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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천관산 산행기
일시: 2013년 4월 19일 8:30 ~ 20일 21:30
참석자: 22명
강병서, 김상희, 김인상, 김재윤, 김호경, 박세훈, 방영민, 엄형섭, 윤용국, 윤철수, 윤한근,
이강호, 이대용, 이명인, 이정우, 이종구, 이종기, 이종원, 정태성, 최해관, 한상설, 한택수
4월 19 일 맑음
8:30
종합운동장 야구장 쪽에서 만나 흥분과 여유를 가지고 버스에 승차.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남자의 계절은 가을이라는 것이 정설인 것 같은데 모두가 들뜬 분위기이다. 여성호르몬이 만들어지는 나이가 된 것이겠지. 김인상산우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합류시키고 나니 분위기는 고무된다. 회장단의 간단한 일정 소개 후, 모두가 차창 밖의 봄을 바라보면서 편안함을 느낀다. 집 나온 안도감이겠지...
(선암사에 관하여 설명하는 이종기 동기회장 / HK가 건네준 선암사 책자로 설명을 대신하고 읽어 보라고 권하는 중...)
(집행부에서 나누어 준 일정과 노래곡 '봄날은 간다'를 읽고 있는 산우들)
(잠시 휴게소에서 한컷)
(창안의 풍경,창밖의 풍경/ 여유,자유?)
버스는 경부를 지나 천안에서 구브러져 잘도 달린다. 점심 때나 돼서야 순천의 선암사 근처 식당에 도착할 것이니, 슬슬 차내에서 뭔가가 진행되어야 하는 눈치다. 회장단은 출발부터 금주 선언으로 몸을 사리는 것 같다. 그래도 그 말을 곧이 듣는 산우가 있겠는가. 야미 시장에서 장물 매매하듯 몇 순배가 돌아가고 곧 이어 강병서 강의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강의라고 지칭한 것은 그의 전직에서 나온 단어다.
제목은 “무경계”로 정했다. 모두가 긴장하는 눈치다. 그래도 잠 잘 수 있는 기회도 되기 때문에 한번 해보라고 마이크를 던져 준다. 강의를 잘하려면 첫째 정의를 잘 내려야 하고 다음으로 그 주제가 왜 중요한가를 피력해야 한다. 2분 안에 청중을 끌지 못하면 끝까지 성공하지 못한다. “무경계”란 경계가 없는 우주적인 삶에서 경계를 긋지 말자는 주장이다. 사람들이 오늘날 행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것은 경계를 긋는 행위, 즉 “나의 것/나 아닌 것”으로 구분하고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애쓰는 까닭이다. 이름 짓고 분류하고 그리고 대극끼리 서로 차별함이 시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다. 예컨대, 위/아래, 안/팎, 행복/불행, 선/악 등등. 그리고 그 간극은 절대 화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원래 경계선 없는 것이 삶이다. 인간 수준에 따라 긋는 내용이 달라진다. 수준 별로 고통을 느끼는 내용이나 정도가 다르므로 처방이 달라진다. 그러나 간단히 처방을 내리면,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저항하지 않고 즐겁게 지내며,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해진다.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
너무도 간단한 결말이라 조금은 실망하는 눈치이다. 진리는 간단하기 때문에 싱거운 것이 아니라 어려운 것이다. 암튼 강의는 끝나고 어언 점심 때가 되어 순천시 승주읍의 금성가든에 도착한다. 대부분 산우들에게 생소한 흑염소떡갈비이다. 금주령이 풀리고 소주와 막걸리 몇 순배 겉들이니 남도의 맛이 배가된다. 회장단의 식사 선택에 고마움을 느낀다.
(떡갈비 메뉴,염소? 양?)
(식사중 박사의 지시에 따라...)
(점심을 맛있게 배불리 먹고 나서..)
1:30
식사 후, 선암사를 예방했다. 동백, 홍매화, 겹벗꽃 등이 흐드러져 분주해보임은 내 마음이 그러해서 그러한 것인가? 넉넉한 자연과 소박한 경내에 심신을 추스르니, 마음에 지은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 같다. 예불하는 이들에게 지복이 있어 보인다. 몇몇 산우들은 반란기운을 보인다. 여기서 송광사를 넘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굼시렁거려 보지만, 회장단은 단호함으로 잘라버린다. 선암사는 신라시대 아도화상의 ‘비로암’ 창건설과, 도선국사 창건설을 가진 사찰이며,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중창되면서 천태종 전파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전국적으로 사찰도 많이 내고 유명한 주지스님도 배출하였을 것 같다. 필자의 무지로 상세히 기술할 수 없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선암사 입구에서)
(선암사 가는 길)
(부도탑에서)
그러나 차내에서 한 산우가 이것을 입증하였으니... 때 마침 지인이 보내준 이메일을 읽어 내려간다. 혼외정사의 불륜○○, 몽정사의 허탈○○, 포경사의 귀두○○, 관음사의 변태○○, 조개사의 홍합○○ 등등. 불참회원들에게 더 상세하게 전언할 수 없음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다음 날에도 몇 번이고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 선암사 경내에서)
(뒷간까지 박았어?)
4:00
장흥의 윤제림에 도착한다. 백만평에 달하는 휴양림을 조성 중에 있어 치유나 운동 목적으로 개발 중이다. 윤제림(允濟林)이란 진실로 允, 건널 濟, 수풀 林으로 피와 땀의 진실로 나무를 조성하여 행복의 세상을 제도하겠다는 뜻으로 산주 부친의 호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윤제림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는 산주/정은조 회장)
산주 정은조는 산림청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산림 경영모델 숲을 일구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윤제림 방문 기념 표지석 앞에서)
그는 69학번 문리대 동문으로서 우리 중의 몇몇 산우들과 잘 알고 지내온 터이라서 파격적으로 우리들을 환대한다.
(상대69 복학생들과 같이 많은 강의 들었지,해관,재윤,상설,영민등..)
(특히 종구와는 절친이고..)
(호경의 사돈과 정회장이 친구관계이고...)
2시간 정도의 트래킹 코스에 나서니 전체 조망이 그럴싸하다. 조림이 여러 곳에서 나무별로 조성 중이고, 토목 공사로 바뻐 보인다. 산 정상에 오르니 다도해가 보이고 보성 골프장이 내려다 보인다.
(주월산 정상 557M에서 산주와 함께)
6:00
윤제림 접견 홀에서 기다리던 만찬이다. 바베큐와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소주와 막걸리이고, 착한 산우들의 양주 내놓기로 상이 무거워진다. 바야흐로 지금 여기에서 마시고 떠들고 웃고... 집나온 탕자들처럼 시끌하다. 그 순간 등장한 세 여자는 우리를 더욱 흥분시킨다. 두 소리꾼과 한 고수(鼓手)의 등장이렷다. 청중은 잠시 긴장하나, 소리하는 이는 우리를 간단히 교육시킨다. 무엇보다도 추임새가 중요하다고 부탁한다. 얼쑤, 좋다 등으로 연습을 시키고, 곧장 구성시게 남도의 창을 열어 제킨다. 흥보가, 춘향가, 성주뿌리 등등. 어떤 산우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조옷타”를 연발하다가 주의를 받는다. 그 단어를 너무 길게 내밀지 말라는 것이다. 소리꾼들은 이런 대포집 분위기에서 소리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주장했지만, 잘 견뎌낸 것을 보면 진정 고수(高手)임에 틀림없다. 덕분에 20여분 공연은 성황리에 끝나고 이제부터 본격 마실 판이다.
(설명 없어도 분위기 알겠지)
제2부는 산우들의 순서다. 1부 순서의 기를 그대로 전수받은 양태이다. 43년 만에 돌아온 장고 두 사람이 있었으니, 고수 영민과 소리꾼 해관이었다. 해관매미의 환속은 여러 노래들이 그 옛날에 재구성되어서 존재하였음 보여 주었다. “바다가 육지(양주)라면 바다가 육지(양주)라면, 가슴아픈 이별(외상)은 없었을 것을~~” 이 정도는 약과이고 점점 신체 깊이 들어가는 점입가경의 순간으로 인도하니 두 야생마의 리사이틀은 퇴기도 쓸모있음을 보여주었다.
(분위기 절정으로 가는중,'이리칠 저리칠' 일명 봉타령 여진 탓인가 박사가 취하네)
나머지 산우들은 간신히 예의를 지켜서 “인천의 성냥공장”을 리바이벌한 정도였다. 그 후 많은 자발적 비자발적 가수들의 참여로 밤은 무르익고, 하루를 마감한다. 잠자리 배정에서 15명은 윤제림의 두 군데 숙소에서, 나머지 7명은 너머 골프텔로.
4월 22일 비옴
6:00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좀 내린다. 아침 비는 조금 거추장스럽고 긴장하게 한다.
(콩나물 국밥 기다리는 중)
비의 온도는 몇 도일까. 실없는 질문에 여태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을 더 긴장시킨다. 답은 간단하다. “비가 오도다” 이므로 5도다. 아마도 산행 중 조금은 한기가 있겠지만 봄 기운은 못 누를 것이다. 어제 헤어져서 잤던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이것저것 짐을 챙기고 보성의 한 식당으로 가서 콩나물 국밥으로 속을 달랜다. 별미이다.
두 매미들은 환골탈태하고 땅 속의 침묵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어제 무지 즐거웠지만 좀 과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작용과 반작용의 물리법칙이니 과히 신경쓸 일도 아니다. 그리고 어제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마을의 한 청년이 석가모니에게 와서 제자들이 마을에 자꾸 내려와서 골치아파 못살겠다며 항의하러 사원으로 올라왔다. 석가를 보자마자 얼굴에 침을 내뱉었다. 석가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다음에는 뭐?” 청년은 순간 당황하고 집으로 내뺐다. 그날 자괴감으로 밤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사원에 나타났다. 제자들이 그를 보자 혼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난리가 났다. 그러나 석가께서 말씀하신다. “얘들아, 그대로 두어라. 오늘 그는 어제의 그가 아니다.” 청년은 변화되었고, 훌륭한 수행제자가 되었다. 두 매미들도 변화된 모습의 새 아침이다. 다른 산우들도 새로운 날을 맞았다.
9:30
드디어 천관산(723m) 주차장에 도착하고, 산행 장비를 챙긴다. 비가 계속 부슬부슬 오고 있지만 그다지 걱정할만한 정도는 아니다.
(초입에서 우비 차려입고 출발)
장천재의 습습한 냄새가 원초적 본능을 자극한다. 비자나무와 동백이 우리를 맞는다. 동백꽃이 땅위에 떨어지고 누우니 아름답다. 꽃은 언제나 아름답다. 꽃은 어제를 또한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힐난할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궁금하면 오백원이다.
2시간 만에 환희대에 오른다. 산 중턱부터는 운무가 끼어서 아름다운 경치를 놓치는 아쉬움이 있었다. 10여분 평탄한 길을 걸어 연대봉 천관산 이정표에 다다른다. 연대봉은 고려 의종때 (1160년대) 설치된 봉화대로서 통신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무선 광케이블 정도 될라나. 운무가 걷히고, 다도해가 다정하게 다가온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섬들이 옹기종기 모이고 서로들 사이에 물길로 연결되어 있다. 분리가 아니다. 인간들은 경계로 선을 긋지만 자연의 선은 서로 만나는 곳이다. 그리고 왼편으로는 기암들의 봉우리가 시선을 집중시킨다. 바위 전시장이다. 이제야 천관산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하늘(天)의 천사가 면류관(冠)을 씌워준 산이라고 한다.
(안개비속에도 전진 앞으로)
(날이 추워 정상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내려간 선발대)
(후발대도 굳세게 정상에 오르고)
3:00
하산 후 목욕 재개하고, 간단히 바닷가에서 산책한다. 가까이서 보니 너른 바다다. 산위의 조망과는 다른 모습으로 파도가 역동적으로 일렁인다.
(바다구경도 하고...)
이젠 밥먹고 상경해야 한다. 남도정식을 먹으러 가자. 상이 들어온다. 한상 가득하다. 주로 해물위주로 맵거나 짜지도 않다. 좋은 집을 골랐다. 술 한잔에 실컷 먹으니 피로가 몰려오고 버스에 몸을 싣는다.
(식사전 준비운동)
(남도 맛집에서 또 한잔)
5:00
귀경이다. 여행의 마지막 백미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이다. 인생이 나그네길이라고 하지만 “본향”이 있어야 끝이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버스 안에서는 마지막 강연이 벌어질 참이다.
(귀경길은 엄원사빼고 모두가 조용하다)
어제 내려올 때에 고문당하고, 또 당할 판이다. 엄원사 시간이다. 그가 제목을 영어로 말한다. From Birth to Reincarnation! 참고문헌은 성경 뿐만이 아니라 불경, 베다 등으로 방대하다. 엄원사의 준비물이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구구절절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될 진리의 말씀들이다. 그 좋은 그러나 그 많은 것을 다 담을 수 없는 인간의 저장 능력에 대해 엄원사의 양해를 바랄 뿐이다. 그래도 엄원사가 가르쳐준 추임새 “할렐루야”가 발휘되었으니 그 정도면 성과로서는 만족이다. 아마도 족히 3시간 설교는 된 것 같다. 지공도사의 스태미나는 정말 알아주어야 한다. 설교가 끝나고 환속하여 몇 개 추가 서비스한다. 그 중 하나, 할배와 할매가 나란히 잠자리에 누웠다. 할배가 할매 위에 올라갔으나, 갑자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까먹었다. 어물정거리고 있는데, 할매가 말한다 “뉘시온지요.”
엄원사는 교주급 신도였으나 그날 설교로 교주로 정식 데뷔한 셈이다. 그러나 교단에 교주가 두 명 이상이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 한상설 교주가 “자아와 진아” 모형으로 코멘트를 하고, 이어서 두 교주간의 밥그릇(말) 싸움이 일어나니 회장단이 말려서 다음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이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암튼 한교주의 요지는 자아를 죽이고 진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는 지식과 경험의 생각 덩어리이므로 본질로 가야 한다는 말씀. 참고로 한교주는 어제 강교수의 강의에도 유익한 코멘트틑 해주었다. 좌우지간 귀있는 자는 들을 것이다.
어언 밤 9시30분 가까이 되어가고 서울 경계에 왔다. 헤어져야 한다. 그래야 또 다음에 만나겠지. 여기서 추가 언급, 이종구 산우 덕분에 즐거움이 배가되었고 또한 이정우 DJ의 음악으로 차내 시끄러움을 잠재울 수 있었다. 끝으로, 이종원 김호경 회장단의 노고와 산우 여러분들의 열정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오는 10월의 대만이나 일본 원정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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