은 고통이라 한다. 그리고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라고 말한다. 소유에 대한 집착, 명예에 대한 집착이 삶을 고통으로 만들며 삶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하였다. 집착을 버려 고통을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라는 석가의 사성제를 보았을 때는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는 않았고 그냥 그런 생각이었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5월 16일 아침 그런 내 생각은 전환되었다.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난 나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꿈의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첫 장면은 내가 갑상선기능항진증 약을 잘 챙겨 먹지 않아서 며칠 내에 죽을 것이며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약 좀 안 먹었다고 죽는 게 말이나 되냐고 생각하고 믿지도 않겠지만 꿈속에 나는 내가 죽는다는 것이 너무 슬퍼서 그런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가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서럽게 아주 서럽게 울고 있었다. 눈물이 멎은 나는 너무 울어서 목도 말랐고 얼굴도 굉장히 부어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장면은 내가 어떤 할머니가 사시는 집에 물건들을 빼고 있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그 할머니는 나와 같은 시한부였고 지병을 치료하던 중 빚이 생겨 빨간 딱지가 붙었다고 했다. 내가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 도중 할머니가 나에게로 와 자기가 곧 죽는다며 이번 한 번만 눈 감아달라는 식으로 애원하였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정신이라도 들었는지 죄송하다고 나도 곧 죽을 거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오열했다. 그렇게 세 번째 장면이 되고 그 장소는 학교였다. 눈물을 참아가며 일상생활을 했다.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이동하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 산책 조금 하다가 떠들며 쉬는 일상이었다. 내가 죽는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행동은 같았지만 태도가 달랐다. 어쩌면 마지막 수업, 어쩌면 마지막 점심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이 모든 활동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은 다시 또 나를 울게 만들었다. 중학교 졸업을 하던 날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지배되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학교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 때문에 울다가 잠에 들어버렸다. 잠에서 깨어보니 외할머니 댁에 들릴 때마다 주로 내가 머물던 방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친구 네 명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말했다. 긴장했지만 친구들은 모두 나를 위해 울어주었다. 후회된, 좋았던, 재밌었던 일들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때 그렇게 멍청하게 있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도 그때 좋았었지, 그때 그거 참 재미있었어라고 말하며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밤은 깊었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있어서 방심이라도 했던 걸까. 다시금 죽음의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나는 죽음을 경험할 동안 고통을 느낄지 굉장히 두려워하였고 지금 자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두려움에 정신을 잃어갈 때 즈음 잠에서 깨어났고 베개는 눈물로 젖어있었다. 자는 동안 고통이라도 느낀 것처럼 말이다. 아침 점호를 갔다 오고 침대에 다시 눕는 동안 꿈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호접몽같이 너무 생생했다.
꿈을 꾸기 전 나는 죽음에 대해 아무 생각 없었다. 꿈속에서 내가 울던 까닭은 아무리 생각해도 삶에 대한 집착 단 하나이다. 죽음으로 달려가 보는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게 되었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나에게 현세가 소중하고 잃기 싫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을 경험하면서 나의 삶은 나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의 능동성에 한계를 느끼게 됐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한계상황을 마주하였을 때 대체적으로 도피하려 하거나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자기 존재가 상실되는 길로 빠져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부분의 사람은 신과 같은 절대자를 믿게 될 수도 또 다른 사람은 한계상황을 직시하여 하나뿐이며 한 번뿐인 자기 존재를 자각하는 단계를 거쳐 실존에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미래는 단 하나 죽음뿐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이 찰나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