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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주관 제83단 중국 국외 시찰연수
Ⅰ. 서 론
우리는 초등교원국외시찰연수 제83단으로 편성되어 국외연수를 다녀오게 되었다.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고 교육적 제고를 높이고 폭 넓은 견문을 넓히기 위해 중국의 상해와 북경(6일) 홍콩(1일) 자유중국(2일) 등 9박10일의 여정에 올랐다. 당시 중국과는 미수교 시절로 우리 국민의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부의 배려로 월남전 종군 이래 처음으로 해외 연수길에 올랐다.
Ⅱ. 연수의 개요
1. 연수기간 : 1990년 8월8일부터 8월17일 (9박10일)
2. 대상국 : 중국의 상해, 무석, 항주, 북경, 홍콩, 자유중국
3. 연수자 : 김호식 단장, 행정요원 이동완, 검사 보안원, 남기연, 조병구, 이상봉, 김창진, 박승수, 이수찬, 최신일, 장재항, 김홍기, 표기영, 권혁진, 김연배, 김희영, 신정웅, 최동섭, 권영성, 채희수, 손한성, 이숙희, 조항자 등 24명
Ⅲ. 연수 일정별 관람 내용
◆ 1일차 :김포공항 발 상해
우리는 13시15분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미수교국인 중국의 상해로 출발하였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중국인의 특유한 향과 음식에 모든 것이 낯설고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로 위험 부담이 있었다. 신기하였다. 상해에 도착하니 공항의 청사 신축으로 어수선하였다. 공항을 빠져 나온 우리는 바로 상해 임시정부 청사로 향하였다. 임시정부 청사는 주택가의 작은 골목에 위치하였고 상당히 초라하였다. 간단한 집기와 태극기와 사진 만 걸려 있을 뿐이고 관리인이 있었다. 주변에는 중국인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거리에 많이 있었다.
다음으로 홍구공원(노신) 광장에 도착하였다. 주변은 건물로 둘러 쌓여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니 가이더가 윤봉길의사의 거사 현장과 노신의 묘를 소개하였다. 이 곳에서 기념품을 구입하였다. 싹쓸히 하는 모습도 보았고 물건값을 깍아야 한다는 가이더의 말도 들었다. 공원은 넓고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아 휴식처로서 손색이 없었다.
이 곳은 아편전쟁 종결 후 체결된 남경조약으로 상하이항구가 개항되었으며, 그 후 외국인 거류지로 존속하였다. 1949년 중국의 인민해방 통일로 중앙직할시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곳을 나오니 큰 건물들이 시선을 끌고 황포강의 물줄기를 볼 수 있었다. 어느덧 저녁이 되어 호텔로 들어갔다. 미수교국으로 행동이 조심 스럽고 특히 야간은 외출이 금지되었다.
로비에는 비취 보석이 있었다. 홍구공원에서 100불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10불이었다. 이곳에서 5개를 샀다. 선물용으로 산 것이다. 호텔에서 딸러로 도착하는 날부터 귀국하는 날까지 고스돕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 2일차 상해, 무석, 항주에서
2일차 아침에 우리는 무석으로 가기위해 상해기차역으로 갔다. 상하이역의 넓은 광장은 많은 인파로 붐볐으며 노숙하는 사람도 많았다. 중국인들의 생활상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기차에 오른 우리는 무석으로 달렸다. 느리기 그지없었다. 기차는 넓은 평야를 달렸다. 주변은 산이 하나도 없고 오직 평야에 농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석에 도착한 우리는 사림의 힘으로 팠다는 고운하에 도착하였다. 고운하는 북경까지 연결 될 정도로 아주 크고 길다고 하였다. 수심도 깊어 배들도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이 곳에서 배를 타고 주변의 경관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태호였다. 역시 인공호수 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으며 이 곳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태호 반대방향으로 건너갔다. 태호에서 황재의 옷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역시 5불이었다. 점심을 먹고 보세공장을 견학하였다. 수공으로 모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곳을 나와서 저녁을 먹고 항주로 이동하였다
항주로 이동은 저녁으로 가면서 중국인의 농촌 집 구조를 관람할 수 있었다. 우리의 50년대 생활 모습이었다. 항주로 이동하면서 우스께 이야기로 피로를 달랬으며 밤 11시경이간 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하루를 쉬었다.
◆ 3일차 항주, 상해로 이동하면서
항주 호텔에서 나와 간곳은 서호이다. 서호에서 배를 타고 주변의 경관을 보니 정말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호를 건너 차 집단 농장에 도착하였다. 중국인이 좋아하는 녹차 밭과 녹차를 만드는과정을 설명하는 공장이었다. 이 곳에서 역시 녹차 두봉지를 구입하였다.
집단농장을 나온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육화탑으로 향하였다. 육화탑은 근처에서 설명과 기념 사진으로 남기고 약비묘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면서 발전소 댐을 볼 수 있었다. 이 곳은 물의 도시라고 한다. 약비묘에 도착한 우리는 내부로 들어가니 사철 형태로 국자의 변형 모형을 설명 들었으며 약비묘를 만지면 가정이 행복하고 자손이 번성한다고 하여 반질반질하였다. 이곳을 나와 점심을 들었다. 식당의 종업원에게 갖고 간 스타킹을 주니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몰랐다. 또 운전 기사에게는 갖고 간 한국산 와룡 수조를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영은사로 향하였다. 항주 서북쪽에 위치해 있고, 비래봉을 마주하고 있다. 비래봉에는 10-14세기 경에 만들어진 석불 330여 개가 전시되어 있다. 영은사는 동진시대에 인도 승려 혜리에 의해 지어졌으며, 선종 10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이 곳에서 영화의 소림사를 이 곳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들었다.
크고 웅장한 절이며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입구의 굴속에는 작은 석상의 부처님을 모셨다 이 곳을 나오니 어느덧 상해로 갈 기차 예매 시간이 다 되었다. 항주의 기차역에 도착하여 열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일행 한분이 없어 야단법석을 부렸다. 다행이 홈안에서 만났다. 상해로 오면서 안내원과 기념 촬영도 하였다.
◆ 4일차 상해, 북경에서
상해에서 처음 간 곳은 예원이었다. 황포강을 따라 시 중심의 예원이라는 옛 부잣집의 저택으로 갔다. 시내를 지나면서 시장도 있고 많은 시민들이 다녔다. 이곳에 오니 역시 상인들이 따라 다녔다. 예원은 명대 1559~1577년에 걸쳐 조성됐는데 원래는 명의 관료가 부친을 위해 세운 대저택으로 지금은 소주의 4대 정원인과 더불어 화동의 명원으로서 그 이름을 전국에 떨치고 있다. 정원 안 서북부에 위치하는 대가산은 총 중량 2만 2천톤에 달하는 무가석이 퇴적해서 된 것으로 높이 약 12m의 정상에서는 옛 성안의 정서가 담겨 있는 용마루의 굴곡을 바라볼 수 있었고 정원이 잘 정비 되어 있어 얼마나 많은 권력과 돈을 갖고 있는 부잣집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이 곳을 나와 점심을 해결하고 북경으로 가기 위해 상해 공항으로 이동하여 상해발 북경행 남방항공기를 타고 북경으로 향하였다. 비행기 창 밖으로 내려다 본 지역은 넓은 평야와 황하강의 물줄기가 보였다. 어느덧 북경 공항에 도착하였다.
북경공항에서 내려는 순간 인천교대 이근철 교수 일행을 만났다. 시내에 있는 천단공원으로 갔다. 천단공원은 옛날 명.청대의 황제가 하늘에 오곡풍년을 빌었던 곳으로 고대 건축물이 있다. 이 공원은 북부가 원형이고 남부는 사각형이며 주변을 붉은색 벽으로 둘러싸고 있고 동서남북에 문이 있다.
기년전은 3층의 지붕이 있는 원형의 목조건축물로 천단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건물로 명대인 1420년에 세워져 1896년에 재건되었다. 내부 중앙에는 원형의 돌이 있는데 거기에는 자연의 용무늬가 있다. 천단 최상단의 중심점 위에서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를 한 그 사람에게는 자기의 목소리가 반사되어 확실하게 다시 들린다. 참 크고 웅장하였다.
천단공원을 나와 우리는 동인당 약국으로 갔다, 많은 중국인과 관광객들이 붑볐다. 그 좋다는 호랑이 연고와 우황청심원을 샀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밤 야경은 호텔 창밖으로 반 보고 역시 손 운동을 하였다.
◆ 5일차 명13능과 만리장성에서
5일차 처음으로 간 곳은 명13능이다. 명 13릉은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약 50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황릉 구역은 장릉이 있는 천수산을 주봉으로 동,서,남,북 삼면이 산들로 둘러싸여 천연적인 대정원을 구성하며 정원 문은 남쪽에 있고, 그 양쪽에 망산과 호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마친 용과 범이 대문을 지키고 서 있는 듯 하여 풍수지리설에서 최고의 명당으로 치고 있다.
명나라 성조 주태로부터 사종 주유검 등에 이르기까지의 13명 황제가 모두 이 군산이 둘러싸고 송백이 무성한 구역 내에 매장되었다. 능의 하부로 내려가니 권력이 큼을 입증 할 정도로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황제 관을 중심으로 양쪽에 왕비의 관이 놓여 있었다. 사후 세계에서도 권력이 유지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욕을 가져 보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만리장성으로 향하였다. 팔달령 고속도로를 달려 만리장성에 도착하였다. 장성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주변 경관을 오르며 감상하였다. 춘추전국시기부터 중국은 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제후들의 쟁패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시기이므로, 자기의 영토를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각자의 자기 영토 경계에 성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이 성을 호방장성이라고 한다.
중국 역사 가운데, 3번의 큰 장성건축기가 있었는데, 진나라, 한나라, 명나라 때입니다. 이 때에 지어진 장성을 가리켜 진장성, 한장성, 명장성이라 부른다. 장성의 망루에서 내려오니 4시 정도는 된 것 같다. 각종 기념품 전시장에서 기념품을 구입하고 나오니 그 많던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이들이 5시에 전원 퇴근 한 것이다.
이 곳에서 일행 한분이 없었다. 찾았으나 없어 우리는 혹시 북한으로 끌려 가지는 않았는지 걱정을 하며 북경으로 돌아왔다. 호텔에 오니 그 곳에 시퍼런 얼굴로 시름에 차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잃어 다른 단체의 버스를 타고 왔서 호텔 키로 택시의 안내로 찾았다고 한다. 단체에서 이탈하면 큰일이라는 느낌을 받고 정해진 시간에 일행은 잘 음직였다, 지금도 그때의 결심이 몸에 배서 인지 시간을 잘 지키는 습성이 생겼다.
◆ 6일차 천안문 자금성, 소년궁전, 이화원에서
아침 호텔을 나온 우리는 천안문 광장에 다달았다. 자금성의 정문이며, 광장의 센터이며. 전체 넓이는 400,000평방m로 천안문 광장 오른쪽에는 우리의 국회의사당에 해당하는 중국 인민의사당이 있고, 중앙에 혁명열사기념탑과 왼쪽에 모택동기념관, 우측에 혁명기념관이 있다.
광장에는 각궁에서 온 관광객 및 북경 시민들로 꽉 차 있다. 광장 중앙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모택동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모택동 시신이 유리관에 안치되어 있으며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져 있었다.
이 곳을 나와 천안문을 통해 자금성으로 들어간다. 천안문에는 모택동의 대형초상화가 중앙에 걸려 있고, 혁명 구호들이 붙어 있다.
고궁으로 옛날에 "자금성"이라고 불렀는데 명, 청 시기의 황궁이다. 고궁은 명나라 영락 4~18년(1406~1420)에 건조, 그 후 수차 재건, 개수하였으나 여전히 원래 규모를 보전하였다. 고궁은 부지 72헥타르, 수십 개의 대소 정원으로 구성 되었는데 방이 도합 9000여칸, 주위에 10M높이의 성벽을 쌓고 50여미터 너비의 성호를 팠으며, 성벽 네 모퉁이에 각루를 건조하고 남쪽 중간은 오문이 있다. 고궁의 주요 건축물은 크게 외조, 내정 두 부분으로 나뉜다. 외조는 3층 한백옥석 기초위에 건조된 태화, 중화, 보화 3대전을 주체로 하는데 황제가 권력을 행사하고 성대한 전례를 거행하던 곳이다. 내정은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을 주체로 하는데 황제가 정무를 처리하고 거주하던 곳이며, 그 양측의 동,서 6궁은 비빈들의 거처이다. 고궁은 현재 중국에서 보전되고 있는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황궁건축군이다. 전제 건축은 중축선을 기준으로 서로 대칭되게 배치, 주체가 두드러지고, 계층이 분명하며, 중국 고대 건축예술의 전통과 독특한 풍경을 구현하고 있어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의 거쳐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북경의 어느 소학교인 소년궁을 방문하였다. 이 곳은 청소년들의 재능을 발굴 교육하는 기관으로 우리를 환영하고 학교의 내력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의 예능분야에 대한 공개 수업과 연주회도 우리에게 공개해 주었다. 한 마디로 특별화동 분야의 전문 교육기관인 것 같았다.
다음으로 간 곳은 이화원이었다. 이화원은 북쪽은 만수산을 등지고 남쪽은 곤명호를 안고 있다. 주변 지형과 수면을 충분히 이용하여 가산의 조성으로부터 길의 주향, 전당. 누가의 배치로부터 다리의 조형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전통적 원림 조성 기예를 충분히 발휘한 것 같았다.
이화원 정문은 삼명이암의 무전식 건축으로, 중간 정문은 "어로"로 황제, 황후가 출입하고 양쪽 문은 대신들이 출입하며 태감, 병졸들은 남북 양측 옆문으로 출입하였다. 편액의 "이화원" 세 글자는 광서 황제가 쓴 것이란다.
인수전은 이 곳 주요 건축물의 하나로서 원명은 근정전, 광서 연간에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 어진 정치를 베푸는 자는 장수한다는 뜻이다.
낙수당은 대형 사합원으로 자희태후의 침전이다. 대전은 붉은 기둥에 회색 지붕으로 조형이 특이하고 웅장 화려하다. 대희루옆에 큰 정원 "덕화원"내에 건조, 현재 중국에서 보전되고 있는 최대의 고대 극장으로서 높이 21미터, 상,중,하 3층으로 나뉜다. 아래층 천정판 중심에 천창을 내어 위층 무대와 통하게 되어 있으며 중간층 무대는 권양기로 도구와 배경을 위 아래로 오르내릴 수 있게 교묘하게 설치하여 변화무궁하다.
자희태후(서태후) 는 청나라 제7대 황제 함풍(1851년~ 1861년 재위)의 귀비로서 함풍이 죽은 후 "수렴청정"의 명의로 48년 동안이나 조정의 대권을 독점하였다고 한다.
◆ 7일차 북경 출발 홍콩에서
아침 7시 북경에서 비행기를 타고 홍콩으로 향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이 곳은 산은 하나도 없고 평야지대로 황하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어느덧 홍콩에 도착하였다. 홍콩 상공에서 내려다 본 시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시내로 향하였다. 이 곳은 영국의 총통이 지배하는 곳으로 자유로운 민주국가 보호 지역으로 여행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홍콩의 명소인 해양공원에 도착하였다. 남중국해를 바라보는 넓은 지역에 조성된 거대한 레저 랜드다. 총 면적은 73만ha에 달한다고 한다. 공원은 크게 로랜드 파크 Lowland Park와 헤드랜드 파크 Headland Park로 나뉘어져 있으며,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해양 공원 옆에 있는 수상 낙원 워터월드(Water World)은 물에서 즐길 수 있는 온갖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거대한 미끄럼틀과 다이빙 플랫폼, 다양한 크기의 풀, 둥둥 떠다닐 수 있는 굽이치는 물결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시설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특히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헤드렌드 파크란 오션시어터가 있다. 이곳에서 돌고래를 비롯한 각종 수중 동물들이 펼치는 묘기로 이루어진 쇼를 볼 수 있었다. 로랜드파크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갈 수 있으며,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남중국해의 경관이 수려하였다.
해양 공원의 옆에 있는 미들 킹덤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미들 킹덤은 5,000년 중국 역사의 지배자였던 13개 왕조의 문화와 풍물을 소개하는 주제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국 스타일의 예술, 공예품의 전시와 공연 등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중국 축제에서는 용의 탈을 쓴 젊은이들의 역동적인 동작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에 있는 용의 탈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고 한다
또한 화려한 색으로 장식된 웡타이신은 중국 전통사원의 전형으로 붉은 기둥과 파란색 장식띠가 있는 금색지붕, 노란색 격자무늬창, 형형색색의 조각들 장식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조각된 화강암 아치는 두 개의 테라스를 분리하며 본당은 문과 창으로 둘러싸여있었다. 참배자들은 정원의 앞에 모이 기도하며 부처와 공자를 기리기 위한 다른 제단들도 사원 뜰 안에 있었다.
사원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은 숫자가 적힌 막대가 들어있는 대나무 산통을 이용해 행운을 점치기도 한다. 참배자는 향을 피우고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소원을 기원하고 산통의 막대가 나올 때까지 흔들고 막대가 나오면 막대와 같은 번호의 종이와 바꾸고 점쟁이는 그 내용을 설명해 준다고 한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홍콩섬의 남부에 위치한 애버딘 항구에 정박해 있는 선상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 곳은 천수만과 수상촌이 있는 항구로 저녁 식사 시간이 되니 수많은 조명들이 켜져서 작은 왕궁을 연상시켰다. 해산물 외에도 중국의 각종 지역 음식과 음료 등을 들며 하루를 보냈다. 한꺼번에 4,30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상 레스토랑인 이곳은 고대 중국의 황실을 따라 디자인 했으며 각종 홍콩적인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미하여 외국 관광객들이 가장 즐겨 찾는 곳 중 한 곳이다.
현재 점보 수상 레스토랑은 리노베이션 중인데 수백만 달러를 들여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저녁 무렾 수상촌과 홍콩의 야경을 감상하였다. 정말로 빛의 조화는 아름다웠다.
◆ 8일차 홍콩출발 타이페이(자유중국)에서
오후 4시경 1시간 정도의 비행으로 홍콩에서 타이페이 대북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시간은 저녁때인 것 같았다. 우리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용산사와 야시장을 찾았다.
타이베이시는 타이완에서 가장 큰 도시로 타이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다. 타이완은 타이베이인들의 성실한 노동과 훌륭한 계획의 결과로 경제적인 기적을 이루었다. 30년 전만 하여도 논밭이던 곳에 유리현관의 고층 업무용 빌딩, 호화로운 콘도미니엄, 그리고 현대식 백화점과 가로수가 줄지은 대로가 있는 도시로 변화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시민들은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정찬을 즐기고 최신 음악의 멋진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며 국제적인 스타들의 클래식과 현대 음악의 공연에 참석한다. 그러나 중국인의 기질은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저변에 깔린 현재의 전통적인 생활과 문화는 관광객에게는 신비롭게 보인다.
오래된 사원에서 평안을 비는 신도들과 폭죽이 터지는 거리를 다니며 정성스런 종교의식을 갖는 사람들, 수천 년간 사용되어온 한약을 파는 조그만 가게, 전통시장에서 물건값을 깎는 모습 등, 시내 여러 곳에서 오래된 문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용산사이다. 타이베이에는 초소규모에서부터 거대한 사원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사원이 흩어져 있다한다. 용산사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하며 가장 전형적인 타이완의 사원이란다. 멋진 건축양식 자체만으로도 둘러볼 가치가 있다. 돌기둥에는 조화를 이루어 조각된 용 뒤쪽에 역사적 인물들의 춤추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지붕에는 더 많은 모습들과 용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중국인들의 종교는 관대해서 많은 사찰들이 도교, 불교, 그리고 다른 많은 신을 하나의 사원에 같이 모시고 그 신의 숫자는 점차적으로 늘어난다. 용산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관음, 마조, 관공 등 그 외 각종 신의 참배자들로 인해 항상 북적댄다고 한다. 원래 이 사원은 1740년에 건립한 것으로 그때부터 자연재해 혹은 인공재해 등으로 몇 번 파괴 되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일명 뱀골목을 지나 야시장을 찾았다. 이 곳은 타이베이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야시장 중에 하나란다. 스린야시장의 각종 전통 먹거리가 국내외에 알려져,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게 되었다. 이곳 타이페이에서 야간에 용산사와 야시장을 둘러 보고 호텔로 들어와 하루를 쉬었다.
◆ 9일차 타이페이에서
9일차 타이페이에서 고궁박물관과 장개석 기념관, 우라이 민속촌을 찾았다. 우리는 시내를 지나다 보니 총통부관저를 보게 되었다. 위엄있고 장엄한 총통부는 이 건물 앞에 있는 거대한 대광장 때문에 더욱 품위 있게 보였다. 이 건물은 일본 점령하에서 총독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1919년에 건립된 이래, 타이완 정치력의 중심지이다, 르네상스 후기 건축양식의 이 선물은 총 5층으로 건립되었으며, 중앙탑은 60미터 높이에 이른다고 한다. 새해 및 쌍십절과 같은 국가 경축 기간 동안에, 이 총통부는 갖가지 색깔이 리본과 조명으로 현란하게 장식 되며 광장에서는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고궁박물관에 다달았다. 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궁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또한 5,000년 역사에 버금가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중국보물과 미술품으로 꽉 차있다. 62만점에 달하는 박물관의 대부분의 전시품은 천년 이상 지난 초기 송나라의 황실에 속했던 것이란다. 중국황실의 최고 보물은 모두 이곳 타이완에 보관되어 있다. 그래서 한꺼번에 전시하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다고 한다. 인기 있는 것들은 항상 전시가 되고 있지만 옥, 도자기, 회화, 청동의 보물들은 참관 할 때마다 색다르도록 정기적으로 바꾸어 전시한다.
박물관 전시물은 장개석 총통이 대만으로 쫒겨 올 때 중국 본토의 박물관에서 모두 같고 온 것으로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찍 깨우친 것 같았다. 박물관내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으며 카메라를 맡기야 되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장개석 기념관이며 일명 중정기념관이라고도 한다. 타이베이의 중정기념관은 영웅 장개석을 위한 타이완의 가장 인상적인 기념물이다. 그림같이 조경이 잘된 광대한 정원위에 거대한 대리석 건물인 기념관이 서있고 우아한 정자, 연못 등이 배치되었다.
25톤짜리 장개석 총통 동상이 본 건물로부터 도시를 바라보고 있으며 1층 전시실에는 사진과 총통생애의 기념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총통의 생존시 타고 다니던 자동차는 지금도 운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우아한 명나라식의 아치의 정문, 양측에 두 개의 고전적 건물이 있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우라이 민속촌이다. 시 외곽에 위치한 것 같았다. 입구에 다다르니 가이더가 기념품 가게로 안내했다. 이 곳에서 기념품을 몇 종류 샀다. 이 곳을 나오니 모노레일로 이것을 타고 민속촌 안으로 들어갔다. 주변은 온천관광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우라이 민속촌 입구에 다다르니 각종 상점들이 즐비하였고 이들의 생계 수단인 것 같았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니 우라이 원주민인 여자들의 고유 민속춤 공연이 있었다. 이들과 기념사진을 촬영 했다. 특히 이곳은 온천뿐만 아니라 폭포, 계곡, 삼림 등의 풍부한 자연자원과 미니열차, 케이블카 그리고 원주민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이곳은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우리의 제83단 국외 연수가 이 곳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호텔로 들어와 연수물과 짐을 정리하였다.
◆ 10일차 타이페이 출발 귀국
연수 마지막 날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호텔에서 짐을 정리하고 12시30분 타이베이 공항발 국적기인 김포공항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시간은 오후 3시30분경이다. 택시를 김포공항에서 타고 인천 집으로 귀향하고 보니 가족들이 참 그리워졌다.
Ⅳ. 연수를 마무리하며
중국, 홍콩, 자유중국을 9박10일 동안의 시찰연수를 다녀왔다. 외국에 대한 견문이 넓어지고 우리와 비교함으로서 교사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기르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중국인들은 서두르지 않는 태도에서 우리의 무질서 의식은 서두르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교육현장에 적용해 보겠다는 많은 교육의 실천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수를 통해 상해와 무주, 항주 등 중부 지방과 중국의 수도 북경의 문화재, 홍콩의 관광사업 및 문화재 보존, 대만의 문화재와 근면한 생활상과 그들의 교육기관을 보고 교육의 전문성 신장과 역할에 충실해야 겠다는 다짐의 기회가 되었다.
연수 과정을 통해 집단행동의 중요성을 실감하였고 연수 목적에 맞는 행동 적응이 요구되었다. 특히 중국의 거대하고 웅장한 문화 자취를 보며 우리도 문화재에 대한 애호와 보존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되겠다. 아울러 후진성을 면치 못한 그들의 현실이지만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아울러 우리사회에 만연하는 데모 등 집단행동을 지양하고, 아울러 생활면에서 자만하지 말고 근면 검소한 생활과 국가사업에 협조하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었다.
그리고 국외시찰 연수 기회를 준 문교부 당국과 중앙교육 행정연수원, 그리고 인천시교육청 관계관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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