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여행
이진영
지난 해 오월, 거제도 여행은 비와 함께 시작되었고 비가 그치면서 마무리 되었다. 누군들 여행을 하면서 화창한 날씨를 기대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비속의 여행은 있는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특별한 여행이었다.
떠날 때 내내 비가 올 거라는 일기 예보는 있었지만,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했다. ‘하루쯤은 그래도 날이 개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면서 차에 올랐는데, 가는 중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거제도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날 밤 곤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핏 잠에서 깨어나면 줄기차게 쏟아지는 빗소리가 귀를 적셨다. 그래 밤새도록 내려라. 내일 올 비까지 다 내려라. 그리고 아침에는 반짝 개일 하늘을 기대하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의 희뿌연 밝음이 창을 두드렸다. 숙소 주변 숲에는 는개가 자욱하게 내렸다. 나무들은 젖은 몸을 태우는지 매캐한 연기를 피어 올렸다. 저 멀리 바다는 안개 속에 푹 파묻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모처럼의 여행이니, 햇살 쏟아지는 하루를 주십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도 했다.
일행을 태운 차는 여전히 빗줄기를 거느리고 숲가를 달려갔다. 숲도 젖어 있고 길도 젖어 있다. 길가에 잎이 꽃처럼 붉은 홍가시나무도 빗방울을 이고 늘어서 있다. 길은 한쪽 어깨에 바다를 얹고 달리기 시작했다. 바다와 맞닿은 방파제까지 왔다. 비를 맞고 있는 바다 한 쪽 하늘가가 밝아 오는가 싶었다. 오후에는 비가 그치려나? 멈출 만도 한 기대를 다시 해 봤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내렸다.
계속되는 여행길에 비는 멈추지 않고 내렸다. 하늘은 짙은 회색빛에서 흐린 회색빛 사이를 오락가락 했지만 더 푸른빛으로 다가서지는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비가 그치기를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바다도 섬들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많은 생각 속에 실체를 삼키고 침묵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yes” 라는 응답만 주지 않으신다고 했다. “no” 도 있고 때로는 "wait"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주시기도 한다. 나는 한 세상 살면서 “yes"라는 답변만을 원했다. 그렇지 않았을 때 원망했고 실망도 했다.
하지만 우리 삶이라는 여행길에서 어찌 화창한 날만을 기대하겠는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지닐 수 있다면… 나또한 비와 함께 한 시간들 속에, 뚜렷하지 않은 실체들과의 또 다른 만남을 만들 수 있었던 멋진 여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아직 우리 살아 있기에 비 개인, 더욱 화창한 다음 여행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첫댓글 낭독하기엔 이 길이가 좋은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