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의 추억
강 동 구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착한 어린이가 아니었나 보다.
착한 어린이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정직하며 거짓말하지 않고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 그런 어린이가 착한 어린이일 텐데 이 가운데 한가지 만이라도 해당하지 않으면 착한 어린이에 속하지 않는다. 아홉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잘못하면 여지없이 착한 어린이의 반열에서 탈락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대체로 착한 어린이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평소에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성격이 온순하여 친구들을 괴롭히지 않고 천성이 부지런하여 부모님 일을 잘 도와드리는 효심이 많은 아이였으나 한 가지 나쁜 습성이 있었으니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갖고 말아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였다.
<색안경> 요즈음 말로는 선글라스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어떤 아이가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 색안경을 쓰고 학교에 왔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고 부러웠는지 너무나 갖고 싶었다. 부모님께 사달라고 하면 안 될 것이 자명하여 어떻게 하면 색안경을 살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묘안이 없다. 한 가지 방법은 엄마가 잠든 사이 엄마의 속바지 주머니에서 색안경을 살 만큼의 돈을 훔쳐내는 것이다.
나중에 발각되면 어떻게 대처할까. 뭐라고 변명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지도 않았지만 혹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다 할지라도 색안경을 갖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드디어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아버지가 갑자기 출타할 일이 생겨 엄마와 함께 형제들이 한방에서 잠을 자게 되어 때는 이때다 싶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졸음을 억지로 참고 엄마와 형제들이 깊이 잠들기를 바라고 있다가 나도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아뿔싸 그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거사를 시행하려고 때를 기다렸는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온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기다려 보기로 하였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세월은 나의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흘러가 버리니 색안경에 대한 나의 집착도 세월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얼마나 색안경이 갖고 싶었으면 어린 마음에 그런 대담하고 깜찍 발칙한 생각을 했을까?
중학생 시절 3학년 형들과 누나들이 소풍 가서 색안경을 쓰고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나도 3학년이 되면 색안경을 쓰고 사진을 찍어보리라 마음먹고 부지런히 용돈을 모아 색안경을 사려고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 저학년이 색안경을 끼면 선배들에게 눈치가 보여 3학년이 될 때까지 참기로 하였다.
이제 3학년이 되어 소풍 가는 날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색안경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다. 친구들과 사진 찍을 때 색안경을 쓰고 뽐낼 생각을 하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점심을 먹고 사진을 찍으려고 삼삼오오 흩어졌는데 아니 이게 웬일 인가 나 혼자만 색안경을 가지고 온줄 알았는데 너도나도 색안경을 쓰고 자세를 잡는다. 단짝 넷이서 색안경을 쓰고 찍은 사진을 무슨 보물처럼 지금도 잘 간직하고 있다.
색안경의 유래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11세기경 중국 송나라 시절 판관들이 검은 색상의 연수정을 이용해 색안경을 만들어 썼다는 설이 있다. 죄인들에게 판관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하게 색안경으로 눈을 가리고 재판을 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색안경을 라이방이라고도 했다. 라이방은 선글라스의 대표 브랜드 레이 밴(Ray-Ban)을 우리식 영어로 발음하다 보니 라이방이 되었지만, 지금은 선글라스가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다.
요즈음은 선글라스가 일반화 대중화되었고 패션이고 생활필수품이 되었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영화배우나 연예인 자신의 얼굴을 노출하면 안 되는 첩보 활동을 하는 수사관 등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혹 젊은 사람들이나 일반 대중이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면 어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특히 여성들이 선글라스를 쓰는 것은 상상도 못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선글라스를 낀 멋쟁이 아가씨들을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어린아이들도 때로는 선글라스를 끼고 심지어 산책길에 선글라스를 낀 견공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옷가게 쇼 윈도우 에도 마네킹이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니 그야말로 선글라스 전성시대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은을 비롯한 백두혈통 외에 선글라스를 쓰면 반동으로 처벌받는다니 북한에 태어나지 않기를 천만다행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갖고 싶었던 색안경을 요즈음 세상은 강아지도 끼고 다니니 할 말이 없다. 자외선이 강한 여름철에는 선글라스가 눈을 보호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선글라스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미국에서 조종사의 눈을 보호하기 위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조종사뿐만 아니라 자외선이 강한 유럽이나 바닷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필수품이다.
선글라스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구국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그는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모습을 사진을 통하여 여러 번 봐왔기에 우리에게는 맥아더 장군의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박정희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대통령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할 당시 선글라스를 끼고 미국을 방문하였다. 단신인 박 대통령은 장신의 미국인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일부러 선글라스를 끼고 카리스마로 상대를 압도하려는 계산이 깔려있을 수도 있겠다.
박 대통령은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시절부터 선글라스를 즐겨 사용하였다. 선글라스는 눈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지만 때로는 자신의 표정을 최대한 은폐하여 상대에게 속마음을 감출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선글라스는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어린 시절 그토록 갖고 싶었던 색안경. 색안경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려는지 지금은 용도에 따라 쓰려고 여러 가지 색안경을 구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어린 시절 색안경에 대한 한이 조금은 풀리려나 모르겠다.
첫댓글 선그라스, 라이방이라는 말도 귀에 익으네요.ㅎ 대개 은둔자들이 남의 눈에 인식됨을 꺼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하겠지요.
대체로 무난한 주제인데 둘째-넷째줄 까지가 한 문장이라 두어 번 잘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