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에서 값비싼 뷔페 같은 성찬을 떠올립니다. 우리말로 '만찬'이란 말이 그런 뉘앙스를 갖게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의 유명한 그림 <최후의 만찬>도 그러한 뉘앙스를 갖습니다.
하지만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음식은 풍성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박한 음식들로 차려져 있습니다. 다만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설정한 공간 구조와 식탁의 배치를 보면 매우 의례적입니다.
날카로운 선과 정형화된 공간, 질서 있는 식탁 배치, 그리고 제자들의 정결한 복장을 보면 만찬 자리가 엄숙한 종교적 의례를 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설정됐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동시대에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던 야코포 바사노 Jacopo Bassano는 전혀 다른 톤으로 같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만찬 자리는 밝 은 빛이 없는 협소한 공간입니다. 빛과 어둠이 대조를 이루는 좁고 침 침한 방에서 지금 막 밥과 술을 먹고 나른한 모습으로 흐트러진 모습 입니다. 마치 술 취한 자들의 주막집 분위기를 연상시킵니다. 방중과 나태함, 버릇없음, 노동자의 근육질이 식탁 주위에 날것으로 드러나 있 습니다. 식탁 아래로는 제자들의 맨발이 방만하게 드러나 있으며 강아 지조차 나른한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격식적인 만찬이야말로 예수님이 즐기던 자유와 방종의 식탁이며 기쁨의 정취였습니다.
다만, 바사노는 예수님의 시선을 명료하게 정면을 응시하게 함으로써 그 자 유와 방종의 기쁨이 방탕으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습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보다 바사노의 <최후의 만찬>이 훨씬 성경에 가까운 그림입니다. 다빈치는 예수님을 초월적 종교지도자로 보 았다면 바사노는 예수님을 기쁨을 나누는 친밀하고 신실한 타자로 보 았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을 종교적 도그마로 본 것이 아니라 삶의 기 쁨이며 치유와 회복의 교제로 본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하는 식탁은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 식탁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서로 음식을 나누는 애찬愛餐은 우리가 일상에서 나누는 식탁과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