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삶의 조각들
제1장: 시골의 시작
1958년,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부모님은 이혼 후 재혼하셨고, 아버지는 1924년생, 어머니는 1938년생이었다. 그 당시 그의 가정은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었고, 소년은 "큰아들이 아닌 큰아들"로 자라게 되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일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어머니는 늘 가정과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베풀었다.
소년은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는 이미 돌아가셨고, 할머니만이 남아 그를 감싸주었다. 할머니는 늘 자상하게 그를 돌보았고, 소년은 할머니의 품에서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 시절, 그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기기보다는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 여동생, 남동생, 또 여동생이 태어나면서 소년은 언제나 형제로서 책임감과 보호해야 할 역할을 느끼곤 했다.
옆집에는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 사촌형, 사촌누나, 사촌남동생, 그리고 막내 여동생이 살고 있었다. 가끔은 작은어머니가 젊고 새로운 모습으로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 집은 언제나 시끌벅적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자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소년의 가정은 약간 특별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주는 일꾼들이 집에 거주하며 함께 살았다. 가정부도 있었고, 아버지는 늘 공무원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자주 아팠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더 애틋하게 그를 돌보았다. 그때마다 소년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제2장: 광주로 가는 길
소년은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로 진학하게 되었다. 광주는 그의 인생에서 큰 변화를 일으킨 곳이었다.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며, 그들은 부부 동반으로 함께 국내외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여러 가지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1980년 광주사태는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학교는 갑작스럽게 휴교가 되었고, 그는 잠시 시골로 내려갔다. 시골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옆 밭에서 감자와 고추를 훔쳐 먹으며 소박한 일상 속에서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 그는 세상이 얼마나 불안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3장: 군대와 사랑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군대에 입대했다. 논산에서 4주간 훈련을 받은 후, 서울 보안교육대에서 4주를 수료했다. 이후 그는 의정부에 배치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군대 생활이 힘들었던 시절, 그는 연애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결국 그 만남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연애가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사랑을 키워갔다. 군 복무가 끝난 후, 그는 서울로 돌아와 결혼을 했다. 결혼 후, 그의 삶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제 그는 가족을 이루고, 책임감 있는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어야 했다.
제4장: 새로운 시작
1984년, 그는 취직 후 첫 아들을 얻었다. 유일한 아들이 태어난 그 순간, 그는 더욱 책임감이 커졌다. 새로운 가족을 이룬 그는 수원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30년 동안 회사에서 근무하며 안정적인 삶을 꾸려갔다. 그동안 그는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미국, 캐나다, 호주, 터키, 베트남 등 40여 개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났다.
그의 여행은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었다. 각국에서의 여행은 그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고,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세상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 그는 사람들의 생각, 문화, 가치관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들을 많이 경험했다.
제5장: 건강과 싸움
그러나 삶은 언제나 평탄하지 않았다. 2024년 7월, 그는 위내시경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피검사 중 PSA 수치가 4.9로 나오자, 전립선에 이상이 있다는 결과를 받았다. 그는 큰 병원에서 MRI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2기 또는 3기의 전립선 암이 발견되었다. 이 소식은 그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바로 남성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치료는 예상치 못한 여러 합병증을 동반했다. 그는 여러 번의 고통을 겪으며, 그동안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11월 26일, 그는 로봇수술로 전립선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는 점차 회복하며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자리 잡았다.
제6장: 삶과 죽음의 질문
시간이 흘러, 그는 2025년 초등학교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면서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자 했다. "삶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그는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삶은 항상 변화하는 여정이었다. 시골에서 시작된 삶, 광주에서의 고교 시절, 군대에서의 경험, 결혼과 자녀, 해외 여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강과의 싸움. 그는 매 순간, 자기 자신과 싸우며,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이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아끼며,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큰아들 아닌 큰아들"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그 길 위에서 그는 계속해서 나아가며, 삶의 의미를 하나씩 풀어가고 있었다.
제7장: 어린 시절의 기억
나이가 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친구들과 나는 자연 속에서 자라며 자유롭게 놀았다. 여름이면 물놀이를 즐기고, 산과 들로 나가 새를 잡았다. 그 시절, 우리는 소박하지만 재미있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군부대가 산에 있었기 때문에 가끔 탄피를 주웠고, 실탄이 들어 있는 탄피를 발견했을 때는 불에 넣어 폭발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런 경험은 마치 모험처럼 큰 인상을 남겼다.
우리들은 주로 물놀이는 신안과 백운저수지에서 놀이를 즐겼는데, 그때는 복합비료나 요소비료포대에 공기를 넣어 묶으면 그 부력 덕분에 잘 떠서 좋은 놀이 기구가 되었다. 하교 길에는 논 가운데 있는 샘에서 놀기도 했고, 이때는 여학생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점심시간에는 도시락 검사를 하곤 했는데, 그 당시 혼식 장려 운동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몇몇 부자 친구들은 쌀밥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친구들은 보리밥을 가지고 오거나, 더 어려운 친구들은 고구마나 서숙밥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 중 김치국물은 종종 도시락을 넘쳐서 책보를 빨갛게 적시기도 했다. 몇몇 친구들은 가방을 메고 다녔지만, 대부분은 보자기에 책을 쌓아 메고 다녔다.
학교 생활도 특별했다. 나는 오전반과 오후반을 다니며 바쁘게 생활했다. 그때는 미국 원조로 만든 옥수수빵을 배급받았고, 그것을 동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가끔 교실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는데, 어느 날 교실 환기구에 돌맹이를 넣어 천장이 무너질 뻔한 사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