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대표: 이병천)에서 주관하는 홍도를 관람하고 왔다.
‘홍도’는 정여립의 후손인 여인 ‘홍도’를 설정해 1589년 동인과 서인의 정쟁 속에 일어난 기축옥사와 1592년의 임진왜란, 1801년의 천주교 박해 등 조선의 역사를 담아낸 이야기이다.
이 공연을 보고 온 탓일까?
이기적이고 개인주의가 난무하는 물질만능시대에 진정한 의미의 대동사상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필자와 함께 시활동가로 활동하는 이삭빛시인의
“먼저 내민 손보다 더 반가운 가슴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별보다 고운 발걸음이 사람의 문 앞에서 사랑을 노크한다.//”
라는 ‘가슴으로 만난 사람은 모두 꽃이다.’의 시(詩), 첫 구절이 떠오른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마음과 존중의 가치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홍도의 이름은 원래 ‘영’이었다. 그러나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의 자를 따서 ‘홍도’라 불렸다.
여성이 세상에 나가 뜻을 펼칠 수 없는 시대였지만 설도처럼 살기를 바라는 바람이 깃든 이름이다.
홍도는 기대와 달리 역사의 풍파에 기구하게 휩쓸리는 삶을 산다.진외종조부인 정여립은 역모 혐의로 자결하게 되고, 홍도의 부친은 고문을 받아 숨진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홍도는 평생 함께하기로 약속한
천민 ‘자치기’를 하염없이 그리워하다 혈혈단신 조선으로 귀국한다.
이 공연은 평등한 세상을 꿈꾼 조선시대 중기 혁명가 정여립의 사상과 삶을 배경으로 그에 얽힌 대동계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정여립의 손녀이자 불사의 몸으로 400년 동안 첫사랑을 기다리는 신비로운 여인 ‘홍도’를 통해 듣게 된 사랑과 이별, 민초들의 투쟁 등 다양한 이야기를 뮤지컬로 극화해 선보였다는 점이 더욱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보다 60년 앞선 세계 최초의 공화주의자 정여립(1546~1589), 그는 '천하가 공물'이라며 그 주인이 반드시 '군주가 아니고 민중'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래서 정여립은 원시적 형태의 국민주권설의 성격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는 지금의 금평저수지 부근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위해 ‘대동계’를 조직했다.
진안의 죽도와 전주 일대에서 군사를 조련하고 대동사상을 널리 펴던 중 동서붕당의 와중에서, 정철과 송익필 등 서인들에 의해 1589년 10월에 조선 역사상 가장 큰 고변사건이 일어난다.
정여립이 황해도 지역과 전라도 지역의 민중들을 모아 모반을 꾀했다는 것이다. 정여립 모반사건이라고도 불리는 ‘기축옥사’가 기정사실로 굳어졌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조선의 지식인 1천여 명이 희생됐다.
물질만능시대에 대동 정신은 날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민주주의의 효시가 된 이 지역에서 정여립의 대동 정신은 다시 되살아 나야한다.
여기서 필자는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에서 발간한 시선집 “들어라 전라북도 산천은 노래다”를 통해 분명 대동정신의 가치가 살아 움직인다는 생각에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시선집은 전라북도 14개 시 ·군을 대상으로 쓰인 시를 모아 150편을 선정 하고 한 권의 시집 으로 담아냈다. 전라북도의 산천을 비롯해서 전북이 배출한 인물과 역사, 문화, 풍경, 사투리, 음식 등을 망라한 시들을 모두 한자리에 엮었다.
이 책은 전북에 거주하거나 전북 출신 시인들의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오로지 전북 곳곳을 대상으로 한 모든 시를 찾아 엮었다는데 의미도 있겠지만 전라북도와 대한민국을 뛰어 넘어 전 세계 속으로 대동정신이 살아 숨쉬길 바란다는데서 의미가 크다 하겠다.
여기서 잠깐, 이 시선집 발문에서 대동정신을 詩라고 말하고 있는 이병천 소설가, 시인이기도 한 작가는 이렇게 보이지 않은
거대한 정신의 힘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 시선집을 들춰 어느 시든 소리 내어 읽어 보시라. 시가 곧 노래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리라.
어디 그뿐이랴. 이 산천에 피어나는 녹두꽃은 더욱 선연해지고 전봉준이 내쏘는 눈빛 또한 더욱 형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섬진강과 금강의 발원지인 진안 데미샘이며, 장수 뜬봉샘의 첫 물은 더욱 청정해지고 동진이나 만경, 섬진강의 물줄기는 더 유장하게 흐를 것이다. 농사를 짓느라고 투박해진 갈퀴손을 대할 때마다 진실로 감사드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며, 전라도 사투리를 들을 때마다, 전라도 김치를 맛볼 때마다 입안에는 더 많은 신팀이 고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시의 힘이다. 절로 탄복하여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그리고 이것이 전라도의 힘이기도 하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전라북도 산천이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 – 이병천(소설가, 전라북도 문화관광재단 대표)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전라북도 산천이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이병천소설가의 글귀가 충격으로 와닿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힘이고 사랑이라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홍도”와 “들어라 전라북도 산천은 노래다”라는 시선집을 통해 이 가을 대동정신으로 깊어지는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에 반기를 든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카타르시스가 되길 바라며, 꼭 어떤 통로 건 공연을 관람하고 책을 읽기를 권장해본다.
이것이 곧, 시이고, 마음이고, 우리들의 역사고, 현재고 미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