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 유람이 생기고 첫 번개유람이었다.
번개라곤 하지만 시립도서관의 배려로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김옥분 팀장님의 수고와 신용자 선생님의 안내로
향교에서 출발했다.
일기예보에 날씨가 춥다고 얼마나 으름장을 놓던지....
아닌 게 아니라 아침나절에는 볼이 시렸다.
교동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 나오니 몸이 훈훈해졌다.
교동 교회를 중심으로 꽤 긴 골목이 있었으나
소방도로가 생기면서 교동 교회도 헐리다 보니
교동골목도 매력이 많이 감소하였다.
하지만 아직 담벼락에 낙서 흔적이 그대로 있는 집이 있어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듯 했다.
어릴 적엔 왜 낙서를 그렇게 하고 다녔던지....
하지만 이제는 낙서할 공간도 없고 낙서도 없다.
성심여자대학 시절 피천득 선생이 "인연"이란 수필을 강의했었다는
지금의 한림대학교에 들러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박물관에 들러 전시물을 구경하고 혈거지로 갔다.
지금으로부터 7천 년 전에 인간이 살았었다는 그곳....
지금은 동굴이라고 볼 수 없는 구덩이에 가까운 것으로 훼손되었지만
아득한 세월 전에 춘천에 인간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역사 깊은 도시이거늘.... 지금은 역사와 문화를 외면받는 도시가 되어...
아쉽다!!!!
다음은 오정희님의 "옛 우물"이란 소설의 배경지 연당 집이다.
부끄럽지만 태어나 춘천을 떠나보지도 못했던 내가 이렇게 유서 있는 집과
사람을 몰랐다니.... 부끄럽다.
이규완(李圭完)이란 인물에 대해 깊은 생각을 안할 수 없다.
박영효의 제자로 친일의 색채가 깊었으나 개화기에 그가 겪었을
마음고생이 엄청 심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일제에 아부하고 충성을 다했다기보다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양잠업을 장려하고 지금의 후평동 일대를 손수 지게 짐을 지며 과수원을 개간하였던 사람.
지금 친일로 분류되었지만 춘천의 근대화에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란 생각도 든다.
그가 살던 집. 그곳이 연당 집이다.
봉의 아파트 뒤에 산소도 있고 연당 집은 일본식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규완의 막내 아들과 아버지 이름도 모르는 손주. 둘이 집을 지키고 있다.
화재는 있었지만 집과 터가 아직 많이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어
근대문화 유산으로 지정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옛 소양정터를 둘러보고 번개시장에서 답사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참석하는 회원 얼마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18명이나 참여를 했다.
얼마나 감사한지.... 추위도 잊고 걷다 보니 배에서 쪼르록~~~
소양로 뱃터식당에서 추어탕 한그릇씩 먹고 헤어졌다.
아! 아리아 고마웠어. 정이 뭔지...ㅎㅎㅎ 식사때라도 잊지 않고 함께 해줘서 고마워!
(오늘 식대 중 3만원 남아서 적립 했습니다)
첫댓글 다시한번 번개 모임하고 가는듯 합니다.
답사후기를 잘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늘 써주시는 답사후기 글로 상세히 공부가 됨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