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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천사의 하늘/ 여호와의 이름은 복은 주지만 구원할 수는 없다.
하늘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하나님은 하늘에 들어오시기 전에 먼저 그 안에 천사를 두셨다. 그런 후 그 천사들을 위해서 천사장들을 두었는데, 곧 가브리엘, 미가엘, 루시엘 등이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자”라고 하였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하늘 보좌에 앉으실 이가 오기 전까지 하늘을 잘 지키며 봉사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자들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 하늘에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천사들과 천사장들로 하여금 그 이름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들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 들어오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이름을 맡아 일하는 하나님의 사자를 두셨다. 물론 그도 역시 천사였다. 천사는 모두 하나의 사자들인데, 그중 하나를 가리켜 특별히 “하나님의 사자”라 한 것이다. 곧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자”란 뜻이다.
천사가 모두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사자들이지만 이 여호와의 사자는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 들어오시기 전까지 모든 일을 맡아 행했던 천사장들 위의 천사라고 할 수 있다.
출3:1-6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매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니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사자가 이처럼 떨기나무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창16:9-13절은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하가가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고 말한다.
이 말씀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창18:1-4절에 “여호와께서 마무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가 영접하여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는 사람 셋이 나타났다.
그런데 창18: 22절에는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라고 말했다.
세 사람이 왔는데 세 사람 중에 한 분이 여호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거기를 떠났다고 하는 것은 곧 두 사람이 떠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창19:1절에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라고 말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둘은 소돔으로 가고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남아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세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는데 그중에서 둘은 천사였고 하나는 여호와의 사자였다는 것이다.
또 창22: 1-2절에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9-12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였다.
또한 15-16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라고 말한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보고 그를 대접했으며, 모세가 여호와를 봤다. 그러나 요한복음1장 18절에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했다.
곧 하나님을 본래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 45-46절에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이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말한다.
본래 아무도 하나님을 본 자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 곧 여호와의 사자를 본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顯現)하며 그 이름으로 나타난 천사이다. 그러나 여호와란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수종드는 자들이다.
그 천사들을 대표하여 다스리는 천사장들이 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사자가 있다. 천사들은 많은 수로서 부림을 받은 자들이고, 천사장은 그들 위에 있는 천사이다. 그러나 천사장보다 더 높고 귀한 천사가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중보자로 일했던 하나님의 사자이다!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들어오시기까지 하늘에서 보좌를 지키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늘의 중보자였다. 다른 모든 천사를 지배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배하기도 하였다.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께서 대리 직분을 위임한 천사일뿐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아들이 오실 때까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시한적인 직분이었다. 그러면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준 자가 누구인가?
갈3: 19절에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 하나님의 사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약에 현현하여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전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는 영원히 사람들에게 머물 자가 아니고 약속하신 자손이 오실 때까지만 역할을 감당할 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사자를 혼동하는 이유는 저를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이라는 말을 분별치 못하고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이나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사자란 하나님의 심부름하는 자로서, 하나님은 그 사자를 하늘에 두시고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스리게 하셨다(출23:20-21).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늘을 다스렸다. 곧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아들이 오실 때까지 하늘을 통치하신다는 말이다.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使者, 천사)로 전적으로 모든 대권을 부여받은 천사장급 보다 높은 위치의 천사인 것이다. 그는 축복할 수 있고, 형벌할 수 있는 대권을 부여받은 하나님의 사자인 것이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사자가 현현할 때 가지고 있는, 천사에게 부여한 이름이나 예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인데 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이름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인데 천사에게 부여하신 것이고, 예수란 아버지의 이름인데(요17:11-12) 아들에게 부여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이나 예수의 이름은 둘 다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은 천사에게 부여하신 이름으로 심판과 형벌은 하지만 은혜를 베풀 수는 없다. 하늘의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며 아들이 오시기까지만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기할 책무만 가졌다.
의전상 주님을 영접하고 환영하는 직분으로서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으로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을 위하여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표호로 나타내 주셨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 여호와의 이름을 알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만 국한하여 그들을 훈련하시는데 쓰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란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곧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이름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온 인류, 온 세계, 모든 사람에게 신앙의 보편성을 부여하지 않았으나 예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부여하신 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와란 이름은 오직 이스라엘 한 민족에게만 국한되어 그들에게만 알게 하고 그들에게만 부르게 하신 하나님의 표호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란 이름은 온 세계 인류에게 부여하셔서 그들이 그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믿게 하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지극히 작은 한 민족에게만 부르게 하신 것이고, 예수의 이름은 전 세계 사람들이 부르도록 주신 이름이다. 그렇다고 여호와의 이름은 귀중하고 예수의 이름은 흔하다고 생각해서 여호와만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은총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은총(은혜)이라 하니까 “은혜가 그렇게 쉬우면 구원 못 받을 사람 하나도 없겠네.” 라고 말한다. 그렇다. 그렇게 쉬우니까 구원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모두 다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할렐루야! 아멘!

첫댓글 아멘 감동감사르♡♡♡
은혜로 하나님의 이름이 풀렸네요!!!
여호와의 사자와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