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자전거 여행
이젠 기억도 아스라한 중학교 때로 돌아간다.
나는 잡지에서 본 일제 10단 기어 변속이 되는
싸이클을 사달라고 아버지께 조르고 있었다.
한번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손에
넣지 않고는 못 견디는 나를 아시는 아버지는
일본 출장길에 브리지스톤 상표의 자전거를 사오셨는데
중 고등학교 6년 개근 중 유일하게 조퇴한 날이
아버지가 자전거를 일본에서 사 오신 날이었다.
지금은 좋은 자전거가 지천이지만
그 때 만 해도 국산은 3단 기어밖에 없어서
내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요즘 신형 벤쯔 오픈카를
타고 가는 사람이 느끼는 정도의 시선을 받았다.
서울에서만 자전거를 타기에 지루했던 나는
친구들과 수원까지 자전거 여행을 가기로 했다.
멤버는 재주꾼 서동화, 큰 사업을 하고 있는 함태준과
셋이서 수원에 살고 있던 한철현네 집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철현이네 집은 수원에서 양조장을 하는 큰 부자집이었다.
나는 그 때 회현동에서 살고 있었는데 이젠 집은 없어졌지만
위치는 남산 3호 터널 톨게이트 30미터 상공쯤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만나서 4월의 상쾌한 바람을 즐기며 수원을 향했다.
한강교를 지나 시흥 안양을 지나 국도를 타고 수원으로 달렸는데
갈 때는 내리막이 많고 아직 피곤하지 않아 우리는 별로 힘든 줄
모르고 2-3시간 정도 걸려 수원에 도착했다.
수원 철현이네 집에 들어가니 얼마 전 돌아가신 철현이 모친이
반갑게 맞이해 주시며 점심으로 푸짐하게 돼지 불고기를 구워
주셔서 우리들은 실컷 먹었다.
철현이는 수원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하며 북문,남문 등
시내 곳곳을 데리고 다니더니 수원에서 약간 떨어진
당시 유명했던 딸기밭 “푸른지대”까지 데리고 가서
딸기까지 사준 것이 그 날의 험로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잘 먹고 잘 구경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서울로
돌아올 일이 걱정이었다.
중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이미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해 버린 뒤였다.
4시경 서울로 출발했는데 다리는 무겁지요, 갈 길은 멀지요
또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오르막이 많지요. 정말 죽을 맛이었다.
내가 탄 자전거는 성능이 좋아 오르막에 먼저 올라와 기다리면
3변속 자전거를 탄 동화와 태준이는 숨을 몰아쉬며 한참 후 올라왔다.
서울과 수원의 반이라는 안양에 왔을 때 우리는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무의식적으로 페달을 밟으며 이 원수 같은 자전거를 어떻게 하면
없애버리고 편안하게 차를 타고 올라갈 수 있을까를
궁리하고 있는데 사고가 터졌다.
서동화가 너무 지친 나머지 달려오는 버스 앞에서 넘어진 것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보고 미리 버스가
감속하지 않았다면 요즘 우리가 즐기는 좋은 글과
조각 작품들을 보지 못했으리라...
급정거한 운전수는 너부러진 서동화를 일으켜 세우며
급정거로 버스 내의 사람이 다쳤으니 치료비 내라고 호통을 쳤다.
이에 질세라 다친 사람을 모두 치료해 주겠다고 더 큰 소리를 치고 있는
담대한 서동화를 보더니 운전기사는 이 사람은 커서
큰 사람이 될 것을 미리 예견한 듯 선선히 놓아 주었다.
몸과 마음이 천근 만근이었지만 서로 위로하며
서울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는 어떻게 집에 왔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단지 아침에 나가서 안돌아오는 아들을 걱정스럽게 기다리다
큰병원 응급실까지 전화를 했다는 어머니가 거의 기아 상태로 돌아온
아들의 밥을 차려준 후 얼마 안 되어 통금 사이렌이 울렸다는 생각만 난다.
얼마 전 서동화 교수가 자전거를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한 것을
사진으로 보았다. 여기 게시판에도 자전거에 관한 서 교수의 글이
여러 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며칠 전 점심을 먹고 있는데
서 교수한테 전화가 왔다.
티타늄 자전거 프레임을 병원에 두고 간다고 한다.
서로 바빠서 그날은 얼굴도 못 봤지만 병원에 와서
프레임을 보는 순간 옛날 자전거 여행 생각이 났다.
서 교수는 참 재미있는 친구다.
중 고등학교 때 공작부라며 유선 비행기를 만들어 운동장에서
뱅뱅 돌리더니 나중에 진짜 비행기 만들어 타고 다니지를 않나,
하늘이 싫증나면 요트 만들어 바다에서 놀지 않나.
그것도 모자라 얼마 전 우주로 꿈을 키워
UFO를 만들어 필립스 건물에 착륙시키지를 않나!!
그는 “배재 88의 자랑거리”임에 틀림없다.
p.s.
얼마전 일이다. 서교수가 생각지도 않게 불쑥 병원에 와서
“오늘 점심 내가 살께. 나 돈 많으니 맛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여 고급 일식집으로 서교수가 타고 온 덜덜 거리는 반트럭을
몰고 들어갔더니 주차장 관리인이 집수리하러 온 사람인줄 알고
구석으로 대라고 열심히 손짓 하더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