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구의 수명
얼마 전 퇴직을 한 경찰청장은
관저를 떠나 조용한 주택가로 이사했습니다.
왕년의 자신의 업적과 위상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매일 공원을 산책했지만
주변 사람들과는
인사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자신과 같은 급(級)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굳이 인정할 이유도,
관심 둘 필요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벤치에 앉아
있을 때 한 노인이 다가와
옆에 앉았습니다.
노인은 따뜻하게 말을
걸었지만
청장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계급, 업적, 지금 가지고 있는 부동산
이야기만 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날들이 며칠
계속되던 어느 날 저녁,
노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청장님, 전구는 빛날 때만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불이 꺼지고 나면 그게 10와트든, 100와트든 전부 타버린 전구일 뿐입니다.
이 말을 깊이 담아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 동네에서
5년째 살고 있지만.
제가 지난날 국회의원을
두 번 지냈다는 말,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습니다.”
청장은 놀라 침묵했고,
노인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기 오른쪽 벤치에 앉아있는
ㅇㅇ씨는 서울대학교 교수였습니다.
맞은편에서 그와 이야기하는
ㅇㅇ씨는 육군 소장으로
은퇴하셨고요.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과거의 직책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용히 말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수명이 다된
전구입니다.
형광등이든, LED등이든 간에
불이 꺼지면 다 똑같습니다.
경찰청장이었든,
국회의원이었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명이 다되면 모두 같은 상자에
쓸려 들어갑니다.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태양은 모두 아름답지만,
세상은 늘 떠오르는 태양에게만
고개를 숙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