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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과 이정희(李庭禧)
역사적인 인물 중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는 분이 많이 있다. 대중매체의 발달로 무명의 인물들이 갑자기 화려하게 부활하는가 하면 반면에 매우 훌륭한 인물도 저평가되어 대중에게 잊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표적인 대중문화의 한 장르인 영화의 관객은 인물의 역사적 업적보다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활동의 극적인 요소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오는 영화에는 대상 인물의 생애를 통한 역사적 평가나 또 그의 이념과 사상 보다는 관객의 호기심을 충족할 만한 단면적인 극적 요소에 맞는 캐릭터를 만든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 ‘암살’에 나오는 밀양 사람 김원봉(金元鳳·1898~1958, 조승우 분)을 그 예로 들 수가 있다. 그가 상해임시정부의 비선조직으로 만주를 무대로 펼치는 항일 활동 가운데 친일파 암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항일무장투쟁과 사회주의자로서의 이념적 활동이나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의 고위직을 역임한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 영화 ‘박열’이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 14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으나 신문보도나 영화평을 보면 실명을 딴 영화 제목 그대로 아나키스트인 문경 사람 박열(朴烈·1902~1974, 이제훈 분)이 활동한 일본 관동대지진 때의 일본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때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인에게 조직적으로 자행한 대학살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무명의 한 조선인 이야기다.
이 영화 또한 일본제국주의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는 항일 투쟁이라는 공통적 관심과 인본인 연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의 사랑 이야기 외 상황과 설정이 조금 다를 뿐 ‘암살’과 비슷한 관점의 영화로 여겨진다. 여기에서도 그가 무정부주의자에서 우익으로 전향했다가 다시 공산주의자로 월북하는 과정은 생략되었다.
나는 우리 역사의 근대 인물을 소재로 한 이 두 영화에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는 항일활동을 하신 우리 고장 출신의 매운 이정희(梅雲 李庭禧·1881~1955) 선생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원봉이나 박열과는 달리 국내에서만 활동하며 변함없는 민족주의자로 치열한 삶을 살다 가신 매운 선생은 요즈음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기에도 충분할 만치 역동적인 인물이셨다.
그의 일생 가운데 매우 영화적인 단면 하나를 1922년 12월 23일 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찾아 여기에 옮긴다. 당시 경상북도 경칠부 고등경찰과에서 이정희 선생을 중심으로 30여 명의 인사들이 우리 고장을 포함한 경북 지역을 무대로 암약한 이른바 ‘의용단사건(義勇團事件)’ 전모를 발표한 내용의 전문이다. 이 기사의 소제목만 훑어봐도 매우 흥미롭다. 다소 길고 건조한 당시의 문어체의 기사이기는 하나 인내심을 갖고 자세히 읽어보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정희(李庭禧) 선생 관련 의용단사건(義勇團事件) 신문보도(동아일보 1922.12.23자)
慶北重大事件의 警察側에서 發表한 顚末
이뎡희등 삼십명 암중비약한 내용
얼마 전부터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과에서 극비밀리에 모중대사건의 범죄인 수색에 대대뎍 활동을 한 결과 삼십명의 다수한 범인들을 검거하야 엄중 취조중이라는 것과 그 사실의 대강은 임의 보도한바 이어니와 경북 경찰부로부터 발표한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갓더라(대구)
事件發覺의 端緖 리대긔와 리응수간 편지로 리응수가 잡혀 자백한 결과
지난 십월 이래로 경북 안동군 영천군 군위군 영일군 영덕군과 경남 창녕군 각디의 부호에 대하야 길림성군정서(吉林省軍政署) 기타 여러 가지의 명의를 사용하야 독립군자금을 내이라는 협박장 독립운동에 관한 경고문과 사형선고서 등을 대구 금천 추풍령등의 각디로부터 우편물을 보내는 일이 잇섯던바 여기에 대하여 경북 경찰부로부터는 관내 각 경찰서를 독려하야 엄중 수사케 하는 동시에 동부고등경찰과 수사반에서도 수상한 사람의 래왕에 주의 중이엇는데 대구부 본뎡 계림여관(大邱府 本町 鷄林旅館)에 투숙하는 자에게 대하야는 별로히 계통뎍으로 엄밀히 내뎡을 하고 잇는 중에 안동군 출신 리대긔 뎐(安東郡 出身 李大基 殿)으로 금천군 봉산면 리응수(金泉郡 鳳山面 李應洙)의 발송한 통신의 내용에 의지하야 긔미의 단서를 어더 십이월일 이응수를 충북 영동군(忠北 永同郡)까지 추적 톄포하얏는바 그의 자백에 의하면 이외의 대규모인 것을 판명하야 동월 삼일 대구부 상서뎡 재산가 리종국(大邱府 上西町 資産家 李鍾國)의 집에 가택수색을 한 결과 군자금 모집의 협박장을 만든 탄산지(炭酸紙) 기타의 증거물을 압수하고 취조를 진행함을 따라 관계자의 대부분을 검거함에 이르럿스며
軍政署와 連絡하야 경고문 협박장 사형션고로 부호에게 군자금을 모집 계획
김찬규(金燦奎)는 일한합병을 분개하야 조선독립을 바라고 잇는 제음에 대정 구년 십월 경에 다가치 독립을 희망하고 그해 봄부터 의용단(義勇團)을 조직하고 약간의 동지를 모아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잇던 리응수(李應洙)를 서울서 맛나 장차 서로 독립운동에 종사하기로 하고 이에 대한 운동자금을 모집할 일을 모의한 후 그 방법으로 남만주군정서(南滿州軍政署)와 련락하고 동지를 규합하는 동시에 군정서 명의의 협박장과 기타불온문서를 보이어 각디의 부호로부터 돈을 빼아슬것으로 하며 그때 따로히 서울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잇던 김동진(金東鎭)등으로부터 길림성군정서 발행의 군자금모집의 임명장 동군정서 군무총댱 로백린(同軍政署 軍務總長 盧佰麟)의 발행한 사형선고서(死刑宣告書) 상해가정부명의 독립선뎐에 관한 경고문 독립신문등 다수한 불온문서를 바다다가 그것을 리응수의게 교부한 일을 위사하야 대정 구년 십이월경에 길림성군정서의 명의로된 사형션고서 열장을 가지고 리응수를 김천군으로 차자가서 주고 이래 대정 십년 육월경까지 김천군 다방에 두류하면서 그동안 종종 군자금모집의 방법에 대하야 리응수와 협의하고 그 모집에 대하야는 금액의 일할(一割)을 주며 구할은 길림성군정서에 가져가기로 하야 대정 십년 육월로부터 대정 십일년 이월경까지 동지규합과 군자금모집의 목적으로써 군자금 모집의 사령서와 경고문 사형선고서 약간을 조선조희에 각각 한 장씩 끼워서 흡사이 부고(訃告)와 갓치 꾸미어 이것을 가지고 경상남북도 디방을 도라다니는 중에 대구서 리대귀와 양한위(李大基及梁漢緯)를 례천군에서 김병동(金秉東)을 경남 의령군에서 김돈희(金敦熙)등도 거창군에서 정내우(鄭乃佑)등을 권유하야 모다 동지를 삼엇다.
月經帶로 拳銃 密輸 태을교를 팔고 군자금을 모집
그래서 리대긔는 리응수와 함끠 배일사상을 품은 사람을 물색하야 경상북도에서 동지의 모집과 불온문서의 발송과 군자금을 모잡케 하고 김돈희로 경상남도 총무국댱(慶南 總務局長)을 임명하야 리응수와 협의하고 정내우가 태을교도(太乙敎徒)로서 그 교의 주문과 신앙의 형식 등을 아는 것을 이용하야 군자금 모집의 방편으로 교도모집에 뱅자하고 각디에서 암암히 불온사상을 고취게 하며 또 총명환(聰明丸)이란 환약 일천 오백 개를 만들어 정내우와 김병동으로 하여금 신약(神藥)이란 황당한 말로써 빗싼갑을 밧고 팔랴던 것이 목뎍을 도달치 못하얏스며 대정 십년 이월경에 김병돈으로 하야금 권유하야 동시에 가입케한 손영긔에 대하야 리응수 김병동 두명에게 상해 간도디방의 독립운동상황을 말하고 발분케하야 십삼원식 세 번과 벼 석섬시 가구 십원을 제공케 하얏고 김찬규는 또 조선 내에 대한 련락 상황의 타합과 군자금 불응모자에 대한 직졉 행동실행의 필요상 권총을 구하는 등의 목뎍으로서 대정 십일년 삼월 길림성군정서에 이르러 동서의 법무사댱 김응섭을 맛나 조선 내의 독립상황을 말하야 그로부터 "뿌로닝크"식 권총 한자루와 실탄 열네 발 폭탄에 쓰는 발화금 한 개와 남만주군정서 총재리게원사 이상희(南滿洲軍政署 總裁 李象羲)의 서명 날인한 위임장 두 장을 가지고 김응섭으로 부터 고향에 잇든 실형의게 가는 편지와 암호의 의탁을 바든 후 권총과 실탄은 신의주에서 엄중히 검사하는대 발각되지 안토록 특히 첩되는 이여수(妾李汝洙)로하여금 벼(布)에 싸서 월경대(月經帶)와 가치 삿 사이에 띄게하야 무사히 도라와서 그해 륙월 상순 중에 상주군 함창면 윤도리 음식뎜 김팔봉(尙州郡 咸昌面 允道里 金八鳳)방에서 동지 리응주 정내우 리만정 김병동 등과 회합하야 독립운동에 대한 모의를 하고 김응섭의 편지를 전하고는 둘이 그 권총을 사용하기로 하야 먼저 안동 군내의 부호를 위협하고 인심을교란 동요케 함으로써 일반부호의 간담을 놀라게 하야 자금모집을 용이케할 계획을 하얏스나 김찬규는 그 때문에 경찰에 검거되얏다(當時 拳銃不穩文書等을 他人의 依託이라 빙자하고 事件內容을 自白치 아니하얏슴)
전통적의 독립당 리응수등의 황동하든 여러 내용
그런대 리응주는 을사오조약(乙巳五條約)에 분개하야 동지를 규합하야 상소하고 잡혀서 옥중에서 병사한 리원필(李原弼)의 실자로서 또 명치 사십년 경북디방에서 이러난 폭도의 수괴 리강년(李康年)의 친족이라 항상 불온사상을 품어 속으로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잇던 즈음에 망부의 고우로서 생각이 일치한 김찬규를 맛나 서로 말이 되야 대정 구년중 전후 두차례나 김찬규로부터 바든 사형선고서 기타 불온문서를 자긔집 지붕 속에 숨기어 놋코 보관의 책임을 밧는 동시에 동년 십이월로부터 익년 삼월경 까지의 사이에 김규헌 리만영등을 권유하야 동지를 삼고 대정 십년 사월즁 금천군 대항면 정훈용 전(金泉郡 大項面 鄭薰鎔殿)으로 길림성군정서의 명의 잇는 사형선고서를 발송하얏스며 또 동인들과 공모하야 안동군 도산면 리중면(安東郡 陶山面 李中冕) 영덕군 영해면 박세철 박세빈(盈德郡 盈海面 朴世哲 朴世濱)등에게 협박장 또는 사형선고서를 발송하얏고 동년 칠월경에 대구에서 동지바 리대긔 리종국과 협의한 후 동년 십월부터 십일월까지의 동안에 영일 영천 군위군 경남 창녕군 등디의 부호에게 대하야 혹은 길림성 군정서 기타 여러 가지의 명의를 사용하야 다대한 금전을 요구하는 협박장 경고문과 사형선고서 금전뎨공의 독촉장등을 발송한 일이며 리대긔는 안동군의 양반으로 대정 십년 오월경에 김찬규의 권유를 바덧고 원래 길림성군정서는 자긔의 친족되는 리상희의 거나린바 됨으로 항상 성공을 묵도하던 터이라 곳 쾌락하고 리응수와 함끠 그 운동의 중견이되야 지난 칠월경에 리응수와 협의하야 리종국을 경북총무국장으로 추천하고 이래에 계속 활동중이며 資金을 募集하야 털 공소를 계획중 일이 여의치 못해 김병동은 대정 십년 십일월경에 시긔 리만영과 공모하고 례천군 문경군 디방에 텰공소(鐵工所)를 설립하야 리익을 상해가정부에 보내겟다는 계획으로 분주한 가운데 십일년 일원경에 김찬규 리응수 김규헌 등으로부터 그계획의 중지를 당하고 동지에 가입하야 동 사월중 김찬규의 명령을 밧아 손영긔를 권유하야 례천군의 통신원으로 임명하고 사령서를 교부한 일이오
五萬圓式 각처 부호에게 군자금을 내라고
양한위는 대정 구년월 경에 당시 안동군 재주 리종국(安東郡 李鍾國)을 방문하고 자긔는 남만주군정서 총재 리상희의 사명을 띄인 특파원이라고 표방하고 금일만원을 뎨공을 협박한바 가진 돈이 업서서 연긔를 하고 여비금오만원의 밧앗고 동년 팔월경에 다시 전긔 리종국의게 일만원의 독촉을 하고 다음에 사형선고서를 발송하얏스나 목뎍을 달하지 못하얏고 또 대정 구년 십이월 중순경에 영주군 풍기면 금계동 리종대(榮州郡 豊基面 金鷄洞 李鍾袋)를 위협하고 그에게 대하여 군자금모집원이라 표방하고 금이백원의 뎨공을 강청하야 이십원을 빼아서간 일이오 리종국은 십만원의 재산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무뢰배와 교섭을 하던중 대정구년 사월 리정희로부터 돈을 버는대는 위험수단도 잇서야 된다는 감화를 바다 앗던 시긔를 엿보던 드음에 동년 십월경 대구부 명치뎡 이뎡목 일백육십오번지에 거주하야잇는 리정희를 방문한즉 맛츰 리정희로부터 부탁을 바다 청송군의 재산가 조규한 황보훈 심호택(趙奎漢 皇甫薰 沈琥澤) 영천군의 재산가 권중면(權重沔)에 대하야 시국을 표방하고 각오만원식의 뎨공을 대서 발송한 일이 잇섯고 이래에 리정희를 보좌하야 각디 부호로부터 금원의 강탈을 뜻하고 대정 십일년 이월경 리정희의 명령에 의하야 전긔 피협박자중 조규한 황보훈에 대하야 돈을 내라고 독촉하는 불온문서를 작성하야 발송한 외 또한 리정희의 명령에 의하야 청송군의 부호 조병식 (趙柄植)에 대하야 변명을 하야 시세의 위급을 말하고 군자금 이만원을 송부하지 아니하면 군대를 파견한다는 의미의 협박장을 작성 송부한 일과 지난 칠월경 리응수 리대긔의 권유에 인하야 동지로 들어가 경북총무국장됨을 승낙하고 리대긔와 협의한 후 십월중 대구 자택에서 군위군 부자 홍정수 외 일명(洪貞修外一名)에 대하야 독립운동에 쓰는 무긔구입에 쓸터인즉 금일만오천원을 대구 리대긔에게 보내라하고 만일 불응하면 군인을 파송한다는 협박장을 우편으로 보내고 또 십일월 중순 전긔 두명에 대하야 긔일 연기의 통지를 하얏스며 또한 리응수가 미리 협박하야노은 영일군 신광면 부호 리원경(迎日郡 神光面 李源慶)의게 동시 일명을 동반하야 금년 십월 말에 비밀히 이원경을 차자가보고 자긔가 보고 자긔가 협박사건의 해결을하는것처럼 하고 차용의 형식으로 오천원을 내여 노으면 해결이 되는 양으로 말하얏스나 거절을 당한 일이요
朴尙鎭同志 李庭禧 청송부호 협박 일만원을 바더
리정희는 전년에 박상진을 주령으로한 광복단 사건으로 검거되얏다가 증거불충분으로 예심면소를 당하야 나왓던 일이 잇는대 작년 봄에 경북도 평의원이 되얏는바 작년 칠원경에 박상진 사형집행한데 대하야 매우 분노하야 보수할 생각을 가지고 잇다가 대정 구년 십월 청송군 현동면 조정식(靑松郡 縣東面 趙定植)의게 대하야 변명으로써 상해가정부자금 오만원을 대구 달성공원(達成公園)으로 가지고 오라 만약 불응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협박장을 보내 두고 리종국과 공모하야 조정식의 겁내는 것을 긔회로 리종국은 동정자로 만들어 위험을 막기 위하야 금삼만원을 내라고 하다가 불응함으로 나중에는 만원으로 감하야 대차의 형식으로 작년 십월에 밧은후 은연히 리종국의 배후에 잇서서 음모를 꾀하던 일 등이라는대 금번사건의 관계범인의 주소 씨명은 아래와 갓더라
原籍 慶北 安東郡 東後面 道谷洞
現住 中國 吉林省 樺甸縣 城內
南滿洲軍政署 總裁 李啓元
(未逮捕) 李象羲 (65)
原籍 黃海道 松禾郡 豊海面 城下里
現住所 中國 上海
上海假政府 國務總理
(未逮捕) 盧伯隣 (50)
原籍 慶北 安東郡 豊北面 五善洞
現住所 中國 吉林省 魁升店客樓內
南滿洲軍政署法務司長
金應燮 (45)
原籍 慶北 榮州郡 伊山面 石浦里
現住 中國 奉天省 西塔大街
(大邱監獄入獄中) 金燦奎 (32)
京城府 勸農洞 37
金東鎭(31)
原籍 忠北 永同郡 黃磵面 籠岩里
現住 慶北 金泉郡 鳳山面 禮智洞
李應洙 (22)
安東郡 臨東面 高川洞
李大基(35)
原籍 慶北 安東郡 安東面 新世洞
現住 大邱府 上西町 48
李鍾國(35)
慶北 醴泉郡 楡川面 水深洞
金秉東(65)
慶北 醴泉郡 龍門面 社仁洞
孫永箕(30)
慶北 尙州郡 化北面 上五里
金奎憲(37)
同 聞慶郡 加恩面 竹門里
漢文敎師 韓良履(40)
慶南 居昌郡 邑內面 加旨里
(入獄中) 鄭乃佑(32)
同 宜寧郡 邑洞 下里
死亡 金敦熙(55)
原籍 京城府 太平通
現住 中國 吉林省 東大灘王樹聲方
金燦奎妾 李汝洙(여,31)
慶北 尙州郡 化北面 上五里
李萬寧(59)
同淸道郡 梅田面 溫幕洞
慶北道平議員 李庭禧(42)
同 大邱附 德山町
梁漢煒(40) 外 十餘名
http://blog.naver.com/kjyoun24/2210444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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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의용단사건은 현대인의 시각에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대중(영화의 관객)은 그런 스토리에 열광하며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내지요.
며칠 전에 온막리 월봉산에 있는 매운 선생의 묘를 찾았습니다.
청매로에서 얼마 되지 않은 거리임에도 반듯한 길도 없고
후손이 부근에 살고 있지 않은지
산소 관리도 잘되지 않은 듯 했습니다.
이것이 영웅을 대하는 우리의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