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깨달음의 종교(2)
불교란 무엇인가?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닙니다. 불교는 팔만대장경이라는 방대한 경전이 있어서 이 경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저 경을 보면 저렇게 말씀하는 등, 누가 어떤 것이 불교냐고 물으면 이것이 불교라고 한마디로 대답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예수교나 유교나 회교 등 다른 종교들은 근본 경전이 간단하여 예수교는 성경, 유교는 사서삼경, 회교는 코란이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통칭 팔만대장경이라 하니 누가 들어도 엄두가 낮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으니 무슨 말씀인지 알기 힘들고, 설사 좀 안다고 하여도 간단하게 어떤 것이 불교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하나하나 얘기하려면 끝이 없으니 간단히 무엇을 불교라 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불교라는 말 자체를 보면 불교란 佛 즉 부처님의 가르침[敎]입니다. 부처란 인도말로 붇다 즉 일체 만법의 본원 그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 즉 부처의 가르침이므로 결국 깨달음에 그 근본 뜻이 있습니다. 만약 불교를 논의함에 있어서 깨친다[覺]는 데에서 한발짝이라도 떠나서 불교를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교가 아닙니다. 불교의 근본인 그 깨친다는 것은 일체만법의 본원 그 자체를 바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일체만법을 총괄적으로 표현하여서는 法性이라 하고 각각 개별적으로 말할 때는 自性이라고 하는데, 그 근본에서는 법성이 즉 자성이고, 자성이 즉 법성이니 자성이라 하든 법성이라 하든 이 본원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을 부처라 합니다.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법성이나 자성을 바로 깨치는 길 즉 깨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그 근본입니다.
[성철스님 법어집. 백일법문. 장경각]
<해설>
“불교는 통칭 팔만대장경”에서 이 방대한 내용은 시절인연을 따라 불법대의를 논한 것이니, 모두 용이지 체가 아니다. 따라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볼 것이 아니라, 달을 보아야 한다.
“일체 만법을 총괄적으로 표현하여서는 법성이라 하고, 각각 개별적으로 말할 때는 자성이라고 하는데, 그 근본에서는 법성이 즉 자성이고 자성이 즉 법성이니, 자성이라 하든 법성이라 하든, 이 본원 자체를 바로 깨친 사람을 부처라 한다”에서 자성이 법성이고 법성이 자성이다. 이것은 一卽一切이며 一切卽一이다. 一切唯心造 萬法歸一 一歸下處에서 모두가 한 마음으로 돌아가니 이 한마음을 깨치면, 바로 부처이다. 그러므로 불법은 이 한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이 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만법의 근원을 요즘 불교계에서 과학과 연관하여 연구하고 있다.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를 힉스와 연결하여 실마리를 찾고자 시도하는 분도 있다. 이것은 빅뱅이론과 연결되는데, 빅뱅이론에 의하면 최초에 원자핵만한 진공이 있었고, 이것이 폭발하여 우주를 생성하는데, 처음으로 생긴 입자가 쿼크와 렙톤이다. 이 쿼크는 6가지 종류(up, down, strange, charming, top, boundry)로 이루어져 있고, 렙톤도 여섯 가지 종류(뮤온, 뮤온중성미자, 전자, 전자중성미자, 타우입자, 타우중성미자)로 이루어져 있다.
6가지 쿼크와 6가지 렙톤에 작용하는 약력, 강력, 전자기력, 중력을 모아서 표준모형을 완성하였다. 표준모형에서 입자는 크게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쿼크 6종, 렙톤 6종)와 입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매개하는 매개입자(전자기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광자이고, 약한 상호작용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Z보손과 W보손이고, 강한 상호작용력을 매개하는 입자는 글루온, 중력을 매개하는 중력자)로 이루어져 있다. 표준모형에서 제시한 중력자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표준모형에서 소립자들이 질량을 갖기 위해서는 힉스 입자가 필요하다.
불교계에서는 이것에 유의하여,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관계를 힉스 입자와 연결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우스님의 경우 힉스입자가 발견되면 우주의 신비가 풀릴 것이라고 보고, 불교가 과학을 선도하리라고 예상하였다.
여기서 간단히 빅뱅우주론을 관찰해보자. 최초의 진공이 폭발하여 입자를 만든다(초기에 입자와 반입자가 동시에 생성되었으며, 입자는 반입자보다 미세하지만 조금 더 많이 형성되었다. 입자와 반입자가 쌍멸할 때 광자가 나오며, 광자 두 개가 충돌할 때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된다). 이때 처음으로 만들어진 입자는 쿼크와 렙톤이며, 쿼크가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고, 렙톤은 전자를 만든다. 최초에 양성자와 중성자에 의해 수소원자핵과 헬륨원자핵이 만들어졌다. 다음에 만유인력에 의해 입자들이 뭉쳐져서 큰 별을 만든다. 큰 별을 만들면 가운데는 엄청난 중력에 의해 중력수축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핵융합이 일어나 원자번호가 큰 원소가 만들어진다. 그 다음에는 고온 고압과, 이때 생성된 원자번호가 큰 원소의 핵분열에 의해, 별이 분해된다. 이 과정에서 블랙홀이 생긴다. 블랙홀은 빛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그렇다면, 최후의 순간에는 모든 것이 다시 블랙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다면 成ㆍ住ㆍ壞ㆍ空하는 불교의 우주관과 같아질 것이다. 이러하다면 최초의 진공은 우주의 실마리를 푸는 단서가 될 수 없다. 成ㆍ住ㆍ壞ㆍ空의 순환으로 보아야 하므로, 우주는 빅뱅이 시초가 되지 않는 圓相이 될 것이다. 또 입자가 질량을 갖게 하는 원인인 힉스가 발견된다면, 다시, 질량을 에너지로 만드는 원인이 되는 물질 즉 질량이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되는 그 무엇인가가 또한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의 순관과 역관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된다.
따라서 과학은 불교교리를 공부하는 데 하나의 방법론이 될지언정, 불교 자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계연기나 중도실상을 지나치게 과학과 연계하여 불교의 우수성을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이것은 무아사상과도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결과를 얻을 것이다.
참고로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의 진화를 결정하는 성분들 가운데 물질을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들은 고작 4% 이하이며, 나머지 96% 이상은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천체물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나머지 96% 중 23%는 암흑물질, 73%는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암흑에너지는 공간에서 척력(엔탈피 감소로 인한 확산)으로 작용하여 우주의 팽창을 더욱 빠르게 하며, 암흑물질은 반대로 인력(물체와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으로 작용하여 우주의 팽창을 느리게 한다.
과학과 비과학에 대하여 사례를 통해 한 번 연구해보자.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하는 부류들이 많고, 이것을 맹종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 유전이란 어버이의 형질을 자손이 물려받는 것이다. 이 정성적 정의에 입각하면, AB형과 O형 부모일 경우에는 어버이의 성질을 물려받는 자손이 없게 된다. 이런 오류를 범하는 것은 인간의 심리상태는 늘 모호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어떤 규정을 지우면 거기에 맞추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또 이것을 사실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런 것은 그릇된 통념이다.
역으로 비과학을 과학으로 연결해 보자.
인간 개개인의 심성을 살펴보면, 남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한결같은 자세를 견지하며,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관찰하는 부류가 있고, 여기에 반해 억압을 하지 않으면 항상 악의 본성이 드러나는 부류가 있다. 이런 것은 특히 학창시절 교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늘 교사의 눈을 피하며, 허물에 빠지고, 또 그 허물이 폭력이나 강제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부류가 있는 반면, 교사의 심성과 난폭성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교사를 대하는 부류가 있다. 여기서 보면 인간은 윤회를 통해 과거 훈습된 성품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지옥, 아수라 등에서 인간계로 올라온 자들은 늘 남의 움직임에 따라 자기의 습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천상에서 온 인간은 남을 떠나 자기의 허물을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훈습된 종자에 의해 육도를 윤회하는 것을 이러한 사례에서 증명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통계를 진실로 착각하고 있다. 어떤 현상에 대하여 통계를 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도와 타당도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어떤 사안에 대하여 설문지 형태의 조사를 할 때 문항 자체가 자의적 해석을 내릴 수 있는 문항만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통계에 의한 자료 해석 결과가 진실과는 일치하지는 않는다.
<참고>
“사서삼경” 곧 사서는 『大學』, 『論語』, 『孟子』, 『中庸』을 말하며, 삼경은 『詩經』, 『書經』, 『周易』을 이른다.
1. 대학
明明德(명덕을 밝히는 일)ㆍ新民(백성을 새롭게 하는 일)ㆍ止至善(지선에 머무르는 일)을 대학의 三綱領이라 하고, 格物ㆍ致知ㆍ誠ㆍ意ㆍ正心ㆍ修身ㆍ齊家ㆍ治國ㆍ平天下의 八條目으로 정리하여 유교의 윤곽을 제시하였다. 실천과정으로서는 8조목에 3강령이 포함되고, 격물 즉 사물의 이치를 究明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평천하의 궁극 목적과 연결된다는 것이 대학의 논리이다.
2. 맹자
『맹자』는 덕에 의한 정치, 즉 왕도정치를 주장하는 정치철학서이다. 왕도정치는 민생의 보장을 출발로 하여 도덕적인 교화에서 완성된다. 왕도정치는 통치자의 도덕성을 기반으로 한 정치이다. 특히 백성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기반으로 백성을 자신의 피붙이처럼 여겨 그들에게 안락하고 인간다운 삶을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이다. 이 왕도정치는 몇 가지 골격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경제적 토대를 이루는 정전제이다. 왕도정치의 두 번째 골격은 교육이다. 세 번째는 성선설이다. 맹자의 대표적인 학설로 유명한 성선설은 바로 그러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해 주는 이론이다. 통치자가 백성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또 백성들도 교육을 통해 선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착한 마음을 타고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 중용
여기서 ‘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庸’이란 平常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은 천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본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성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도이며, 도를 닦기 위해서는 窮理가 필요하다. 이 궁리를 교라고 한다. 『중용』은 요컨대 이 궁리를 연구한 책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한마디로 말해서 誠일진대, 사람은 어떻게 하여 이 성으로 돌아가는가를 규명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4. 논어의 구성
중국 최초의 어록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옛 문헌이다. 공자와 그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리고 高弟의 발언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도 함축성 있게 기재되었다.
논어의 핵심 세 가지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그것을 제 때에 실행하면 진실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참으로 즐겁지 아니한가),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참으로 군자가 아닌가)로 이루어져 있다.
5. 시경
춘추 시대의 민요를 중심으로 하여 모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 黃河 중류 中原 지방의 시로서, 시대적으로는 周初부터 春秋 초기까지의 것 305편을 수록하고 있다. 본디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려 정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전하는 것은 305편이다. 시경은 風ㆍ雅ㆍ頌 셋으로 크게 분류되고 다시 雅가 大雅, 小雅로 나뉘어 전해진다. 풍(國風이라고도 함) 은 여러 나라의 민요로 주로 남녀간의 정과 이별을 다룬 내용이 많다. 雅는 공식 연회에서 쓰는 儀式歌이며, 송은 종묘의 제사에서 쓰는 樂詩이다.
6. 서경
58編으로 이루어졌고, 尙書라고도 한다. 虞書ㆍ夏書ㆍ商書ㆍ周書 등 唐虞 3대에 걸친 중국 고대의 기록이다. 상서는 上古의 책으로 숭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二帝三王의 정권의 授受, 政敎 등의 기록으로, 고대의 史的 사실이나 사상을 아는 데 중요한 책이다. 당시의 史官ㆍ史臣이 기록한 것을 공자가 편찬했다고 한다.
7. 주역
占卜을 위한 原典과도 같은 것이며, 동시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凶運을 물리치고 吉運을 잡느냐 하는 처세상의 지혜이며 나아가서는 우주론적 철학이기도 하다. 周易이란 글자 그대로 周나라의 易이란 말이며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夏나라 때의 連山易, 商나라의 歸藏易이라는 역서가 있었다고 한다. 역이란 말은 變易, 즉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며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풀이한 것이다.
이 역에는 易簡ㆍ변역ㆍ不易의 세 가지 뜻이 있다. 이간이란 천지의 자연현상은 끊임없이 변하나 간단하고 평이하다는 뜻이며 이것은 단순하고 간편한 변화가 천지의 공덕임을 말한다. 변역이란 천지만물은 멈추어 있는 것 같으나 항상 변하고 바뀐다는 뜻으로 陽과 陰의 氣運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역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으나 그 변하는 것은 일정한 항구불변의 법칙을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법칙 그 자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