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국사봉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오른다.
▲가파른 오르막 암릉을 올라간다.
▲바위에 뿌리내린 소니무 바위지대로 올라간다.
▲헬기장 마지막 오름길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서 좀 나은 것 같다.
▲예전에 출입을 통제하느라 막아놓았던 철조망을 지난다.
▲ 국사봉 정상의 넓은 헬기장에 도착. 앞쪽으로 부대 건물이 보이고 좌측으로 데크목을 설치해
놓았다.
▲풍향계 이정표를 지나고
▲왕방지맥은 후문 좌측 데크목 따라 정문으로 간다.
▲바로 앞에는 동두천의 산중에서 가장 높다는 수위봉(649m)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연결되는 능선이 소요지맥이다.
▲미군부대 후문앞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이 연무로 희미하다.
▲미군부대 안 국사봉 정상의 모습
▲군부대 정문 앞에 있는 이정표에 도착. 후문에서 약3분소요
됨
▲정문에서 도로 ㄷ다라 20m내려와 우측 전봇대를 지나 스텐파이프라인을 건너 올라가면 정상석이 있다.
▲국사봉(國射峰:754m): 경기도 동두천시 탑동과 포천시 포천읍과 신북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지금은 정상을 미군부대가 완벽하게 점령하고 있어서 정상 한참 아래인 부대 정문 앞에 동두천시에서 이정표를 설치해 두었다. 조선 세조는 과거를 후회하고 말년에 산수를 벗삼아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찾고 수렵에도 취미를 가졌다. 하루는 신하들과 함께 칠봉산에 사냥을 나왔다. 수렵할 때는 사방위 중에서 어느한 곳을 정하여 시사(示射)를 하고 그 다음에 사냥이 시작되는데, 이 관례대로 왕은 칠봉산에서 동북방으로 마주보이는 왕방산의 주봉(主峰)을 겨누어 활을 쏘았다하여 그 주봉을 국사봉(國射峰)이라 칭했다고 한다. 국사봉은 이웃에 있는 형님뻘인 왕방산보다도 6.8m가 더 높다. 대동여지도에는 심곡산(深谷山)으로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봉우리를 중심으로 사방에 탑동계곡, 왕방이계곡, 쇠목계곡, 장림계곡, 깊이울계곡으로 형성되어 있어 여름철 피서지 계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남서쪽 계곡에 있는 왕방이 마을은 신라 헌강왕 3년(872년) 도선국사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을때 왕이 이곳을 방문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탑동에는 왕비가 나왔다는 설도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곳 국사봉은 미군부대가 점령당한 탓에 부대 아래에 정상석이 설치 되어있어 이곳이 정상을 대신하여 조금은 안타깝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국가의 안보을 위한 것이니 어찌하랴.
이곳은 이태조가 사냥터로 사용한 강무였으니 지금도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인가 보다. 그래서 지명도 전국의 국사봉(國師峰)이 스승의 봉우리로 칭하는데 유독 이곳만이 국사봉(國射峰)이라하여 임금의 사냥터로 칭하였으니.
▲파이프라인을 따라서 내려서고 좌측 근처에는 군부대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이다.
▲도로로 계속 내려가면 새목고개(수위봉고개)로 가나, 왕방지맥은 우측 능선으로 간다.
소요지맥(逍遙支脈)이란?: 한북정맥 축석령위 285.7봉에서 분기한 38.5km의 왕방지맥은 천보산, 해룡산, 왕방산을 거쳐 국사봉에서 소요지맥을 좌측으로 분기하여 북서진하는데 경기도의 소금강이라 불리우는 소요산 방향의 산줄기를 따라 수많은 크고 작은 산줄기를 넘고 넘어 동두천과 연천군의 경계인 말뚝고개를 지나 신천에서 맥을 다하는12.9km의 산줄기를 한북 소요지맥이라고 한다.
▲등로는 좋고 계속 내림이 이어지는 곳이며 잡목 또한 없다.
▲기암에 무언가 누군가 파란색 패인트로 표시를 해놓았고 우측으로 우회한다.
▲진행방향쪽으로 산천계곡 무인자동우량 경보시설물과 693m봉이 보이고..본 시설물은 산간계곡 상류지역에 강우량을 자동으로 관측하여 경보발령 및 안내방송을 실 시, 탐방 야영객의 신속한 대피를 유도하여 인명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이다. 포천시장
▲안부갈림길 시멘트 표지석 앞쪽에는 조수보호구역 팻말이 나무에 기대어
있다.
▲691.6m봉(693m). 작은 공터봉 우측 급경사로 내려간다.
▲Y갈림길. 헬기장은 직진이고 우측 사면으로 우회하여 내려간다.
▲깊이울유원지에서 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