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 35대 경덕왕(景德王) 시절, 당시 재상 김대성(金大城)은 왕의 명을 받들어 토함산 아래에 불국사를 이룩할 새, 나라의 힘을 기울이고 천하의 명공(名工)을 모아들였는데, 그 명공 가운데는 멀리 당나라로부터 불러 내 온 젊은 석수 한 명이 있었다. 이 절의 중심으로 말하면 두 개의 석탑으로, 이 두 탑의 역사(役事)가 가장 거창하고 까다로웠던 것은 물론이다. 젊은 당나라 석수는 그 두 탑 중의 하나인 석가탑 (석가여래상주설법탑 釋迦如來常住設法塔) 을 맡아 짓기로 되었다. 예술의 감격에 뛰는 젊은 가슴의 피는, 수륙 수천리 고국에 남기어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도 잊어버리고, 오직 맡은 석가탑을 완성하기에 끓고 말았다. 침식도 잊고, 세월 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는 온 마음을 오직 이 역사(役事)에 바치었다.
덧없는 세월은 어느덧 몇 해가 흘러가고 흘러왔다. 수만 리 타국에 남편을 보내고 외로이 공규(空閨)(남편 없는 텅빈 방)를 지키던 그의 아내 아사녀(阿斯女)는 동으로 흐르는 구름에 안타까운 회포를 붙이다 못 하여 필경 남편을 찾아 신라로 건너오게 되었다. 머나먼 길에 피곤한 다리를 끌고 불국사 문 앞까지 찾아왔으나, 큰 공역(工役)을 마치기도 전이요, 더러운 여인의 몸으로 신성한 절 문 안에 들어서지 못한다 하여 차디찬 거절을 당하고 말았다. 절 문을 지키던 사람도 거절을 하기는 하였으되, 그 정상에 동정하였음이리라. 아사녀에게 이르기를, "여기서 얼마 아니 가면 큰 못이 있는데, 그 맑은 물속에는 시방 짓는 절의 그림자가 뚜렷이 비칠지니, 그대 남편이 맡아 짓는 석가탑의 그림자도 응당 거기 비치리라. 그림자를 보아 역사가 끝나거든 다시 찾아오라."하였다.
아사녀는 그 말대로 그 못가에 가서 전심전력으로 비치는 절 모양을 들여다보며 하루바삐, 아니 한시바삐 석가탑의 그림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었다. 달빛에 흐르는 구름 조각에도 그는 몇 번이나 석가탑의 그림자로 속았으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태, 지루하고도 조마조마한 찰나 찰나를 지내는 동안 절 모양이 뚜렷이 비치고, 다보탑이 비치고, 가고 오는 사람의 그림자도 비치건마는, 오직 자기 남편이 맡은 석가탑의 그림자는 찾으려야 찾을 길이 없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멀리멀리 찾아왔다는 소식을 뒤늦게야 들은 당나라 석수는, 밤을 낮에 이어 마침내 역사를 마치고 창황히(매우 급하게)못가로 뛰어왔건마는, 아내의 양자(樣姿)(모습, 자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일, 아무리 못 속을 들여다보아도 석가탑의 그림자는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 데 실망한 그의 아내는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그만 못 가운데에 몸을 던진 까닭이다. 그는 망연히 물속을 바라보며 몇 번이나 아내의 이름을 불렀으랴. 그러나 찰랑찰랑하는 물소리만 귓가를 스칠 뿐,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이슬이 내리는 새벽, 달빛 솟는 저녁에도 그는 못가를 돌고 또 돌며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며 찾았다. 오늘도 못가를 돌 때에 그는 문득 못 옆 물가에 사람의 그림자가 아련히 나타났다.
"아, 저기 있구나!"
하며 그는 이 그림자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벌린 그의 팔 안에 안긴 것은 아내가 아니요, 사람이 아니요, 사람만한 바위덩이다. 그는 바위를 잡은 찰나에 문득 제 눈앞에 나타난 아내의 모양을 길이길이 잊지 않으려고 그 바위를 새기기 시작하였다. 제 환상(幻想)에 떠오른 사랑하는 아내의 모양은 다시금 거룩한 부처님의 모양으로 변하였다. 그는 제 예술로 죽은 아내를 살리고 아울러 부처님에까지 천도(薦度)하려 한 것이다. 이 조각이 완성되면서 자기 역시 못 가운데에 몸을 던져 아내의 뒤를 따랐다.
불국사 남서방에 영지(影池)란 못이 있으니, 여기가 곧 아사녀와 당나라 석수가 빠져 죽은 데다. 내가 찾을 때엔 장마가 막 그친 뒤라 누런 물결이 산기슭의 소나무 가지에까지 넘실거리는데, 부처님을 새긴 천연의 돌은 지난날의 애화(哀話)를 다시금 일러 주는 듯, 그 새김의 선이 자못 섬세한 것은 부처님을 새기면서도 알뜰한 자기 아내의 환영이 머리를 지배한 탓인가?
<불국사 기행(현진건)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