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5.
알뜨르 비행장
Altteureu Airfield/ Altteureu机场/ アルトゥル飛行場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대정읍 상모리 아래쪽의 너른 벌판에 제주도민 등을 동원하여 건설한 군용 비행장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은 이 비행장을 전초기지로 삼아 약 700km 떨어진 중국의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오무라 해군 항공대의 많은 전투기를 '알뜨르'에서 출격시켰다. 그러나 1938년 11월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하자 오무라 해군 항공대는 중국 본토로 옮겨졌고, '알뜨르 비행장'은 연습 비행장으로 남았다. '알뜨르 비행장'은 '마을 아래에 있는 너른 벌판'의 뜻이 있는 상모리 '알뜨르'에 조성되어서 붙은 이름이다.
※알뜨르란 제주어 표기법상 '알아래, '드르:벌판으로 아래에 있는 너른 벌판의 의미로 '알드르'임.
Altteureu Airfield is a military airfield built by the Japanese during the occupation period in the field near Sangmori, Daejeong-eup, Seogwipo-si. The Japanese forced locals to work on the construction. Upon the outbreak of the second Sino-Japanese War in the 1937, Japanese fighters of the Omura Naval Aviation Unit made sorties from this airfield to attack Nanjing, China 700km away. After the Japanese occupation of Shanghai in November 1938, the aviation unit was relocated to China and this airfield came to be used for training pilots. The name Altteureu is a Jeju dialect of Korean referring to a wide field.
Altteureu机场是被日本军侵占时期,日本人指挥济州岛岛民在大静邑上事里南面的宽广田野上建造的军用机场。1937年中日战争爆发,日本将 遂机场当做前方基地。为了攻打700公里以外的中国南京,要求大村海軍航空部臥的大量战斗机从Alttourou机场出街。1938年11月,日本人一 占領上海,大村海軍航空部臥就迂至中国本土,Altteureu机场变成了訓絛基地, “Altteureu机场的所在地是上摹里Alttoureu,意力村子 面的大田野,因此取名Altteureu机场.
1933년에 일본 제국 해군이 임시활주로 형식으로 최초 조성했으며 당시 규모는 6만242평이었고 활주로는 1400m x 70m였다. 1937년 14만 7천2백5십8평을 일본 해군 공문서에 따르면 추가 매입하여 확장했다고 하는데, 고작 100일 만에 약 15만 평의 거대한 땅을 매입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므로, 후지급해 주겠다고 말만 하고 사실상 강제 징발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1차 완공 당시 규모가 약 20만 평에 이를 정도로 넓어졌다.
1937년 중일전쟁 상하이 전투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의 95식 육상공격기(G2H1) 6대와 96식 육상공격기(G3M) 6대가 폭격거점으로 사용했다. 이는 일본 측 자료라 축소됐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일본 측 주장으론 나가사키 오무라비행장(현 나가사키 공항 중 해상자위대 주둔지 쪽)을 출발한 폭격기들이 나가사키까지 돌아갈 연료가 없으니까 알뜨르 비행장에 착륙하는 식으로 회항 기지로 사용했다고 하며 악천후로 몇 대 추락했다.
즉 중일전쟁 당시 중화민국으로 향하던 전투기와 폭격기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이 알뜨르 비행장이다. 덕분에 알뜨르 비행장은 중화민국이 가장 치를 떠는 난징 대학살의 배후 거점이었다.
1944년 11월 19일 일본 해군 931 항공대 파견대도 오로쿠 비행장(현 나하 공항)에서 이동, 1945년 4월 10일까지 동중국해 대잠작전 거점으로 사용했다. 당시 운영기체는 97식 함상 공격기.
1945년 5월 15일부터 사령부가 진해에 주둔한 일본 해군 901 항공대의 전진기지로 사용됐다.
또한 일본 해군 제주도분견대가 1944년 5월 15일~1945년 2월 10일 주둔했다가 김해 비행장으로 이동, 부산해군 항공대로 재편되기도 한다.
확장을 거듭해서 해방 시점엔 약 80만 평에 달했으나 땅만 넓을 뿐이었지 전쟁 말기의 모자란 자원과 지역 주민 강제 동원이란 비효율적 방식으로 비행장은 물론 지하갱도 공사까지 하였고, 나중엔 그 모자라는 자재나 인력도 결전기지 공사에 쓰다 보니 완공도 못 한 채 패망하게 된다.
한편, 대부분 일본 측 자료라 100% 확신하긴 어렵지만 카미카제 기지로 쓰이기 위한 결전기지 공사를 비행장 부근 해안가에 하긴 했는데 알려진 것과 달리 해군의 특공 병기인 신요 보트 기지로 쓰였다. 제주도에는 리타 중폭격기를 포함해 비교적 정상적인 항공 병력이 주둔 중이었고 항공 자폭 기지는 김해공항 같은 육지공항이었다고 한다. 대신 만약 결전 작전이 진행되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면 거점기지로 쓰였을 가능성은 높다.
해방 후 미군이 시설을 인수한 뒤 다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엔 대한민국 국군이 사용하게 됐고, 한때는 대한민국 육군이 육군제1훈련소(강병대)를 여기에 설치,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 비행장에서 가까운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일대에는 그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정문 기둥의 흔적과 그 근처에 자리한 강병대 교회는 물론 사격장도 남아있으며 인근 대정여자고등학교는 6.25 전쟁 당시 '제98 육군병원'이 자리했었다. 현재 강병대교회와 문기둥, 대정여고 내 옛 육군병원 병동 건물 1동은 대한민국의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고 있으며, 강병대교회는 대한민국 공군으로 넘어가 인근 공군방공관제사령부 예하의 레이다 사이트 기지에서 관리하며 해당 부대 소속 군종 장교를 중심으로 인근 군부대의 종교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는 국방부가 예비 시설로서 확보하고 있다.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와 대정초등학교 일대도 6.25 전쟁 중 공군사관학교 건물과 비행 훈련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현재 대부분의 땅을 농지화하는 등 규모가 축소되고 길이 약 1200m, 폭 250~260m의 착륙대와 주기장 등 일부 시설 잔해와 20여 개의 콘크리트 격납고가 남아있다. 격납고들은 한때 농민들이 자연스럽게 창고처럼 사용했고 지금은 대개 그 안이 비어 있다. 그중 하나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조형물을 철근으로 제작한 A6M 전투기의 모형이 들어가 있는데, 많은 이들이 이를 전후 일본 해군이 방치하고 가서 녹슬어 버린 실제 기체로 잘못 알고 있다.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