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문예바다 신인상 수상 작가들 |
잠시 봄을 빌려왔습니다 외 1편
홍성남
자꾸만 좁아지는 골목은
흉몽일까요 길몽일까요
나무의 꼭대기로 오르는 애벌레는
멈추려는 건지 떨어지려는 건지
언제나 그 사이에서 뒤쪽으로 길어지는 그림자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해 줘요
오래 생각하면 모르던 것도 알게 될까요
내 손가락은 다섯 개씩 두 개
심장은 그 손가락 끝에서
두 뼘 먼 거리
눈을 감으면 슬픔의 위치를 알 수 있을까요
맞는 신발이 없어서
혼자 걸었어요
매일매일 꿈을 꿔요
같은 꿈속에서 같은 슬픔으로 걸었어요
친절한 사람은 모두 죽었지요
애벌레를 밟는 기분이었어요
한 발은 그늘에 잠겨 있는데
한 발은 빛을 따라가고 있었어요
수평선 쪽으로 달아나는 나비들
점점 흩어지고 있었어요
봄볕을 걷고 있었어요
잠시 쉬다 가는 계절을
한 점 가위로 오리고 있었어요
숲의 답신
혼자라는 말이 왜 이리 좋은지
큰 구두를 신고 바람의 뒤꿈치를 따라간다
ㅎ과 ㅗ는 혼자 ㄴ도 따로
ㅈ과 ㅏ도 혼자
돌아오지 않아도 좋을 밤의 산책
소나무를 지나면 또 소나무
밤을 걸어 밤
어딜 향하지 않아도 좋은 혼자
보폭을 줄이고 어제 시간이 멈춘 시계를 꺼낸다
새어 나온 불빛이 금속 위에 빛나고
다시 시간이 흐른다
바람이 혼자 다가와 어깨를 토닥인다
누가 누굴 이해하겠어요
가만히 혼자 있는 거라고
그냥 그렇게 두는 거라고
숲은 그냥 숲
숨 쉬는 걸 잊고
혼자 천천히 걸어요
느긋한 바람이 나무를 흔든다
바람이 새기는 말
새소리가 대신 속삭인다
숲은 숲대로 나는 나대로
숲의 말을 듣는다
― Note
봄 햇살이 환하게 퍼지면 어릴 적 볏짚이 널려 있는 마당이 생각난다. 햇볕은 따사롭고 가물가물 졸음이 쏟아지던 봄이었다. 그득하게 널려 있던 짚더미 위에서 아쉽게 졸기만 했던 봄. 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때론 콩으로 고추로 두루 번갈아 안아주었다. 제기차기 땅따먹기 여유로웠던 마당은 가슴 한쪽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나에게 쉼터이자 사색의 공간이다. 그 마당에는 은은한 잔물결도 한파가 지나가는 폭풍우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안아주는 마당의 품이라서 좋았다.
홍성남 | 2021년 『문예바다』 신인상 시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