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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학창 시절 수학여행을 가듯 설렘으로 집을 나섰다. 아내와 홋카이도 삿포로에 가기로 했다. 홋카이도는 겨울에 가야 참된 여행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10월부터 5월까지는 일본 특유의 풍경 위에 내린 눈이 다양한 설경을 연출하고 있다. 삿포로는 다른 지역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먹거리와 겨울 레포츠까지 매력적인 겨울 여행지임에는 틀림없다. 과거 일본에서 4년이나 살면서 한 번도 홋카이도 여행을 해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아내에게 선심을 쓰는 듯하여 마음이 뿌듯했다.
날씨는 화창하고 대구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목엔 개나리와 진달래가 새봄을 알린다. 벚꽃은 아직도 부끄러워 연분홍 얼굴을 펴지 못하고 망울 채 달려 있다. 오후 2시에 출국절차를 마치고 3시 30분 에어부산 항공기를 이용해 2시간 30분 뒤인 오후 6시경 홋카이도 치토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국가 위상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안내문에는 한글이 병기되어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마치 제주도에 관광 온 느낌이었다.
삿포로 아파리조트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일본의 먹방 여행지라고 하면 오사카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고 한다. 삿포로도 오사카 못지않는 먹거리 관광지이다. 식당은 홋카이도 특유의 해산물 뷔페 식당이었다. 삿포로 특산물인 러시아 털게와 성게 알 연어 알을 비롯한 싱싱한 해산물 요리는 먹음직스러웠고 포식과 과식을 강요하듯 푸짐했다. 일본 체류 중이던 지난 4년간 아내와 한 번도 이러한 화려한 먹거리가 있는 곳에 가보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떠올랐다. 필요한 책 한 권을 사기위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지난날이 한갓 추억이라 하기에는 너무 가혹 했던 것 같다. 아내와 몇 차례 접시를 비우고 나오면서 서로 한번 쳐다보고 씨~익 웃었다.
저녁에 온천을 하였다. 삿포로의 온천은 노천온천과 사우나까지 여러 가지가 있고 자연석의 천연온천과 나무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향나무 온천이 있다. 이러한 온천과 편의 시설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했다. 노천온천을 즐기는 동안 밖에는 홋카이도의 상징인 함박눈이 나의 몸과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2월은 세계 3대 축제 중의 하나인 삿포로의 눈축제가 있어 초절정 성수기에 속한다. 홋카이도의 대표도시가 삿포로인데 오도리 공원이 삿포로 눈축제의 중심이다. 눈축제가 끝나고 채 정리도 되기 전의 잿빛 눈더미는 축제의 분위기를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아침 햇살이 퍼질 무렵 호텔에서 나와서 지옥 계곡(地獄溪谷)으로 갔다. 일본에는 지금도 활화산이 많이 있는데 이곳은 카사야마의 분화구이다. 수많은 분화구에서 분화 연기가 피어올라 마치 지옥을 연상한다 하여 지옥 계곡으로 불린다. 이곳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지대인 노보리벳츠(登別)라 한다. 직경 450m 면적 11만제곱미터의 광대한 분출구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어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른다. 활화산이라 하면서도 관광객을 통제하지 않고 활성화 하는 일본의 관광 정책은 무언가 아이러니하다.
점심 후 겨울에도 얼지 않는 도야코 유람선에 탑승하였다. 도야 호는 홋카이도의 남서부에 위치한 지름 10Km의 칼데라(caldera ) 호수이다. 호수 주변은 흰 눈으로 덮여 있고 호수의 푸르고 맑은 물은 눈을 의심할 정도로 정갈하다, 유람선이 가르는 하얀 물결 위로 갈매기들이 평화스럽게 난다. 호수 속 크고 작은 네 개의 섬을 나카지마(中島)라 한다. 유람선을 내리니 하루해도 저물어 저녁노을이 진다. 오늘도 함박눈을 맞으며 노천 온천의 매력을 즐겼다. 홋카이도는 천혜의 지역이다. 산과 들 호수 나무 기후 모두가 조화를 이루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주관하시는 섭리가 놀랍다.
도로 옆에는 1m가 넘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다. 도로 차선 위에는 주행선을 표시하는 보조표지가 달려있고 길옆에는 안전선을 나타내는 폴대가 박혀 있다. 홋카이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교통표지이다. 교통시설에는 이동성과 접근성도 중요하지만, 이곳 에서는 안전성이 우선이었다. 눈 쌓인 도로를 따라 ‘사이로 전망대’로 올랐다. 어제 본 도야 호수의 경치는 감동적이다.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함께한 어떤 여인은 날 보고 자꾸만 카메라를 내민다. 내가 사진작가라도 되는 듯 말이다. 아내 보기에 민망했다.
폭설로 덮인 도로를 비집고 지금도 화산활동을 하고있는 쇼화신산으로 갔다. 1943년부터 2년간 화산활동으로 평지이던 밭이 402m의 산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도 유황 냄새를 풍기며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다. 이러한 활화산을 관광지로 개발한 관광 정책이 참 이상하다. 안전을 최 우선으로 하는 일본에서 말이다.
다시 버스는 후기다시 공원을 향했다. 함박눈을 맞으며 그 비경을 담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가 요란했다. 창밖의 함박눈 내리는 전경을 보며 삼겹살 샤브샤브와 우동으로 허기를 면했다. 일본 음식 맛이 서서히 내 입에 녹아들고 있었다. 특이한 자연환경이나 유적을 개발하여 관광수요를 늘이는 일본의 관광정책은 우리나라도 본받아야 하겠다.
함박눈이 더 많이 내리고 있는데도 영화 ‘러브레터’를 촬영한 오타루로 이동했다. 오타루는 운하를 통해 외국의 문물이 많이 들어온 지역으로 오르골도 그중 하나다. 오타루의 랜드마크인 운하를 보고 호텔로 들어왔다. 호텔 방에서 창밖을 보니 소리 없이 내리는 함박눈이 나뭇가지를 휘고 있었다. 함박눈 내리는 전경을 보면서 아내와 나눈 따뜻한 차 한 잔이 멋진 기억으로 오래 남는다.
아직도 눈이 멎지 않는다. 이러한 폭설 중에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삿포로로 이동하여 활기찬 시가지를 보고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족의 민속촌을 보고 홋카이도 여행일정을 마쳤다. 함박눈 내리는 전경이 뇌리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대구 공항에 도착했다. 대구공항엔 수줍음에 달려있던 벚꽃 망울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kapkim@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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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본의 여행지중 홋카이도는 볼거리도 먹거리도 온천도 호텔도 모두가 세계적 수준급입니다.
현지에가면 끓어오르는 화산 연기는 물론이고 작은 지진들을 자주 접하곤 합니다.
이번 홋카이도 지진은 외국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진리와 운행하시는 섭리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