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록(半槎錄) 신축년(1601, 선조34) 11월부터 임인년(1602, 선조35) 3월까지이다.
설날〔元日〕
외로이 산성에 몸져누운 병든 몸이 孤臥山城病裏身 고와산성병리신
객창에서 초화송1) 짓는 날을 만났구나 旅窓還遇頌椒辰 여창환우송초신
등잔 불빛은 옛 풍속 따라 남은 밤을 비추었고2) 香燈舊俗消殘夜 향등구속소잔야
매화 버들은 새로 단장하여 상춘에 아양 떨도다 梅柳新粧媚上春 매유신장미상춘
마흔 살의 나이가 막 차는 날이요 3) 四十年光初滿日 사십년광초만일
천 리 먼 타향에서 못 돌아간 길손일세 一千里路未歸人 일천리로미귀인
꿈속의 넋은 천애를 멀다 하지 않나니 夢魂不道天涯遠 몽혼부도천애원
맑은 새벽 변함없이 대궐에 입조하누나4) 淸曉依然入紫宸 청효위연입자신
반사록(半槎錄) : 1601년(선조34) 겨울에 명(明)나라에서 황태자(皇太子)의 책봉(冊封)을 알리는 조서(詔書)를 반포하기 위해 한림원 시강(翰林院侍講) 고천준(顧天峻)과 행인사 행인(行人司行人) 최정건(崔廷健) 두 조사(詔使)를 우리나라에 파견하였는데, 이에 우리 조정에서는 접반사(接伴使)를 차출하여 의주(義州)로 보내 명나라 조사를 영접하도록 하였다.
이때 지봉이 도사 영위사(都司迎慰使)에 차출되어 조사를 영접하기 위해 의주로 향해 가다가 평양에 이르러 말에서 떨어져 크게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중도에서 체차되어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왕래하는 도중에 지은 시들을 모아 시집 한 권을 만들고, 중도에서 낙상하여 접반하는 사신의 임무를 마치지 못하였으므로 ‘반사록’이라 제목을 붙였다. 당시 이정귀(李廷龜)를 원접사(遠接使)로, 이호민(李好閔)을 의주 영위사(義州迎慰使)로, 박동열(朴東說)ㆍ이안눌(李安訥)ㆍ홍서봉(洪瑞鳳)을 종사관(從事官)으로, 김현성(金玄成)ㆍ차천로(車天輅)ㆍ권필(權韠)을 제술관(製述官)으로 삼았다. 《芝峯集 卷11 半槎錄 跋》 《東州集 卷6 先考……行錄》 《宣祖修正實錄 34年 10月 1日》
[주1] 초화송(椒花頌) 짓는 날 : 원일(元日), 즉 음력 정월 초하루를 이른다. ‘초화송’은 옛날에 신년(新年) 정월 초하루가 되면 산초로 빚은 초주(椒酒)를 가장(家長)에게 올려 헌수(獻壽)하던 풍속에서 유래한 말이다. 진(晉)나라 때 유진(劉臻)의 처(妻) 진씨(陳氏)가 글을 잘하여 일찍이 신년 정월 초하룻날 〈초화송〉을 지어 조정에 바친 고사가 있는데, 전하여 신년 축사(新年祝詞)를 의미한다. 참고로 〈초화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이 한 바퀴 돌아, 정월 초하루가 되었도다. 봄날의 광채가 찬란하며, 맑은 경물이 새로워라. 빼어나게 아름다운 신령스러운 꽃, 고이 따다가 조정에 바치옵니다. 성상께서 이 꽃에 조응하여, 만년토록 천수를 누리소서.[旋穹周廻, 三朝肇建. 靑陽散輝, 澄景載煥. 標美靈葩, 爰採爰獻. 聖容映之, 永壽於萬.]” 《晉書 卷96 列女列傳 劉臻妻陳氏》
[주2] 등잔 …… 비추었고 : ‘옛 풍속’은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집안 구석구석에 등불을 밝히고 밤을 새며 잠을 자지 않고 새해 정월 초하루 아침이 밝아 오는 것을 기다려 맞는 풍속, 즉 수세(守歲)를 이른다. 민간에서는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여기서는 지봉이 섣달 그믐날 밤에 수세하느라 등잔불을 밤새도록 켜 놓은 채 잠을 자지 않고 원일의 아침을 맞이한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3] 마흔 …… 날이요 : 지봉이 이 임인년(1602, 선조35) 원일을 맞이하여 40세가 되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4] 꿈속의 …… 입조(入朝)하누나 : 원문의 ‘자신(紫宸)’은 당송(唐宋) 시대에 천자가 조정 백관과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던 정전(正殿) 이름으로, 전하여 임금이 사는 대궐을 가리킨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동지(冬至)〉에, “여장은 눈 온 뒤에 붉은 골짝에 임하고, 패옥은 아침 밝아 오자 자신전에 울려 퍼지누나.[杖藜雪後臨丹壑, 鳴玉朝來散紫宸.]”라고 하였다. 《全唐詩 卷231 冬至》 여기서는 지봉이 새해 정월 초하루를 맞이하여 몸은 비록 사행 길에 올라 천애에 있는 고을에 있지만, 꿈속의 넋이나마 예나 다름없이 임금이 계신 대궐로 날아가 입조하여 신년 인사를 드린다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