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에 담긴 세상>
미나리(water-dropwort)는 전국의 냇가와 습지에서 흔하게 자라는, 미나리과의 다년초(多年草)다. 세계적으로 인도네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지에 폭넓게 분포한다.
한자어로는 근채(芹菜)·수근(水芹)·수영(水英)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사근(渣芹)’은 봄과 여름에 베어 먹은 그루터기에서 다시 돋아난 어린 미나리를 말한다. 수근(水芹)은 말 그대로 물미나리다. 미나리는 물을 뜻하는 옛말 ‘미’와 나물을 뜻하는 ‘나리’가 합쳐진 말로, ‘물에서 자라는 나물’이라는 뜻으로 본다. 물의 고어 ‘믈’이 ‘물’과 ‘미’의 두 형태로 변천하였는데, 미나리는 ‘미더덕’과 같이 후자에 속한다.
『고려사』에 근전(芹田)이 나오고, 길재의 시에도 수근(水芹)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미나리는 고려시대부터 식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에는 각지에서 공물로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조에는 미나리김치를 제물로 올린 기록이 있다. 홍만선(洪萬選)의 산림경제(山林經濟)에는 부추ㆍ염교ㆍ토란ㆍ가지 등등과 함께 미나리 재배법이 소개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에서 일상의 식재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미나리의 주산지는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로 전체 생산량의 50%와 30% 정도를 차지했다. 요즘은 경남보다 경북이 주요 산지로 떠올라, 청도의 한재와 대구의 팔공산 미나리가 새로운 품종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구 팔공산 미나리. 생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겹살과 함께 먹는 것이 보편적이다.
미나리의 주요 산지인 전북에서는 전주미나리가 그 맛과 생산 규모 면에서 널리 알려져 궁중에 진상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주비빔밥에는 미나리가 반드시 들어가서, 전주시는 미나리와 황포묵 등이 들어간 비빔밥을 ‘전주비빔밥’ 표준으로 정했고, 2010년 3월 지리적표시 단체표장에 등록했다.
2002년 보성녹차부터 시작된 지리적표시 단체표장 등록은 전통산업과 관련된 지리적표시를 상표권으로 등록받음으로써 타인의 사용을 배제할 수 있어 상품의 품질보증을 더욱 확고하게 할 수 있고, 권리의 인정성, 독점성, 배타성 등으로 인해 브랜드 가치의 향상을 꾀할 수 있다. 대구 팔공산 미나리, 청도 한재 미나리도 각각 여기 등록되었다.
미나리는 벼와 이모작의 형태로 경작되어 미나리 수확 후에 보통 조생종 벼를 심는다. 미나리는 얼음 밑에서도 잘 자란다. 얼음이 꽝꽝 언 논 속에서도 새파랗게 새싹이 나는 미나리는 겨울에도 풍미를 자랑하는 녹색식품이다.
미나리는 숙취 해소, 혈액의 산성화 방지, 해독 기능 등이 있으며, 생태계에서도 오염물질을 흡수, 뿌리에 저장해서 하천을 맑게 해주는 정화작용을 한다. 또한 섬유질이 풍부하여 변비에 효과가 크고, 칼로리가 거의 없어 다이어트 식품으로 유용하다. 복어요리에 반드시 넣는 것은 해독작용을 의식한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맛 궁합도 좋아 잘 어울린다.
《시경》의 “반수(泮水)에서 미나리를 뜯는다”는 말은 훌륭한 인재를 선발하여 학생으로 삼았다는 뜻이다. 반궁(泮宮), 근궁(미나리 궁전, 芹宮)이 학교라는 뜻으로 쓰이는 배경이다.
길재(吉再)의 시 〈반궁우음(泮宮偶吟)〉에 이러한 사례가 잘 나타나 있다.
“용수산 바로 동편 낮은 담장이 기울고,
미나리 밭두둑에 수양버들 드리웠네.
몸은 비록 무리들보다 빼어남이 없지만,
뜻만은 백이숙제처럼 수양산에서 굶어죽는 것 맹세하네”
[龍首正東傾短墻, 水芹田畔有垂楊. 身雖從衆無奇特, 志則夷齊餓首陽.]”
길재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뀐 후 벼슬을 거절하고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한 유학자의 일단을 잘 보여준다.
《청구영언》의 옛시조에서는 이와는 다른 미나리의 쓰임을 보여준다.
“겨울날 따스한 볕을 님 계신 곳에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찐 맛을 임에게 드리고자
임이야 무엇이 없으랴마는 못다 드리어 안타까워하노라”
이 시조에는 근폭(芹曝)의 고사가 담겨 있다. 근폭은 성의만 지극할 뿐 식견이 모자란 예물(禮物)이라는 뜻의 겸양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옛날 미나리 맛이 기막히다고 윗사람에게 바쳤다가 조소를 당한 헌근(獻芹)의 고사와, 따뜻한 햇볕을 임금에게 바치면 중상(重賞)을 받을 것이라며 기뻐했다는 헌폭(獻曝)의 고사를 합친 말이다.
시조는 우선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임에게 드리고 싶어하는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면의 뜻까지 보면 미나리와 햇빛이야말로 사람 삶에 중요한 것, 상층이 하찮다고 비웃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긴요한 것이라는 반론이 담겨 있다. 나는 가장 긴요한 것을 임에게 주겠다는 간절한 사랑과, 세상살이에서 요긴한 것을 구분하길 바라는 민중의 인식과 기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중이야말로 요긴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살고 있다는 상하 역전의 인식까지 담겨 있다고 보면 과도한 해석일까.
조선왕조실록 정조 3년조 (1779. 8. 4.)에는 왕이 이천에 행차할 때 수박 한 소반을 바치려는 백성의 정성을 거절하는 대목이 나온다.
“옛적에 ‘미나리를 바쳤다.’라고 한 것이 이런 경우인가? 백성의 마음은 알겠지만 받들어 올리도록 허락하면 폐단이 있을 것이고, 받들어 올린 뒤에 어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적에 당(唐)나라 덕종(德宗)이 파천(播遷)할 때에 과일을 바친 백성이 있자 받아먹고서 그에게 관직을 제수하게 하였는데, 그때 육지(陸贄)가 어찌 간절히 간쟁(諫諍)하지 않았겠는가. 가령 이들의 행동이 참으로 미나리를 바치는 것과 같은 정성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요행을 바라는 단서를 열게 될 것이다.”
이처럼 헌근(獻芹)의 고사는 하찮은 것을 상층에 선물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중국이나 조선이나 미나리는 지천으로 널린 하찮은 음식이었다. 그러나 민중의 인식은 시조에서 보듯이 달랐다.
‘미나리는 사철이요, 장다리는 한철일세’
잘 알려진 바대로 장희빈 고사에 등장하는 참요(讖謠)이다. 미나리는 중전 민씨고, 장다리는 장희빈이다. 장다리는 무와 배추에서 돋은 꽃줄기이다. 장다리꽃은 이 꽃대에서 핀 무꽃 배추 꽃이다. 미나리는 여러해살이고, 일년 내 먹는다. 무 배추는 1년생이고, 장다리꽃은 한철에만 핀다. 참 적절한 표현의 참요이다. 이렇게 원하는 바를 짧은 말에 생태적 특성을 잘 담아 나타낼 수가 있는가. 거기다 미나리, 무, 배추 모두 가장 기본적인 식재료 아니던가. 좋은 표현과 비유는 복잡하고 난삽한 개념이 아니라 일상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강회 먹을 때나 간다”는 속담 또한 비슷한 의미를 내포한다. 처갓집 세배는 의례를 차리는 절기가 아닌 맛 절기에 가겠다는 것이다. 정초를 지나 미뤘다가 맛있는 봄미나리를 먹겠다는 것이다. 맛있는 미나리회에 방점이 찍혔지만, 처갓집에 대한 편한 생각도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의례나 형식보다 편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중시하겠다는 생각, 그 속에 미나리가 있다.
미나리강회는 잘게 썬 편육이나 돼지고기에 실고추·지단·잣 등을 얹어서 데친 미나리 줄기로 감아서 만드는 한입음식으로 술안주로 많이 먹는다. 적절한 재료가 없으면 미나리만을 감아서 한입 음식으로 만들기도 한다. 한입음식은 서양음식에서 카나페(Canapé)라고 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처음 즐기기 시작한 카나페는 프랑스어로 ‘긴 의자'다. 긴 의자처럼 생긴 빵을 한 입 크기로 잘라서 먹는 데서 붙여진 음식 이름이다. 우리말로 적절한 말이 없어 내가 ‘한입음식’이라고 만들어 쓴다.
*팔공산미나리는 밑줄기가 붉고 속이 차 있다.
맛있는 미나리요리는 미나리강회만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 미나리김치, 미나리전, 우삼겹미나리볶음, 미나리무침, 미나리강회, 미나리회 등등, 요즘은 대구 팔공산 미나리가 나와 데치지 않고, 생으로 삼겹살과 함께 먹는 미나리삼겸살이 인기를 모은다.
미나리야말로 전통적으로 민중의 음식으로서 문학에서는 삶의 근본을 표현하는 소재로 쓰였다. 영화 <미나리>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는 자연회귀로 한 층 격상, 거기다 품종 개발로 두 층 격상하여 상층의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상하가 역전되고, 상향평등화되어 가며 다같이 자연으로의 회귀를 도모한다. 음식으로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식재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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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윤덕노, 음식으로 읽는 생활사, 깊은 나무
기타 신문자료
#미나리 #전주미나리 #전주비빔밥 #근폭(芹曝) #수근 #팔공산미나리
*미나리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말레이시아,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 자생하며 재배도 한다. 인도의 미나리는 분말 형태로 유럽으로도 공급되어 향신료로 쓰이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세리(芹、芹), 시로네구사(しろねぐさ, 白根草)라고 하지만 많이 먹지 않는다. 일본 방문 중에도 미나리를 만난 적은 없었다. 보편적인 식용 작물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