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상 변호사가 《월간천관》에 '이청준문학관 건립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故 이청준 작가의 인물과 문학세계를 심층적 소개 중이다.
2022년 8월호를 시작으로 9월호, 10월호, 11월호, 12월호, 2023년 1월호, 2월호, 3월, 4월호, 5월호, 6월호, 7월호, (8월호 쉼), 9월호, 10월호, 11월 12월호, 2024년 1월호, 2월호, 3월호, 4월호, 5월 이번이 스물한 번째 연재기고이다. (편집자 주)
이청준과 동화 이야기
-인청준문학관을 위하여(21)
1. 소설, 산문, 동화
이청준이 쓴 어떤 글들은 '소설·산문(에세이)·동화'의 장르적 경계가 분명치 아니하다. 이른바 동화 장르의 형식적 기준에 맞춰 속단하기가 곤란하다는 것. 쉽게는 독자층 연령대를 기준으로 '아동동화'와 '소설'로 이분할 수 있다. 나아가 문체의 완성도와 어휘 수준, 주제의식, 이야기 구조의 복잡성 등을 통하여 작가적 개성이 두드러지면 '소설'로 보되, 단순한 계몽의도와 쉬운 어휘, 내용의 간결성, 보편적 교훈을 강조하면 <'동화'로 볼 수의 가출, 1993>이라는 제호의 '산문집'의 제3부에 여러 동화들을 수록하였다. 최초 '창작동화'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1995〉로 알려져 있다. 한편 '전래동화' 채집형식으로 <한국전래동화집 1·2, 1997>를 '이청준 엮음' 형식으로 펴내기도 하였다.
2. '이청준 동화'의 소재와 주제
그 소재를 보면, '고향 추억, 고향 풍속과 산하, 마을공동체 역사, 유년기 추억과 초등학교 시절, 사제관계, 가족, 웃음과 죽음, 친구들, 8·15 해방기와 6·25 체험담, 간척사업' 등이다. 그 주제를 보면, 전래동화적 교훈담으로서 권선징악 등을 언급하거나, 고향의 전통풍속과 놀이전승에 관한 회상, 유년시절의 즐거움과 유머를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마을공동체 구성원의 명암과 갈등에 관한 '화해와 용서'를 제시하면서, 인간의 주체성과 굴종성의 차이도 짚어낸다. 말년 노인의 소망으로 세대계승을 바라는 '이야기꾼' 모습도 보여 준다. 예컨대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終生記)> 관점을 유념할 만하다. 그리하여 이청준은 고달팠던 유년시절의 고향산하와 가족에 대한 추억, 죽음과 이별의 회한, 세상잡사에 대해 노인의 지혜로 전해주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자임한다. 이청준은 '동화 형식'에 의지하여 개인체험에 대응하는, 개와 꽃나무, 주변사람, 특별한 형제애에 관한 애틋한 기억을 정리했다. 대표사례로 <동백꽃 누님, 2004>, <봄꽃 마중, 2003>이 있다. 어린 딸과 노모를 위한, 가족사랑 동화로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1995>, <사랑의 손가락, 2006) 등 이 있다. 반면에 어떤 동화 안에서 해피엔딩으로 마감되는 일이더라도 실제현실에서는 그 사정이 달랐던 경우도 있을 것. 기억현실에서의 '악한'을 동화현실에서 '선량한 자'로 탈바꿈 시켜 놓았을 지도 모른다.
3. 이청준의 '창작동화'
'전래동화, 설화' 등의 재구성 형식은 제외한다. 초기에 <별을 기르는 아이, 1976> <사랑의 목걸 이, 1976> <선생님의 밥그릇, 1991> <산문집/광대 의 가출, 1993〉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1995> 등이 있었다. 그 말년에 쓴 <인문주의자 무소작씨 종생기, 2000>는 '중편소설, 우화(寓話)소설' 겸 '창작동화, 성인동화'라 칭할 수 있다. 주인공 무소작은 그 <종생기 1장>에 나온 '씨앗의 꿈'을 품고서 바깥세상 대처(大處)로 나갔다가 드디어는 인문주의자의 모습으로 고향 참나무골로 되돌아와 '이야기꾼'이 된다. 그런 고향의 가난한 땅에 역시 '씨앗 하나'로 떨어진 운명의 소년이 삼백리 떨어진 도시의 상업학교로 진학하는 내용의 성장소설, <들꽃 씨앗 하나, 2002>가 있다. 그 무소작씨와 그 소년에게서 소설가 이청준을 연상함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동화집/ 숭어도둑, 2003 수록작품 : 숭어도둑, 봄꽃마중, 이야기서리꾼, 일기장 속의 그날>에는 유년시절과 형제애와 '개막이 어로작업'에 관한 추억과 진목리 풍경 등이 들어 있다. <동백꽃 누님, 2004>은 6·25와 가난 질병 등으로 가족이 해체되던 그 어려운 시절에 남동생을 키우다시피 돌봐준 '정례 누님의 등짝 냄새'가 나오는 이야기이다. <동화집 숭어도둑>에 실린 '봄꽃 마중'이 <동백꽃 누님>으로 발전되었다. <사랑의 손가락, 2006)은 부부 사이에, 또한 모녀 사이에 손가락을 매개로 삼은 가족 사랑과 희생의 모습을 그렸다.
4. 판소리 동화(1997)
판소리 동화는 이청준 특유의 문학적 성과에 해당할 수 있겠다. 1976~1981년에 걸쳐 발표되었던 <남도사람(서편제) 연작>의 작업에 힘을 입었을 수 있다. '흥부전, 흥부가'는 <놀부는 선생이 많다>로, '별주부전, 수궁가'는 <토끼야, 용궁에 벼슬 가자> 로, '심청전, 심청가'는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로, '춘향전, 춘향가'는 <춘향이를 누가 말려>로 변 형되었다. 또한 '옹고집전, 옹고집타령'은 <옹고집 이 기가 막혀>로 '판소리 적벽가'를 대신하여 등장하였다. 그 다섯 작품 판본원문에 있었던, 고루하고 비현실적인 한자 사자성어를 쉬운 한글로 고쳤으며, 판소리 판본에 매어있던 봉건적 주제의식도 부분적으로 수정되고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 뒤집어 본 '풍자동화'라 말할 수도 있다.
5. 이청준의 '성인용 동화'
그런데 이청준의 어떤 글들은 '성인용 동화'로 여겨질 때가 꽤 있다. 이청준은 '알레고리 기법'을 통하여 중의(重義)적 주제를 동시에 전달하는 방법에 정통한 만큼, 그는 '아동세계'와 '성인세계'에 두루 통용될 수 있되, 특히 '시원(始原)과 초심(初心)을 찾는 성인의 동심(童心)'을 겨냥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 같다. 이에 지나간 과거에 대한 회한(悔恨)을 감내하면서 그 종생(終生)을 준비하는 '성인(노인)의 동심'을 자극하고 설득하는 내용의 '성인용 동화'를 제시하였던 것 같다. 그리하여 '아동동화' 쪽의 '공상성, 순진성, 초자연성, 교훈성' 특성을 '성인동화' 쪽으로 끌어오고 있다. 필자 관점에서 이른바 '성인동화'를 일별하면, <마지막 선물, 1975> <얼굴 없는 방문객, 1976) <나들이 하는 그림, 1985> <흰철쭉, 1985> <심지연, 1987> <종이새 비행, 1989〉 〈인문주의자 무소작씨 종생기, 2000> <들꽃씨앗 하나, 2002> <꽃 지고 강물 흘러, 2003> <천년의 돛배, 2006〉 〈조물주의 그림, 2007> <이상한 선물, 2007>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단편소설'이면서 또한 '성인용 동화'에 해당하는 것들이겠다. 한편 김윤식 교수는 고령화 시대에 있어 65세 무렵을 넘어선 노년 소설가가 노인층을 상대로 쓴 소설을 지목하여 이른바 '노인 성문학'이라 칭하였는데, 소설가 연령층의 특성이 아닌, 수용자 성인의 동심과 초심에 호소하는 소설의 특성을 지목한다면 '노인성 문학'은 곧 '성인용 동화'와 일맥상통할 수 있을 것이다.
6. 다시 <아기장수 설화>
'소설, 성인동화, 설화, 신화' 형식을 불문하고 이청준 문학관과 세계관의 결정적 고리 하나에 <아기장수의 꿈, 1993>이 있다.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아기장수의 민담 설화'를 재구성한 것으로, 이청준 특유의 자유관과 민중의식에 어울리는 신이담(神異談)이다. <산문집, 광대의 가출, 1993> <동화집. 사랑의 손가락, 2006>에 수록되었으며, <아기 장수의 꿈· 그림 동화, 2016>로도 출간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이청준은 내내 국가 지상주의를 배척하고 개별적 인격의 존엄성을 중시하였는데, 이청준의 주요 작품들 배경에는 이른바 '아기 장수의 설화'가 직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즉 국가(왕권)의 횡포를 두려워하던 부모의 오판으로 인하여 그 부모에게 날개를 잘리며 죽어간 아기장수와 용마(龍馬)의 좌절이 깔려있다. 예컨대, <당신들 천국, 비화밀교, 조율사, 춤추는 사제, 목 포행, 키작은 자유인, 용소고, 흰옷, 신화를 삼킨 섬> 등에는 좌절하면서 다시 다짐하는, 또는 다짐하고서 좌절하다가 다시 일어서려는 '이청준의 꿈'이, '아기장수의 꿈'이 반복되고 있다. 이청준의 문학 현장에는 늘 '아기장수 신화'가 그 지척지 간에 있었다. 때론 '사이비 아기장수'도 있었는데. 이제 노인의 초심과 동심으로 분별할 수 있을 일.
박형상 변호사(前서울중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