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3) 아멘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까?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기 전 농촌에서는 물론 그 후로도 이러한 광경이 있었지만, 겨울이 오면 보리밭에 나가서 ‘보리 싹 밟기’를 했습니다. 그때 제 생각은 ‘왜, 저렇게 아까운 보리의 싹을 밟아 벌리나?’라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어르신들이 더 많은 수확을 위해 보리 싹을 밟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처음에 나오는 싹을 그대로 두면 보리가 평균 100알 정도 열리지만, 그 싹을 밟아버리면 나중에는 더 강한 싹이 나와서 보리가 평균 400알 이상 열린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고난이든지 우리가 믿음으로 잘 소화하고 감사하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가져다주는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축복을 흘러보내는 ‘축복의 통로’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말씀을 거꾸로 말하면, ‘코람데오’(Coram Deo)로 요셉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않고 받은 말씀대로 바로”(수 1:7) 행했기 때문에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이를 아브람의 경우에서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아브람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 완전하라”(찬 17:1)했습니다. 여기서 “내 앞에서”(לְפָנַ֖י, lə·p̄ā·nay)는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얍복 강에서 천사와 씨름한 후 그곳의 이름을 ‘브니엘’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람을 얼굴과 얼굴이 맞대고 만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행하다”(walk)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동사 ‘할라크’(הָלַךְ, halak)의 번역이며, ‘행’(行)이 ‘걷다 혹은 가다’를 의미하며, ‘걷는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을 대표하는 행동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처럼, 하나님은 에녹에게 자주자주 오셔서 함께 걸으시고 서로 사귀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백 년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하나님이 오셔서 에녹과 함께 걸으시며 교제하시다 하나님이 하늘로 가실 때 에녹을 데리고 가신 것처럼, 저도 이른 새벽에 기도하며 걷는 이유가 ‘하나님과 함께 걷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완전’(blameless)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타임’(תָמִֽים, tamim)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하게 행하라’ 하신 것,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무엇을 요구하신 것일까요?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는 분, 전능하지 않은 분이라고 말입니다. 그 결과가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들의 삶을 드리는 삶을 삶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도 축복이 흘러가길 그렇게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코람데오의 삶이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고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이며, 크신 하나님 앞에 항상 서 있다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사는 모습’입니다. 이를 요셉은 구했고 ‘말씀’에 따라 바로 행하려 노력했기에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제 첫 부르심이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하늘이 있음’ 알았다면, 두 번째 부르심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주기도문을 통해’ ‘용서’를 배웠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목회’ 가운데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도 이겨낼 수 있으며, 극복해 가듯이 요셉도 나중에 형들을 만났을 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는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24년 11월 26일(화)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수 1:7) 하신 하나님 아버지! 겨울비가 오는 아침입니다. 추위는 누그러졌지만 떨어진 낙엽으로 길이 미끄럽습니다. 삶을 위해 분주하게 오가는 걸음걸음마다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해 주시고 머무는 손길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셔서 늘 하나님을 체험하며 하나님과 함께함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영광 올려드리는 매시간 되게 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과 기도로 주안에서 늘 평안 하십시오. https://youtu.be/ZQ6IB1LrEAE?si=sBeEFr1m9o_Qxf0h ‘Holy Forever’
531비전(행 4:4, 2:41; 눅 15:4)이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오늘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는 ‘버핌’(Buffum)이 1922년에 작사하고 ‘독 샹크스’(Doc Mckinley Shanks)가 작곡하여 ‘주님이 함께 하신다’(HE ABIDES)는 곡명으로 발표한 ‘보혜사 성령 찬양’입니다. 그래서 ‘조금 빠르게’(Allegro)로 된 곡이지만 구원받은 성도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발맞추어 천국으로 행진하듯이 ‘경쾌하고 힘차게’ 부르는 것이 특징이며,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https://youtu.be/Vv_kXSYyW-g?si=QVTM_zBMGk4PLYvk)*카톡에서 본문 문서선교로 보낸 글을 보기 위해 클릭하면 상단 위에 이어폰이 나옵니다. 이것을 누르면 AI가 이 글들을 읽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