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위아래 이정표가 있다. 관리사무소는 치악산자연휴양림을 가리킨다.
▲이정표에서 직진방향 암봉이 막고 있어 좌측으로 우회하여 간다.
▲우측 찰방망이787.2m봉으로 올라간다. 가파른 오름길
▲찰방망이봉787.2m봉 강아지바위,
▲우측으로 5m쯤 가면 ‘강아지를 닮은 바위’가 있고 조망도 좋다.
▲좌측으로 가야할 벼락바위봉937.8m, 수리봉911.6m, 그 뒤로 백운산을
바라본다.
▲원주시내 줌
▲원주시내 방향 '원주천 계곡'. 중앙고속도로, 5번국도, 철도가 계곡으로 지나간다.
▲영월지맥 치악산 주능선 향로봉1041.8m - 남대봉1180m 마루금을 바라본다.
▲조망처에서 강아지바위를 보고 되돌아 가파르게 내려간다.
▲787.2m봉에서 우측으로 암릉 구간을 내려와서 뒤돌아본다.
▲강아지바위에서 급경사 70~80m쯤 내려가 안부에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
▲치악산 휴양림에서 오는 임도로 내려가며...863m봉과 벼락바위를 바라본다. 위계감이 절로 느껴진다.
▲찰방망이고개(察訪峙:676m); 찰방망이 고개는 옛날에 다니던 구길 이었다고 하는데, 역골이라는 곳에 신림역이 있을 때 역을 관장하던 보안도 찰방이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해 찰방망이라고 부른다는 설과, 원주 원(元)씨가 이곳에 묘를 쓰고 찰방이 났다 해 찰방망이라고 한다는 유래가 있다. 원주시 신림면 금창리에서 판부면 금대리로 이어지는 임도가 있는데 이곳을 찰방망이 고개라 부른다. 찰방(察訪)이란 지방을 왕래하는 관료나 군 관계자들은 반드시 역참을 들러 말을 갈아타거나 쉬었으며 역에서는 말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길을 살피는 일을 하였고 여기에 관료들이 파견되었다. 찰방은이 역찰의 관리자로서 품계는 종6품이었으며 또 시기에 따라 지방수령의 탐학을 살피는 역할도 겸했는데, 주로 조선 초기의 일이다. 암행어사제도가 있기 이전이다. 이 때의 찰방은 암행어사의 역할을 대신했다고 할 수 있다.
▲우측 차량을 통제하는 차단기가 보이고 판부면 금대리 치악산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 방향
▲임도를 가로질러 벼락바위방향으로 올라간다.
▲잣나무 숲 능선에서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완만한 등산로 따라 봉우리를 넘어간다.
▲좌측으로 가면 신림면 금창리로 내려가는 임도가 보이는데 조금만 더 내려가면 '둔창'이라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둔전(관청의 운영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토지)에서 생산한 쌀을 저장하던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해서 둔창이라고 했다는 설과 쌀이 아니라 검(무기)을 보관하던 창고인 검창(劍倉)이 금창으로 바뀌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둔창마을에서 왼쪽으로는 강씨와 안씨가 피난을 와서 살았다는 ' 강안'이라는 마을이 있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예찬마을이다. 금창리는 원래 원주군 구을파면 지역으로 일리라고 하다가 지난 1914년부터 5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둔창, 예찬, 강안, 흑천, 금옥동 등 다섯 마을을 합쳐 금창리라고 부른다. 이 중 둔창이 도로 가까이에 붙어있어 중심역할을 했다고 한다.
금창리는 임진왜란 때부터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이 있을 때마다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는 바람에 전쟁으로 인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예찬마을에는 '절충장군' 묏자리가 있는데 워낙 오래된 데다 대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기 위해 길을 내면서 훼손돼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문헌에 의하면 평원 평 씨(平原 平氏) 평귀욱 절충장군의 묘역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인물로 보이며, 절충장군이라 직급은 곽재우 의병장이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직급이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