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부철 전북자동차공업사 대표
가수꿈 포기않는 판금도색 예술사
가난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이혼... 그 수렁에서 구해준건 노래
마이크 잡는것만으로도 행복... 소외이웃 노래봉사 전념
조금은 오래전 일이다. 지난 5년전 부인과 이혼한후 절망과 좌절속에서 돈도 명예도 없는 그는 노래에 인생을 걸었다. 가수의 꿈을 이루기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있는 그를 만났다.
절망과 좌절속에서 예비 가수지망생으로 대변신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용산다리를 지나 공업사가 즐비한 골목을 끼고 돌면 “전북공업사” 판금도색작업장이 있다. 장대비인가 물폭탄인가 억수로 퍼붓던 지난달 7월 중순 박부철(52)코스모스문화예술단 감사를 만났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곳곳에는 그의 행사포스터로 가득찼다.멋지게 차려입은 무대복과 열창하는 모습은 분명 가수였다.어디서 봄 짓한데...그의 율동하는모습이인상적이었다.
노래를 통해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다는 박 감사.“쉰이 훌쩍 넘은 나이에 무슨 가수냐?”고 사람들이 비웃기도 하지만 그는 분명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작은 꿈 밤무대 가수를 위해 오늘도 그는 최선을 다한다.
가난과 이혼... 그러나 행복했다
그는 완주군 이서면 원동리 청복마을에서 2남 3녀중 막내로 태어났다.부친은 초등학교 6학년때 모친은 결혼후 작고했다.가난했지만 그는 행복했다.그러나 지난 5년전 사랑했던 아내는 자녀들만 남겨놓고아무연락도 없이 그의 곁을 떠났다.일밖에 모른그는 처참한 인생 낙오자로 추락했다.그의 나이 마흔일곱.빈털터리로 남은 그의 인생관을 들어보자.
지금의 직업이 된것은 지난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등학교 중퇴를 한그는 만19세 때부터 자동차의 꽃인 판금도색을 천직으로 알고 자동차2급기능사자격증을 11년전 취득해 1급 전북자동차공업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또 아내와 헤어진후 마음의 상처를 털어버리기 위해 방황하던 중 우연히 노래에 관심을 갖게됐다.
인생의 많은 장애물을 넘다가 쓰러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나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할수 있다는 것을 순간 깨달았다. 그는 아내가 없기에 비참한 생활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지팡이에게라도 의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인생 밑바닥을 경험한 그가 가장 거부하는단어는 “실패”다.
가난과 이혼 등을 뼈저리게 겪었지만 “실패한 게 아니라 잠깐 휘청거렸을뿐”이라며 “꿈이 있는 자에게 장애물은 단지 연습코스일 뿐‘이라고 말한다.
요즘 생활의 일상이 되어버린 노래,그는 요즘 업무를 마치면 노래와 조기축구그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한다. 그의 하면 된다는 집념이 없었다면 지금 가정의 행복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는 요즘 틈이 나면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위해 나선다. 앞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노래봉사 전념
아마추어 가수로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는 요즘 가수가 되기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노래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힘이 솟아 목소리를 높이지만 마냥 즐겁기만 하다는 그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는 모두를 감동시킨다.
“행복합니다.노래를 할때면 가슴 속 어디선가 설명할수 없는 기쁨이 밀려옵니다.”요즘 웃음이 넘치는 하루를 만들시 위해 일하면서도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있는 그는“목소리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잊지 못할 마법의 소리”라며 “노래를 하면서 나의 존재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고,이웃을 사랑하는 아량과 삶의 소중함을 스스로 터득할수 있게됐다”고 말한다. 계속되는 사업실패로 가난한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지난날은 자신에게 아픔과 희망을 안겨주었지만,가난한 삶속에서 희망을 발견했다는 그의 얼굴에서 노래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되면 장애인을 위한 위문공연을 통해 세상사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