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 해조류 박람회장을 가다.
天眼, 김 대 자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유년 4월 어느 날……,
세계 최초로 해조류 박람회가 열린다는 전남완도에서 한국문인협회 해양문학 학술세미나가 있다기에 완도문인협회의 초청을 받아 전남문인협회 회원들이 버스를 한대를 대절하여 완도로 향해갔다. 장성읍에서 출발한 버스는 장성문인협회 회원들을 싣고 광주에 살고 있는 문우들과 합류를 했다. 이른 아침에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을 나서는 바람에 아침을 거르고 온 회원 그리고 화장을 하지 못하고 나온 여자회원들이 많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 하지 안했던가?”
이를 위해 빵과 음료 그리고 과자 같은 먹을거리를 준비해온 비닐봉지를 하나씩 나누어주며 내일 것 까지 넣었으니 그리 알아서먹으라 한다.
회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씩 받아들고 다람쥐 도토리 까먹듯이 먹으며 허기를 달래는데 여성회원들은 달랐다. 밥은 굶어도 화장은 해야 한다며 이쪽 볼 저쪽 볼을 두들기며 치장을 한다. 학교에 입학한 초등학생들처럼 나누어 준 이름표를 받아 목에 걸 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70중반으로 보이는 한 회원의 자기소개가 회원들의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회원 여러분 반갑습니다. 나는 오늘 가슴이 설래 입니다. 내가 초등교사 발령을 받아 처음간곳이 완도요. 나의 첫 사랑을 나눈 곳도 완도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재담 있게 소개를 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나주에서 회원한명이 합류를 했고, 목포에서 또 한 회원이 우리 차에 올랐다. 글을 쓰는 분들이라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달리다가보니 어느 덧 완도읍 정도리에 위치한 국립공원 구계 등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수 천 년 파도에 닳고 뭉개진 몽돌위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촬영함으로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읍내에 있는 해변방갈로 쌈밥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완도 문협에서 대접하는 푸짐하고 신선한 유기농 야채로 점심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완도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멋들어지고 신명 나는 완도농협 난타공연을 시작으로 한국문인협회 완도지부가 주최하고 완도군과 한국문인협회 그리고 전남문인협회가 후원하는 해양문학 학술세미나가 있었다.
이 행사에서 완도군을 대표하는 신우철 군수는 환영사를 통해서 완도를 찾아주신 한국문인협회 회원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감사패까지 주신 것은 더 많이 도와 달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고, 축제가 시작된 5일째 되는 날 10만 명이 다녀갔으니 마칠 때까지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리라는 소망과 바람에 회원들의 우뢰와 같은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큰 키에 미남형으로 잘 생긴데다가 언변도 좋아 박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한국문협 문효치 이사장은 격려사를 통해,
“나는 오늘 기분이 참 좋습니다. 내가 오는 길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솟구쳐 나오는 모습은 우리 한국 문협 회원들을 환영하는 듯해서 기분이 좋고, 해양문학의 선구자 윤선도선생의 어부사시와 해상왕 장보고의 활약을 통해 일본을 재끼고 세계 최초로 해조류박람회를 우리나라 완도에서 개최하게 되어 기분이 참 좋습니다. 그리고 내가 혼자 왔지만 완도 산 해조류를 많이 사가지고 가서 내 아내에게 주면 아내가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가는 길도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문인의 총수다운 격려사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공감하는 박수를 보냈다.
첫 번째 강사로 나선 부산대학교 양왕용 명예교수의 “세계 해양문학과 한국 해양문학에서 바다수용의 차이” 라는 강의에서 해양문학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바다자체를 주제로 담거나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삶과 정서. 사상을 체험과 상상을 통하여 문자로 묘사하는 문학이라고 했고, 역사적 고찰을 해보면 가장 오래된 것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요나서(주전760년)라고 지적했다.
정말 학자다운 깊이 있는 강의에 감동했고,
두 번째 강사로 나선 전 문화부예술진흥국장이며 소설가인 이길융 선생은 “한국의 해양소설문학이란 주제의 강의를 통해 한국최초의 해양소설은 김시습金時習1435년 세종17-1495년이 쓴 한문 단편소설 금자라(1465년)라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 강사로 나선 윤삼현 시인은 “한국해양시가에 나타난 공간인식” 이라는 강의를 통해 해양문학이란 (1488년 성종19년) 나주출신의 금남 최부崔溥의 표해록에서 그 기록을 볼 수가 있으며, 조선시대에서는 윤선도尹善道가 65세에(1651년 효종2년) 쓴 어부사시가 그 대표적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강의에 나선 전남문학회 박형동 회장 해양문학의 글감의 보고寶庫, “완도와 장보고에 대한 눈길”이란 강의에서 우리나라는 이순신장군이나 세종대왕 그리고 광개토왕이나 장보고와 같은 분들이 해양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스토리텔링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2002년9월에 해상왕 장보고 기념사업회의 배려로 일본역사 탐방 길에 합류함으로 일본교토 국립박물관에서 엔닌에 입당구번순례행기라는 기록물에 엔닌이 장보고의 배려와 도움을 받아 장보고를 신으로 섬기고자 했었던 기록물을 발견했고, 엔닌이 적산신을 위한 선원을 새우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 유언을 받은 제자들이 건립했다는 적산선원은 적산대명신(장보고)을 섬기는 사찰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일본에서는 장보고가 부와 바다의 신으로 섬김을 받을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역사가 묻혀버릴 번 했다는 역사탐방기를 말함으로 회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고 강의를 최고로 잘 했다는 칭송을 받기도 했다.
첫날행사는 엄선된 10여명의 전국 시 낭송 가들의 시낭송과 해양문학 세미나로 첫날 행사를 마치고 완도문인협회에서 마련해준 완도 관광호텔에서 소금물 해수탕에 몸을 씻고 문우들과 삼삼오오 짝을 맺어 하룻밤 풋사랑을 나누었다.
둘째 날에는 청해진 유적지를 돌아 해조류 박람회를 관람하고 점심을 먹은 후 다음을 기약하면서 아쉬움을 남긴 채 되 돌아오는데 완도의 바다 속으로 자맥질하는 석양 해는 늙어 간다고 서러워마소. 뜨는 해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는 해도 아름답다며 노을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작가악력-----------
1,한국문협회원
1,전남문협이사
1,무안문협이사
첫댓글 올려주신 기행수필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행사준비와 마무리하느라 너무 힘들었고 그 후유증으로 손을 다쳐 지금도 깁스를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그날의 행사내용을 드라마처럼 읽고나니 감회가 깊습니다.
한국문학사상 처음으로 500여 명의 문학인이 이곳 완도에서 해양문학의 일번지답게 해양문학의 뿌리를 찾아서 학술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어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 개최의 성공을 기념하고자 완도와 관련한 내용의 시와 수필을 공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