隨筆은 글자 그대로 따를 수(隨)에 붓 필(筆)이다. 마음 따라 붓 따라 가면 된다.
그런데 글 쓸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머리 속이 하얀 백지처럼 비어버린다. 글이 나가지 않는다.
왜 그런가. 이것이 문제다. 그 해결책이 무엇인가.
우선 쓸 '꺼리'가 없는 사람은 고양이 쥐 잡는 모습을 한번 자세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법 하다.
고양이는 항상 쥐를 노린다. 담을 넘어 쥐의 흔적을 살금살금 따라가고, 쥐구멍 앞에서 한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만약 우리도 고양이처럼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
하루 24시간 마음 속의 수필 '꺼리'를 찾고, 쥐구멍 앞의 고양이처럼 신경을 집중하여 거기 매달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한밤 중 자다가도, 새벽에도, 화장실에 앉았다가도, 버스 타고 다닐 때도, 일구월심 고양이 쥐 노리듯 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리고 마치 고양이들이 쥐가 나타나면 앞발로 날쌔게 후려치듯이, 떠오른 생각을 즉각 메모하여 꼼짝 못하도록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글감이 없다느니.여행을 가서 얻어와야 겠다느니 궁색한 소리는 전혀 필요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알다시피 인간의 머리는 컴퓨터보다 복잡하다. 수만가지 기억과 정서가 회로에 저장되어 있다. 아마 국립도서관 책 보다 많을 것이다. 세상에는 인간의 희비애락도 많고, 종교에는 고요하고 맑은 경지도 많고, 산수간에는 꽃 피고 새 울지 않는가. 쓸 '꺼리'는 너무 많다.
우리 마음 속 창고에는 옆 사람에게 할 말이 너무 많다. 독방이 감방에서 제일 괴로운 것은 옆에 말을 건넬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메모하는 습관만 들인다면 일의 반은 해결된 것이다.
그 다음은 암탉을 한번 살펴보자. 암탉은 비가오나 눈이 오나 소중히 알을 품는다. 친입자라도 나타나면 꼬꼬댁 꼬꼬댁 야단법석을 친다. 그러다 어느날 알 속에서 삐약삐약 병아리 소리가 들린다. 병아리는 곧 깃털이 생기고, 날개가 생기고, 아장아장 걸음마도 한다.
수필도 이와 같다. 좋은 소재를 메모했으면 다음은 암탉이 되어야 한다. 마음 속에 수필 소재를 사모치게 품고 다니면 신기한 현상이 일어난다. 생각이 점점 성숙해지는 것이다. 날개가 돋고, 삐약삐약 병아리 소리가 난다. 혹시 암탉을 잡다가 뱃속의 알주머니를 본 적 있는가. 크고 작은 알이 줄줄이 달려있는 것을.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잡는 것이 수필 아니다. 떠올랐다 사라지는 생각을 고양이처럼 집요하게 움켜잡고, 암탉처럼 혼신의 힘으로 마음 속에 오래 품어 병아리로 만드는 게 수필이다. 수필 쓸려는 사람은 이런 크고작은 알주머니를 속에 줄줄이 달고 있어야 한다. 그 알주머니 속에서 큰 놈부터 차례로 나오는 놈이 수필 '초고' 이다. 이 초고는 엉성하거나 횡설수설이라도 상관 없다. 엉터리라도 상관 없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먼저 초고 한 편은 써놓고 볼 일이다. 그래야 일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