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문제)빈곤_이정근_2018.hwp
빈곤 문제를 묻고 답하기 2018.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김상연,이두걸,유대근,송수연, 한울 2015
<빈곤을 보는 눈>, 신명호, 개마교원, 2013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릴 수 있을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빈곤의 책임은 다양하게 지목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과 이념에 따라 다른 이유들로 빈곤은 무엇 혹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이 개인과 사회 이 두 가지 관점이다. 요즘 사회에서는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 이유는 요즘 사람들은 가난하고 빈곤층인 사람들 대부분이 개인의 의지가 약하고 정신이 나태하며 그 가난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사회구조만을 탓하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책에서 절대적 빈곤층과 상위1% 계층의 삶을 들여다봤을 때 무엇보다 기회의 평등이 많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기회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빈곤층은 시도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부유층은 어느 길이든 여유롭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기회가 적고 환경이 좋지 않아도 자수성가하여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자수성가형 부유층들은 빈곤을 개인의 책임이라고 하는 경향이 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사람들에게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기회가 적고 시도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는 빈곤층의 환경과 어느 길이든 여유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부유층의 환경 이 두 가지 환경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어떻게 말할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라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겠다. 그리고 물론 당연히 다른 사람들 모두 후자를 선택할 거라 생각한다. 이처럼 아무리 노력을 했어도 그 사람도 좋은 환경을 바랐을 거고 그랬다면 좀 더 성공하고 덜 고통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말을 해도 “누구의 책임인가” 이 의문은 뭐라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 환경 즉 사회의 탓도 어느 정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빈익빈 부익부‘ 과연 가난은 대물림일까?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 가난할수록 더욱 가난해짐의 빈익빈과 부자일수록 더욱 부자가 됨의 부익부 이 두 단어가 합쳐서 생겨난 말이다.
그렇다면 빈곤층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자식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가난‘이다. 흔히들 가난은 대물림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가난이든 부든 똑똑함이든 성실함이든 재산과 유전자는 대물림되는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A, B, C 세 아이가 지압판 위에서 달리기를 한다고 하자. 부유한 가정의 A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고 평범한 가정의 B는 고무신을 신고 가난한 가정의 C는 맨발로 뛰었다. 어떤 아이가 가장 빨리 결승점에 도착할까. 답은 당연하게 A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논문들을 참고해봐도 부모의 학력이 낮거나, 소득수준이 낮은 경우, 자녀의 학력과 소득수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이 있다. 가난한 가정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데 요즘 같은 세상에서 이 말이 이뤄지는 것을 보기는 많이 힘들다. 결국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수준으로 이어지고 다음에 자녀의 소득수준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이 현재의 추세이다. 때문에 가난이 반드시 다 대물림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게 그렇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가?
이 빈부 격차라는 문제는 단순한 부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심리나 행동 그리고 사회성에도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단 이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분노가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조직적인 차원에서도 가족 해체나 붕괴, 심하면 생계형 범죄를 포함한 범죄율이 증가할 가능성까지 있다. 그리고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개인이 갖는 소속감, 연대감이 약화되면서 사회 갈등이 증가하게 되고 결국 사회 통합이 약화될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흐름은 ‘분노 사회’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사람들은 20대부터 60~70대 고령 인구까지 뭔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이것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불안이다. 10대에는 입시 불안, 20대에는 청년 실업, 30대에는 구조조정, 40대에는 퇴출의 공포, 50대 이후부터는 노인 빈곤율 50%대 현실에 대한 노후 불안이 있다.
이처럼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뭔가에 대한 불안이 점점 더 강해지고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우리 사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배금주의’ 사회 속에서 돈이 많다면 정말로 행복할까?
‘배금주의’ 다른 말로 황금만능주의 또는 물질만능주의라고 말하는 이것은 모든 관계를 돈과 연관시켜 생각하려는 행위이며, 또는 삶에 있어 돈이 최고의 가치를 가진다고 믿는 행위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부유층도 아닌 그렇다고 빈곤층도 아닌 그냥 그저 그런 평범한 가정에 속해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계층에 속해있는 사람이다. 나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않고 용돈이 남보다 많은 것도 아니며 원하는 물건을 마음껏 살 순 없지만 충분히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가끔 뉴스에서 정치인이나 상위 1%의 재벌들이 가문의 재산상속 다툼이나 권력 다툼을 하며 승리하기 위해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국민들을 농락하고 이익을 취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저렇게 살면 진짜 행복할까 하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분명 돈을 썩을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고 그만한 명성과 지위도 갖추고 있다.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만 보면 정말 부럽고 “내가 저거의 반만 가져도 여한이 없다” 싶을 정도로 부유하고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 사람들의 인생 자체를 봤을 때는 그리 달갑지는 않다. 이미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그렇게 끝없이 싸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고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돈이 만능일지라도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말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돈이 별로 없어도 그에 맞는 그보다 더 뛰어난 가치를 스스로 찾아서 그것을 즐기면서 자신의 진짜 행복을 찾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정근 / 광동고 2학년 11반 audrms589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